보르도 와인의 명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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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와인의 명품화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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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71》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상지대.연변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남한강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이사

skc663@hanmail.net

 

프랑스 보르도(Bordeaux) 하면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와인 '보르도‘와 ’매독‘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명품들이다. 이 이름의 와인들은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가 되어 세계적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실제로, 그곳 출신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수와 모리악을 탐방하러 보르도 지방을 갔을 때 넓은 들녘 여러 곳이 포도밭이었다. 전문 판매소에서 맛본 와인은 새콤달콤한 맛이 혓바닥에 배어들면서 향기가 입안 가득히 차서, 염치불고하고 두 잔이나 받아 마셨었다. 사온 두 병의 와인도 이틀을 머무는 동안 쉽게 마시고 말았다.

 

  보르도는 파리에서 서남방으로 400㎞쯤 떨어진,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파리 몽빠르나스 역에서 떼제베(TGV) 열차로 3시간이 걸린다. 보르도는 피레네 산맥에서 시작된 가론(Garonne) 강과 도르도뉴(Dordogne) 강이 하나로 합쳐진 지롱드(Gironde) 강 줄기가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그 하류에 자리하고 있다. 보르도는 물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보르 드 로(bord de l'eau)’란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주 이름 아키텐(Aquitaine)도 물을 가리키는 ‘아쿠아(aqua)’에서 왔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이 이렇게 유명하게 된 데에는, 두 강줄기로 물이 좋고 대서양의 따뜻한 바람과 빛나는 태양을 받아 좋은 포도가 생산될 뿐만 아니라, 보르도산 와인을 해외로 쉽게 수출할 수 있는 거점 보르도 항이 있어서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지역민들의 남다른 자세와 마음 씀씀이가 무엇보다도 더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르도 와인의 역사는 12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아키텐 지방은 윌리엄 10세 공작이 다스렸는데, 그에게는 딸 엘레아노르가 있었다. 15세 때 정략결혼으로 프랑스의 국왕 루이 7세에게 시집을 갔으나 사랑이 없는 삶으로 이혼을 하고 돌아왔다.

 

  그 뒤 훗날 잉글랜드의 왕이 되는 10살 연하의 헨리 2세와 재혼을 하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신부의 재산을 모두 결혼지참금으로 가져오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엘레아노르의 보르도 지역은 잉글랜드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때마침 그때 영국은 지하수가 오염되어서 음료수로 보르도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와인을 수입해서 먹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르도가 잉글랜드의 소유가 되자 보르도의 풍부한 수자원과 보르도 와인은 곧바로 영국으로 수송되었다. 보르도 와인은 영국의 것이 되었기에 더 이상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운송 거리도 다른 지역보다 짧아서 영국의 런던 항에 하역되는 와인의 대부분은 보르도 산이 차지하게 되었다. 영국은 보르도 와인에 대해 우대정책을 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와인은 자연히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런데 보르도 와인이 유명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보르도 사람들의 남다른 인식과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을 지배하여 와인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공작의 외동딸이 출가를 함으로써 어떤 대가도 없이 자기들의 땅이 일시에 영국에 소속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애써 가꿔서 만들어낸 와인이 값싸게 영국으로 수출되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보르도 사람들은 자기 고장 출신이 영국의 왕비가 된 것을 크게 자랑스러워하였다. 예속되어 착취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왕비의 고장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점점 더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에 힘썼다. 그리고 유리한 수출 여건을 활용하여 좋은 와인을 보다 값싸게 런던으로 보내어 시장을 점유하게 만들어 나갔다. 이리하여 보르도 와인은 <여왕의 와인> 또는 <와인의 여왕>으로 불리면서 영국은 물론, 유럽 세상에 군림하게 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유명하게 되었다. 현명한 판단과 열정적인 노력으로 자기 고장의 와인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프랑스 보르도에 가면 “인정(人情)에 반하고 와인 향기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보르도에 가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명품은 좋은 자연환경으로 자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좋은 삶은 지혜로움과 정성이 보다 중요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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