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일화 <수필 서정순 (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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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일화 <수필 서정순 (심양)>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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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고양이들이 그리도 많은지? 고양이들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니까." 아침에 출근하니 안해를 외국에 보내놓고 홀로 살고있는 k선생이 잠못잔 심경을 호소해온다. 불면을 증명이라도 하듯 눈확 주위에 거무스럼한 동그라미가 댕그랗다. 봄만 되면 고양이들은 짝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느라 밤새 애기울음같은 소리를 질러댄다. 삼라만상이 깊이 잠든 고요한 밤 그 소리는 칼날처럼 잠자는 사람들의 신경을 들쑤셔놓는다. 어쩌다 잠을 청한 신경이 약한 사람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정말로 속을 말리우는 안타까움이다.

특히나 홀로 아닌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깊은 봄밤 들려오는 발정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는 혹독한 공해가 아닐수 없다. 가뜩이나 독수공방 외로움에 잠못이루는 봄밤인데 고양이 울음소리마저 마음을 산란케 하니 이 아니 괴로울손가? k선생도 듣다 못해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으나 꼭 붙어 미동도 않는 고양이들때문에 더욱 열받아 몽둥이를 찾다가 없어 비자루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암상스러운 고양이라더니 그 영악스러움이 싫어 주인이 버렸을가? 아니면 홀로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해서였을가? 이 곳은 들고양이들의 산지가 아닌데도 어쩐지 집없이 떠돌아다니는 들고양이들이 부쩍 늘고있다. 내가 몸담고있는 학교정원만 보더라도 색상도 얼룩덜룩한 여러 마리의 들고양이들이 무리지어 쏘다니는것이 자주 눈에 뜨인다. 어디서 몰려온 고양이들일가?

봄바람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봄바람에 실려오지는 않았을테고, 혹시 지난 봄 살살거리며 다니던 하얀 점박이 암코양이의 암내를 맡고 찾아온 수코양이들일가? 아니면 그 암코양이한테서 태여난 새끼들일가? 누군가는 그 하얀 점박이 들고양이가 스팀관이 깔려있는 웅뎅이에서 털도 채 마르지 않은 다섯마리 새끼고양이를 이끌고 나오는것을 봤다고도 한다. 어쨌든 학교정원에는 이리 올리뛰고 저리 내리뛰며 재롱도 부리고 서로 따라잡기를 노는 들고양이떼들이 극성을 부린다.

환한 대낮 들고양이들이 노는 모습을 멀찌감치 서서 살펴보면 귀엽기 그지없다. 서로 붙어 잡고 씨름하는 모습도 그렇고 어쩌다 잘못하여 남의 집 베란다에 올라 맹꽁한 얼굴로 어찌할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고 영낙없이 개구쟁이 어린이의 모습이다. 아롱거리는 노오란 해볕에 몸을 맡기고 네 발을 옆으로 쭉 뻗고 단잠에 빠진 고양이들을 본적이 있는가? 세상의 평화와 안온함이 잠자는 고양이들에게 몰려있는 느낌이다. 인간세상에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한폭의 그림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가까이 다가서고싶지만 그럴수가 없다. 들고양이들이 사람만 다가가면 바람결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렇게 무서울가?

무섭기는 사람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어둑스레한 저녁 산책을 할 때면 어딘가에 숨었다가 불현듯 옆으로 휙 스쳐 달아나는 고양이들때문에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한번은 별이 총총 뜨는 저녁에 들고양이때문에 하마트면 기절할번 하였다. 엄청 큰 흰고양이 한마리가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불타는듯한 파란 눈으로 잔디밭앞에 앉아있는 날 뒤에서 쏘아보고있었다. 뭣 모르고 일어서다 깜짝 놀란 난 부지중 목갈린 소리로 《저리 가!》 하고 꽥 소리쳤으나 겁먹은 날 감지했음인지 고양이는 꼬리를 더욱 바짝 세우며 당장 나한테 덮쳐들 태세다.

머리카락이 쭈빗 일어서며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고양이와 나 사이엔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눈을 부릅뜨고 한참 고양이를 쏘아보며 발을 구르며 때릴 자세를 취했으나 끔쩍도 않는다. 무서운 침묵만이 주위를 감돌뿐이다.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고양이한테 당할것만 같았다. 무서움에 굳어진 몸을 겨우 움직여 돌멩이를 주어들고 연신 고양이한테로 던졌다. 입으로는 《저리 가! 저리 가!》 애원 비슷한 소리를 흘리며. 한여름이건만 고양이가 달아난 후 탕개풀린 내 몸은 식은땀에 오스스 추워졌다.

고양이를 가리켜 령물이라고도 하고 악물이라고도 하나 고양이는 천성이 소심하고 겁이 많다. 해볕드는 양지쪽을 찾아 옹송그리고 앉았다가도 인기척소리만 들려도 부리나케 뺑소니친다. 그런 고양이가 자기를 건드리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날 왜 쏘아보며 덮쳐들 태세를 취했을가? 내가 고양이를 미워했다면 육감이라는것이 있어 그렇다고 억지 핑게라도 대보련만 그런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데도 사람과 들고양이는 서로를 무서워하고있다. 도대체 인간과 동물의 본능적인 무서움때문일가? 인간과 동물지간에 믿음이 없기 때문일가?

쥐나 개처럼 아무 곳에서나 쏠아대고 배설하지 않아 내 인상속의 고양이는 대체로 체통을 지키는 량반같다는 생각이다. 아스라한 동년의 추억속엔 고양이에 얽힌 아름다운 풍경화도 간직되여 있다. 반짇고리를 끼고 앉아 자장가를 부르시는 할머님과 그 곡조에 맞춰 쌔근쌔근 잠을 자는 갓난아기가 있는 따스함이 감도는 집안 아래목에는 안방마님처럼 동그랗게 자리를 틀고 누워 졸음에 겨운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고양이가 있었다.

어쩌다 볼일이 있으면 보선을 신은 새아씨처럼 가볍게 살짝살짝 정지문을 넘나들던 고양이. 수염을 잡아당기며 깔깔거려도 고양이는 싫다는듯 야옹거리기만 했을뿐 주인들께 달려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밤새 쥐잡느라 잠못잔 고양이를 왜 못살게 구느냐?》며 고양이를 두둔하군 하셨다. 그러면 동감인듯 눈을 끔뻑이던 고양이. 모든것이 공존하며 느긋한 평화만이 흘렀던 그 시절, 사람들의 신경도 날카롭지 않았고 고양이도 사무럽지 않았던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가? 점점 신경들이 곤두서고들 있다. 뭔가를 자꾸 무서워하고 불안해하고 경계한다. 사람과 고양이사이 뿐만이 아니다. 사람사이에도 팽팽한 기분들이 감돈다. 지어는 부부사이에도 랭랭한 한기가 서려있다. 공리와 물욕만 추구하는 사이의 모든것은 평화가 아니고 경쟁의 대상이 되였다. 불신의 씨앗은 수풀처럼 돋아나 어디라없이 속속들이 파고들어있다.

남편을(안해를) 떠나보내놓고 잠못 이루는 k선생도 기실은 알게 모르게 올라오는 마음의 울화를 애매한 고양이에게 하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그 점박이 흰고양이도 어디선가 사람들에게 당했던 억울한 분노를 애매한 나한테 터뜨리려고 했는지 모른다.

모든게 조화를 이룰 때 삶이 삶다워지고 삶이 삶다워져야 안온한 평화가 흐른다. 부부가 천애지각에 갈라져 살고있는 삶, 그것은 텅 빈 사막처럼 황량하고 거치른 삶이다. 그 곳엔 조화로운 평화가 있을수 없다. 거북등같이 갈라진 메마른 가슴만 있을뿐이다. 메마른 가슴에 어찌 마음의 여유가 있을수 있으랴!

그래도 이 곳 교정의 들고양이들은 행운인것 같다. 허허로운 삭막한 겨울철 먹을것이 없어 굶을가봐 식당사람들이 때가 되면 먹을것을 들고양이들에게 내다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니 들고양이들은 더는 식당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턴 때만 되면 식당문앞에 모여 어슬렁거린다. 식당사람들과 친숙해져 《저리 가!》 하며 식당사람들이 내쫓아도 따라다니며 성화다. 온 겨울 식당앞에서 기웃거리더니 포동포동 살이 올라 걸을 때면 몽글거리는 살이 출렁거린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부드러워지고있다.

아, 평화와 조화는 결국 사랑과 믿음에서 오는것이다.


길림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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