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가 시아버님의 칠순잔치 뒤처리에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 늑대 같은 남편의 섹스를 받아내느라 육체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아침부터 죽은 듯이 잠이 들어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겨우 깨어났다.
배가 고파 주방에 가서 뭘 요기하려다가 은숙이와의 약속이 생각나 그만 두고 전화기를 들었다.
지난 6년 동안 여자가 아닌 여자로 살아왔지만 모든 게 하나님의 안배이겠지 여기고 은숙이를 잘못 소개했다고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은숙이가 나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긴 터널을 지나 탄탄대로에 들어섰으나 은숙이의 앞날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 시각 나는 소개자인 은숙에게 술을 사주고 싶고 그를 위로해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어 약속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은숙이는 영자를 만나 아낙네들이 늘 자질구레한 화제로 수다를 떨듯이 한참 이 얘기 저 얘기 한 다음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는 손을 꼽아 무엇을 세고 있었다.
“너, 지금 뭘 세고 있어?”
“잠깐, 기다려.”
“너, 혹시 임신 날자를 쫓고 있는 것이냐?”
“임신은 무슨 얼어 죽을 임신이야.”
은숙이는 임신 얘기가 나오니, 기분이 얹잖아 하다가 인츰 웃으면서
“얘, 너 한해 제사를 여섯 번 지냈으니 6X6=36이고, 순희는 한국에 온지가 7년이니 7X9=63이고, 나는 한국에 온지가 8년이고 한해 열두 번이니 96번이나 제사를 지냈구나.”
“너 아까 그걸 계산하고 있었던 거야.”
“음, 한국생활에서 가장 인상이 남는 것이 나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어서······” 은숙이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은숙이는 영자와 한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도 맏이로 태어났고 집이 가난해 공부를 잘했으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두 남동생을 공부시켰다.
은숙이와 영자는 서로 처지가 비슷해 각별히 친하게 지냈다. 고중을 졸업하고 영자가 대학에 가는 바람에 방학 때만 은숙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은숙이는 가난해 친구로서 공부하는 영자에게 용돈을 주지 못하는 대신 떡도 해 먹이고 맛있는 음식을 가지가지 해 먹였다.
은숙이는 비록 인물체격이 수수하지만 손부리가 야무져 살림꾼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웃 마을 준호라 부르는 남자가 성실하고 착하고 부지런한데다 가정생활 형편도 좋아 동네방네서 딸을 둔 엄마들은 사윗감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준호는 인물체격이 좋은 여자들을 다 제쳐놓고 은숙에게 마음을 두었다.
결국 하늘이 그들의 혼사를 성사시켜주었다. 그런데 은숙이는 무슨 놈의 팔자인지 결혼 일자를 3일 앞두고 준호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은숙이는 너무 충격이 커 준호 따라 죽는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결정할 문제다. 그래서 은숙이는 죽지 못하고 살아 있을 수 있었으나 그 후 어떤 신랑감을 소개해주어도 평생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딱 잡아뗀다.
간혹 혼삿말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남자 측에서 결혼 3일을 앞두고 신랑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선을 보지도 않고 처녀가 아니라면서 거절한다고 한다.
“처녀는 무슨 얼어 죽을 처녀야. 진짜 처녀를 찾겠으면 유치원이나 소학교에 가서 찾아보라고 해.” 은숙이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아픈 상처가 되살아난다.
이래저래 서른을 넘긴 노처녀가 된 그녀는 이미 할미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때를 넘기니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1998년 가을, 어느 하루 은숙이의 엄마가 딸을 불러놓고
“얘야, 너 한국에 시집가지 않겠니?”라고 슬쩍 물어본다.
“한국인지, 두국인지 난 싫어요.” 그녀는 매섭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너 평생 처녀로 늙을 거야?” 엄마는 몹시 걱정되어 답답한 어투로 말한다.
“아무튼 난 한국은 싫어요.”
“이유가 뭐냐?”
“중국에 와서 여자를 데려가는 한국남자가 온전하면 얼마나 온전하겠어요. 한국에 시집간 조선족여자들이 진짜 둥지를 틀고 온천하게 사는 자가 몇 명이나 돼요?”
“그건 여자들이 한국에 가지 못해 결혼을 수단으로 삼고 맘에도 없는 남자에게 가니 그런 거 아니겠니?” 엄마는 기어코 딸을 설득하려고 든다.
은숙이는 엄마의 뜻을 굽히게 할 적당한 이유를 더는 찾지 못해 잠자코 있었다.
이것이 기회다 싶어 엄마는 고삐를 바짝 조이려 든다.
“저, 한국에 간 나와 친하게 지내던 쌔돌이 엄마를 알지? 괜찮은 한국총각이 하나 있는데 너한테 혼삿말을 했으면 하더라. 그래서 내가 너와 상의도 없이 일단 중국에 와서 내가 먼저 보고 마음에 들겠다 싶으면 너에게 말해주려고 어제 만나봤는데 괜찮을 상 싶더라.”
“엄마가 시집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거얘요?”
“그렇지 않으면 네가 끄떡도 하지 않으니 어떡하겠니? 내가 나설 수밖에.”
“참 엄마 두······”
“생각해보아라. 너 준호를 잊지 못해 처녀로 늙어가기보다 차라리 먼 한국에 가서 사는 게 낫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나섰던 거야.”
은숙이는 엄마와 입씨름을 하기가 싫어 더는 말대꾸를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허나 엄마는 좀처럼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딸의 혼사를 기어코 밀어붙일 타산이다.
“일단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는 것이 어떠냐?”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요?”
“보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렇게 은숙이는 엄마의 등에 떠밀려 억지로 박동호라는 한국인 총각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한번 대충 만나는 척하고 엄마에게 마음에 없다고 말할 타산이었다.
그런데 예로부터 남녀 간의 연분이 따로 있다더니 은숙이가 박동호를 만나보니 그렇게 싫어나지는 않았다.
박동호는 인물체격도 괜찮고 말수가 적어 남자의 매력이 있었다. 집형편도 좋다고 한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 조건이면 한국처녀를 능히 맞을 수도 있으련만 왜 중국에 와서 여자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얘요?”
“한국여자들은 홀딱 까져서 싫고 중국여자들이 순수해 보여서요.”
겉보기에 괜찮은 한국남자들이 중국여자를 마누라로 맞는 일에 대해 거의 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설사 마음속의 말이 아닐지라도 반박할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은숙이는 일단 며칠 사귀어보고 결정지으려고 했다.
박동호는 은숙이와 교제하면서 숙소는 여관에 잡았으나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끔 거리 산보를 하는 외에 그녀의 집에서 보냈다.
집식구들은 일부러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피해주었다. 허나 박동호는 은숙이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한국 놈들은 거의 다 조선족여성들과 선을 보게 되면 잠부터 자지 못해 헤맬 정도로 색골이라 들었는데 박동호는 참으로 점잖은 인간이야.” 은숙이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참으로 다행이야. 만약 박동호가 기어코 그 짓을 하자고 하면 막무가내로 밀쳐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욱이 준호와 기껏 딩굴던 방에서 박동호와 그 짓을 하게 된다면 죽은 준호에게 미안한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니 참으로 박동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럭저럭 10일이 지나 박동호는 은숙이와의 혼인을 굳게 약속하고 한국에 돌아갔다.
“얘,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 영자가 물었다.
“참 오늘 따라 이상하게 옛일들이 자꾸 떠오른단 말이야. 전에 네가 불행해 보일 때는 나의 불행에 대해 세상사는 게 다 그저 그렇다고 여기고 그럭저럭 살 수 있었어나 오늘날 네가 행복한 모습을 보이니 축복하고 싶으면서도 솔직히······”고 말하고는 또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은숙이가 8년 전, 한국에 온지 15일이 지나 구정이었다.
중국에서는 구정이면 분가한 자식과 외지에 가서 공작(직장일)하는 자식들이 천리 길 만리 길을 마다하고 부모의 곁에 모여 음식을 푸짐히 장만해놓고 쇤다. 한족들은 문에 주련을 써 붙이고 교자를 빚고 밤 12시가 되면 귀신을 쫓는다면서 폭죽을 터치우고 하면서 온밤을 자지 않는다. 이에 비해 조선족들은 온가족이 모여 술을 마시고 트럼프나 마작을 노는 외에 매우 간단하다. 한국의 구정이 중국과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곧 차례(제사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다는 것이다.
은숙의 시어머님은 구정이 돌아오기 전 3일부터 감기몸살로 심하게 앓고 있었다. 하여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장보는 일을 맡겼다. 난생 처음 제사상 차림을 사보는 은숙이는 아무것도 몰라 시어머님한테 뭘 살 것인지 메뉴를 적어달라고 청을 들었다.
“너, 중국에서 제사를 안 지내니?”
“3년 되기 전에는 사자의 생일이거나 사망한 날짜에만 지내고 그 후부터는 청명과 추석에 간단하게 몇 가지 음식을 갖춰갖고 묘소에 가서 제사를 지냅니다. 구정에 제사를 지내는 법은 없어요.”
“이상한 일이야, 우리나라 제사법이 거의 중국에서 전해온 것인데 말이야.”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때 제사법이 낡은 풍속이라면서 폐지했다가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들이 제사법을 회복했으나 예전과 달리 아주 간단하게 지냅니다. 그리고 처녀들이 제사상차림을 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음, 그래 허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이제부터 네가 박 씨 가문의 맏며느리이니 제사법을 배워야 해.”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은숙이는 두 팔이 늘어나도록 장을 본 것을 시어머님께 회보했다.
“얘, 너 이 도라지와 고사리 그리고 이거 마늘 중국산이 아니냐.”
“제가 중국산인지, 한국산인지? 어떻게 알아요?”
시어머님은 중국산이 어떻게 생기고 한국산의 특징은 어떻고 하시면서 한참 설명하신다.
“중국산이면 어떻고 한국산이면 어떠합니까?”
“중국산이 한국산보다 값이 싸지만 맛이 못해.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맛이 없는 중국산을 조상들에게 대접해서야 쓰겠냐?”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 와서 생활해본 조선족들은 한국 것이 맛이 없다고 말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중국 것이 맛이 없다고 한다. 모두 쓸모 없는 자존심인지? 서로 각자의 입에 배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 건지?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감히 시어머님께 말씀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럼 이것 어떻게 할까요?”
“집에 두었다가 우리 먹고 상차림은 다시 사와라. 꼭 한국산으로 사야한다.”
은속이는 속으로는 달통되지 않으나 할 수 없이 또 시장에 갔다.
장사꾼들에게 일일이 한국산이 맞느냐고 확인하고 사왔다. 연거푸 두 번이나 장을 보니 손바닥이 끊어져 나가는 듯이 아팠고 허리도 아파났다.
“이번에는 옳게 샀겠지?”
“그럼요. 모두 물어보고 확인하고 사왔습니다.”
“너, 이거 뭐야?”
“복숭아가 아니얘요?”
“너 먹자고 샀어?”
“아니, 제사상에 올리려고요.”
“너 참 한심한 애야.”
“왜 그러세요?”
“복숭아는 귀신을 벽(쫓는다는 의미)하기 때문에 제사상에 올리면 안 된다. 너 이런 풍속도 모르느냐?”
“조선족들은 산소에 갈 때 복숭아를 갖고 가던데요.”
“아이고, 한심해!”
“이거 또 뭐야? 잉어도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아이고, 아이고, 진짜 말이 나가지 않는다.”
“잉어가 물고기 중에서 최고지 않아요. 그래서 사온 건데······”
조선반도는 조선조500년을 통해 유교를 뼈가 절도록 받아들였고 공자는 천지신명이나 부처를 제치고 최고 권자에 오르게 되었고 따라서 공자의 말씀이라면 곧 ‘천어(天語)’였다.
우리민족이 도(桃)와 리(鯉)를 제사에 사용치 않는 것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의한 것이라 하며, 도는 귀를 쫓고 리는 화룡(化龍)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일부 학자들은 공자님이 복숭아와 잉어는 외형상‘여음’과 신통하게 닮아 여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물건(東西)이므로 남자를 계보로 하는 조상제사에 올리는 것을 금기로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찌되었든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을 통해 옛 풍속이 많이 없어져 현시대사람들은 제사상에 복숭아와 잉어를 올리지 않는다는 속기(俗忌)를 모르고 있다. 허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제사를 매우 중시하고 있고 또 예로부터 전해온 속기를 지키고 있다.
“내가 몸이 아파 장을 보지 못하니 모든 것이 엉망이구나.” 시어머님은 몹시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침실에 들어가신다.
은숙이는 속으로 힘들여 장을 보아왔건만 칭찬은커녕 야단만 맞아 기분이 착잡했으며
“제사인지, 뭔지 하는 게 왜 이리도 복잡하지? 상차림을 사는 것부터 이리도 말이 많으니 앞으로 더 얼마나 야단을 맞아야 하나?”고 생각하니 무서워나기까지 한다.
한편 은숙이는 중국이란 나라가 사람살기가 참으로 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도 조선족들이 제사를 지내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무슨 금기도 적고 나름대로 조상들에게 성의를 표하면 족하다. 한국이 중국에 비해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사람 사는 걸 보면 오히려 매우 ‘봉건적’이다.
한국 사람들이 왜 이다지도 피곤하게 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 딴에는 잘하느라 야채를 다듬을 것은 다듬고 데칠 것은 데쳐 놓았다.
시어머님이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지 며느리가 대충 야채정리가 끝날 즈음 주방에 오셨다.
야채가 잘 데쳐졌는지를 확인하시느라 가지가지 입에 넣고 씹어보시면서 이맛살을 찌그리시는 표정을 보아 만족하지 못하는 뜻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 은숙이는 속으로 다행이구나고 한시름 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어머님이
“이젠 저녁 먹을 준비를 해야지.”라고 하시고는 되돌아서서 굴비를 보시더니
“새아가, 너 이 굴비가 중국산이구나.”
“아닌데요. 제가 한국산이 맞느냐고 확인하고 사왔는데요.”
“아니야, 머리가 크고 입이 위로 향하고 비늘이 까칠한 것을 보아 중국산이 틀림없어.”
은숙이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데 이것이 어찌 내 탓이란 말인가? 한국 장사꾼들이 나를 속인 것 아니냐? 그리고 중국산이면 어떻고 한국산이면 어떤지 왜 굳이 중국산은 제사상에 올리지 못하고 굳이 한국산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허나 그녀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뿐 감이 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요 몇 년래 중국산이 하도 밀려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제사상에 중국산이 오르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조상들이 그전에는 ‘애들아 고맙다’고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쎄쎄(謝謝)’라고 하신단다. 우리 집안은 생활형편이 좋으니 조상들로부터 ‘쎄쎄’가 아니라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니?”
한참 시어머님의 설명을 들은 은숙이는
“꼴깝들 하고 있네. 죽은 귀신이 중국산인지, 한국산인지 알 턱이 있어. 다 산사람들이 육합을 떠는 것 아니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 네가 말한 것들이 중국에서 시집온 조선족여자들이, 특히 맏며느리들이 거의 겪는 일일 거야. 물론 맏며느리가 아니면 정도는 다르겠지.” 영자가 은숙이의 말들이 동감이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야, 중국에서 시집온 여자들과 제사 얘기를 해보면 거의 다 이런 비슷한 체험을 갖고 있더라고. 순희는 성격이 괴벽해 시어머님이 제사상차림을 중국산을 사왔다고 몹시 야단해 열 받아 쓰레기통에 확 버려버렸대, 순희의 돌발적인 행위에 시어머님이 충격을 먹고 쓰러지셨다나. 그래서 남편한테 얻어맞았었지, 그 일로 순희가 이혼 한다 어쩐다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단다.”
“나도 하마터면 이혼 말이 나오다 말았어. 그런데 말이야, 제사상을 차리는데 뭐가 그렇게 복잡해?”
“나는 그래서 수첩에 하나하나 다 메모해 놓고 있단다.”
“너야 배운 사람이니 뭔가 우리와 비하면 다르겠지, 기억력도 더 좋고 말이야.”
확실히 한국에서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예로부터 전해온 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사자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가장 가까이에 놓고, 홀수(기수)이니, 어동육서(魚東肉西)이니, 두동미서(頭東尾西)이니, 아이고 너무 복잡해.
사실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아무리 복잡하다해도 몇 번만 잘보고 배우면 터득할 수 있다. 이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의식’에 대해선 무슨 놈의 귀신노릇인지 누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 이로 인해 조선족여성들이 골탕을 먹을 때도 있다.
은숙이는 이 면에 대해 뼈아픈 과거사가 있다.
처음 제사를 지낼 때 상차림 때문에 시어머님한테 한바탕 야단을 맞았고 그녀는 향을 피우는 의식에서 시아버님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다.
제사 순서는 조상신의 혼백을 불러오고, 인사를 드리고, 술을 올리고, 식사와 차를 대접한 후 제사를 끝낸다.
혼백은 혼과 백으로 나눈다. 혼은 하늘에 있고 백은 땅에 있다. 혼을 불러오기 위해 향을 피우고 백을 불러오기 위해 땅에 술을 붙는다.
향을 피우는 이유는 향의 연기와 냄새가 하늘 높이 퍼져 하늘에 계시는 혼을 불러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에서 맨 먼저 하는 것이 분향(焚香)이다. 또한 문상을 가거나 참배를 할 때 분향을 하는 이유가 바로 혼을 부르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낼 때 대문과 방문을 열어두는 데 혼을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은숙이는 시어머님의 감기를 옮겨 받아 몸이 으슬으슬해 나면서 코물이 흐른다. 차고 추운 것이 질색이다.
“이 추운 날씨에 왜 문은 열어놓고 있지? 추워 죽겠건만.”라고 하면서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때 시아버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시더니 문 쪽으로 씽하니 달려오시더니 은숙이를 한바탕 욕을 하신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혼이 들어오다가 막혀버렸지 않아. 아이고, 우리 집안이 망하게 생겼다!”
은숙이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너무 추워 몸이 떨려 방문을 닫았는데, 혼이요?”
“그럼, 방문을 열어놓은 것은 혼을 불러드리려는 것이었어. 혼이 들어오다가 막혀 버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너 지금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느냐?” 시아버님은 이렇게 야단하시고는 너무 화가 나서 참지 못해 밖으로 나가셨다.
은숙이가 밖을 내다보니 시아버님이 하늘에 향해
“조상님들이시어! 우리 며느리의 무지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빌고 있었다.
그제야 은숙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지만 도대체 무슨 판국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시어머님도 따라서 집안이 망하게 생겼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참 이놈의 한국시집살이를 못해 먹겠어.” 은숙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시댁식구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날 제사는 처음부터 다시 치러졌고 은숙이는 마치 꿔온 보리자루처럼 한쪽 구석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제사가 끝나고 나서 시댁식구들이 은숙이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눈길도 마주치지 않는다.
은숙이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다행이 남편이 제사 때 송곳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해 하면서 집식구들에게
“내가 대신 사과할 게요.”라고 했을 뿐 마누라를 나무라지 않았다.
만약 남편까지 은숙에게 뭐라 야단했다면 그 자리로 은숙이는 가출했을지도 모른다.
“너 남편이 너에게 참으로 관대한 편이구나.” 영자가 한마디 끼어든다.
“제 속이 짚이는 데가 있어 나한테 미안하니까 나를 야단치지 않았었겠지.”
“그게 뭔데?”
“뭐긴 뭐겠니? 그 짓이지.”
“너 좀 알아먹게 말을 해보렴.” 은숙이는 망설이다가 송아지 때부터 친구였던 영자 앞에서 숨길 것이 없다고 여기고 남편의 약점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은숙의 남편 박동호는 중국에서 처가에 묵는 10일 동안 여자에게 정조를 지키느라 점잖을 부린 것이 아니라 성기능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은숙이가 한국에 오자 시어머님은
“우리 동호는 네가 처음으로 되는 여자야, 한국사내들이 총각 때 종종 계집을 본다든가, 군대 갈 때 친구들이 서로 총각딱지를 떼어준다면서 청양리 오팔팔 혹은 메아리텍사스에 가서 여자를 본단다. 하지만 우리 동호는 너무나도 정직해서 너를 만나기 전에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그건 내가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은숙이는 시어머님의 말을 듣고 속으로
“아들이 병신인 줄도 모르고 정조니 뭐니 하며 들먹이고 계시니 참······”라고 못 마땅하게 느껴졌다.
사실 동호는 완전 병신이 아니라 반병신이다.
신혼 첫날밤 동호의 거시기는 마누라가 물고 빨고 애써 발기시켜놓으면 금방 죽어버리고 또 애써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거시기가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치르지 못하고 말았다. 섹스란 할 때 격렬하게 하고 잠을 자고나면 이튿날아침 머리가 개운해진다. 그렇지 않고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으면 심신만 지치고 이튿날이면 머리가 뻥해나고 몸이 무거워진다. 만약 남자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끝나버리면 여자는 잠도 들지 못할 뿐 평소에도 이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만약 여자들이 처음으로 만난 남자가 섹스를 잘 못한다하더라도 본래부터 섹스란 그저 이런 것이구나 여기고 그럭저럭 어영부영 살아가지만 섹스를 잘하는 남자와 해보고 후에 약한 남자를 만난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살게 된다.
은숙이도 마찬가지이다. 준호가 섹스를 참 잘했다. 그래서 그녀는 섹스의 맛을 알고 있다. 동호는 준호에 비하면 거시기가 딸려 있을 뿐 사내도 아니다. 간혹 한 달에 한두 번 겨우 하는 걸사나 말 그대로 시작하자마자 끝나고 만다.
남자들이란 섹스를 변변하게 못하면 여자 앞에서 기가 죽기 마련이다. 밖에 서도 모든 일에 자신감이 떨어진다.
예로부터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과 같은 명군들은 모두 섹스를 잘했다. 모택동도 섹스에 강해 대륙 따먹기에 성공했지 않았던가! 당고종 이치는 섹스에 약하니 마누라 무측천에게 정사를 빼앗기더니 나중에 나라까지 그녀에게 바치고 말았지 않았는가!
“야, 너 남편이 우리 정식이보다 체격이 더 우람져 보이는데 밤일을 잘 못한단 말이야.”
“남자들이란 체격을 보아서는 모를 일이야. 오히려 약한 사람이 깡다구가 있다고 섹스도 더 잘하는 거야.”
“그래? 나는 남자 셋을 만나 살아봤는데 모두 괜찮게 한다. 이번 정식이는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잡는단 말이야.”
“남자들이 잘하면서 변태가 아니면 여자는 복 받은 거야.”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데 요 몇 년 사이 다른 여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전에는 한국 놈들은 모두 색골이라 들었는데 왜 거시기가 발기되지 않는 자가 그렇게 많다니?”
“한국남자들이 중국남자들에 비해 섹스를 못하는 것이 사실이야.”
“그건 당연하지, 고대세계에서 섹스에 대해 연구가 있었고 조예가 깊은 것이 곧 중국이라 하더라. <황제·소녀경>란 책도 펴내고 말이야.”
“응, 진짜 그러네.”
“섹스에 대한 얘기는 그만두자. 마치 우리 둘이 바람둥이나 된 것처럼 섹스얘기를 길게 하고······. 야, 너 그때 처음 구정에 있었던 제사폭풍은 어떻게 수습되었어?”
“다 그 인간의 ‘덕분’에 그럭저럭 넘어갈 수가 있었어.”
“너 남편이 그래도 무던한 편이야.”
“무던하긴 개 코, 자신이 밤일을 잘 못하니 나한테 미안해서 그런 거지 뭐.”
사실이 그랬다. 동호는 밤일을 못하니 늘 마누라 앞에서 기가 죽어 있었고, 처음에는 부모님들의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듯 ‘아멘’만 부르더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모님께
“이 사람을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라고 종종 말했다.
그 당시 동호가 마누라를 조금이라도 두둔해주지 않았다면 은숙이는 가출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동호의 변화에 은숙이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남편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눈물이 나도록 감사했다.
마누라인 은숙이는 동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데 반해 시부모님들은, 특히 시어머님이
“아들놈이 장가가더니 8촌으로 멀어졌다.”고 매우 못마땅해 하신다.
그 후부터 해마다 열두 번 있는 제사다보니 어떤 달에는 겹쳐 세 번이나 지낼 때도 있어 시어님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어려워도 며느리를 관여 못하게 하신다.
한편으로 은숙이는 그토록 복잡한 제사에 관여치 않아 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일이 곧 소외감이라 서글픈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은숙에게 있어서 제사니 뭐니 해도 가장 힘든 것은 시집온 지가 2년이 넘었지만 시부모님들에게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해 더욱 시부모님들로부터 소외를 당했다.
허나 한편으로 임신되지 않는 것이 나의 탓이 아니고 남편 탓이니 때로는 배짱이 생겨 내놓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가끔 시부님들의 아이에 대한 말씀에 대꾸하지 않고 들었는 둥 마는 둥 모르쇠를 놓았다. 시부모님들은 며느리의 이런 쌀쌀한 태도에 더욱 화가 나셔 심지어
“참으로 못돼 먹었어.”라고 나무란다.
만약 그럴 때마다 은숙이가 동호의 탓이라고 폭로한다면 남편이 나의 우군이 되어주지 않을뿐더러 가문이 더욱 말썽이 커질 것이라 생각되어 참고 견디었다.
한국여자들 같으면 섹스도 잘못하고 아이도 심어주지 못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믿고 살기가 만무하지만 은숙이는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이혼하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 해도 일이 복잡해질 것이고 더 나은 남편을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대로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편 대다수 한국남자들이 마누라가 일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듯 동호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일을 못하게 말리다가 나중에는 마누라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승낙했다.
은숙이는 일을 하는 한편 시부모님들에게 알리지 않고 남편을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남편의 병을 고쳐주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
천지신명인지, 부처님인지, 하나님인지 은숙이의 끈질긴 노력에 감동되었는지 그녀를 임신하게 만들었다.
며느리가 임신하게 되자 시부모님들의 태도는 180도로 변했다. 예로부터 며느리는 못마땅하지만 그녀들이 낳은 아이만은 끔찍이 사랑한다. 시부모님들이 아무리 며느리가 미워도 건실하고 튼튼한 아이를 낳을 것을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다. 그래서 여러모로 며느리에 대한 태도가 다르고 애지중지 보살피게 된다.
옛 풍속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살면서 은숙이는 아들을 낳았으니 일단 칠거지악 중의 첫 번째로 꼽히는 사항은 면했다. 아무리 현숙하고 며느리 노릇을 잘한다 해도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현처양모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니 은숙이는 ‘후’하고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시집가서 시댁에게 아들애를 낳아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지, 시부모님들은 손자가 태어나서부터 며느리에게 확 달라졌다. 일단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부터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시고 너무 각별하게 생각해주시니 쑥스러워 몸 둘 바를 몰라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았다. 허나 그녀는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은숙이는 아들애를 낳은 후부터는 남편에게 시부모님들에게 잘해드리려고 노력했고, 시부모님들은 은숙이를 며느리로 인정하고 제사를 비롯한 집안의 대소사를 맡긴다. 이쯤하면 은숙이는 일단 험한 고비를 다 넘긴 셈이고 마음 붙이고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기초는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비록 남편이 밤일은 잘못하지만 아들애를 바라보면서 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세상사라는 것이 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배고플 때는 도둑질을 할 생각을 갖게 되고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지면 섹스를 하고 싶어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