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상경2
월급을 받은 즐거움도 잠깐. 장인장모는 직업소개소에 다시 일자리를 부탁하고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개소에서 일자리가 들어오는 대로 통지해준다고 했단다. 스무 번도 소개해 준다던 직업소개손데 아무렴 세 번짼데 안 해주랴.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어르신들은 괜히 잘못 건드릴까봐 전화해볼 엄두도 못 낸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소개소에 전화를 넣어보니 그때껏 깜깜 잊고 있었다. 욱-하고 열불이 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냥 한 곳만 바라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나는 어르신들을 앞세우고 다른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농장을 빼면 청소하는 일밖에 없는데 그것도 힘깨나 쓰는 동포가 아니면 거의 내국인을 쓴단다. 장모가 하고저 하는 아기 돌보기나 가정부일은 요즘은 4~50대들이 한단다. 4~50대들이 하던 식당은 홀은 30대, 주방은 40대로 물갈이를 했단다. 그것도 쭉쭉 빵빵 물 좋은 여자들로 ‘싸게 싸게’ ‘골라 골라’ 데려가 버리면 나머지는 공장이나 건설현장으로 몰려간단다. 물론 식당에 두기에는 조금 아까운 여자들은 국가가 윤허하지 않은 노래방도우미로 한국아즈바이들의 주물 럭으로 나간단다.
장인이 하려는 장치도 요즘은 3~40대 젊은이들의 몫이란다. 하긴 식당에 가보면 숯불을 들고 손님들 사이로 바람개비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장치는 전부 젊은 동포다. 그냥 동포가 아니고 카리스마를 갖춘 남자들이다. 그러니 노인들을 쓸 리 만무했다.
이제 가격표는 나온 셈이다. 장인장모는 ‘광활한 농촌’에 가서 ‘남조선인민’들의 ‘재교육’을 받는 길밖에 없었다. 장인장모한테 작금의 ‘남한전선’을 분석해 주니 처음에는 심드렁해서 듣더니 다시는 기운이 쏙 빠지는 모양 양미간을 찌프린다.
저녁, 어르신들을 위로도 할 겸 기분전환도 시킬 겸 시장에서 횟감으로 놀램이를 사다가 회를 떴다. 장인은 기분도 꾸릿꾸릿 한지라 사위가 떠주는 회에다 소주를 넙적넙적 잘 받아 마시더니 결국은 한달음에 취하고 말았다. 내가 취케 했으니 주정도 나한테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이보게 사위,”
“예, 말씀하세요.”
“내가 봤을 때 한국 사람들 차 끌고 다니는 것 외에는 별 희한한 것이 없더만.”
“예, 맞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족을 무시하나 그 말이요."
“.......”
“글쎄, 나를 욕하고는 늘 흐뭇한 얼굴이야. 고게 사람을 더 열 받게 하더란 말이요.”
“그럴 때 헤딩 한 번 해 주지 그랬어요.”
“여긴 사람 치면 안 된다면서, 사위가 그랬잖아.”
“소똥무지를 지날 때 슬쩍 해서 소똥에 버무려 놓아도 되는데. 아님 열 받게 손바닥에 침을 뱉어서 세수시켜줘도 되는데.”
“그래도 돼?”
장인은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으며 즐거워했다. 장모도 덩달아 호호 웃으며 나한테 연속 술을 따라 권한다. 그걸 보는 내 가슴은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누구 귀한 자식인데’를 입말처럼 쓰던 한국인들이다. 그러나 반세기만에 만난 자기 동포한테는 스스럼없이 상처를 준다. 제발 서럽게 떠나고 서럽게 살다가 서럽게 찾아온 내 부모형제들을 괴롭히지 말라. 조선족의 가슴에 못 질을 하지 말라.
장밤 장인의 주정을 들어주느라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장인이 얼마나 서운했으면 저러랴 싶었다. 어쩌다 그런 몹쓸 인간을 만나다니. 나는 출근해서도 종일 장인장모의 일자리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결국 전에 거래한 적이 있는 사장의 도움으로 장모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여관청소일인데 장모가 끔찍한 불윤현장을 목격하게 되어 미안했지만 우선 발붙이고 볼 판이다. 소식을 전해주려고 부랴부랴 퇴근하여 숙소에 들어서는데 장인장모가 히죽이 웃으며 나를 맞는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장인은 장모와 눈을 맞추더니 시무룩이 웃으며 대답한다. “집에 가기로 했소.”
“네?.......”
장모가 대인훼리 티켓 두 장을 꺼내 보인다. 내일 자였다. 어르신들은 그동안 사위한테 속 썩여드려 미안하다면서 레벨에 맞게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기차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에 가면 부근 공터에 야채를 심어 먹으면서 소박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누가 한국에서 배운 것이 야채재배가 아니랄까봐 꼭 야채다. 비닐하우스를 짓겠다고 없는 돈을 투자하라고 하면 큰일인데. (계속)
2007년8월26일 영등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