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에 핀 산더덕 꽃(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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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핀 산더덕 꽃(69)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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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吉雨의 수필세계>

내 숙소 아파트에는 산더덕 화분이 하나 있다. 나와 4년을 함께 살고 있지만, 두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난 더덕이다.

이 더덕 화분은 4년 전 봄에 원주 문인들과 감악산(紺岳山)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 캐온 것이다. 산나물을 뜯어 점심을 먹자며 몇몇이 등산을 했는데, 더덕 여러 뿌리를 캤다. 더덕을 씻는데 향내가 강했다. 그래서 길러 보겠다며 두세 뿌리를 가져다가 심은 것이다.

다행히 첫 해는 모두가 잘 자랐다. 줄기가 1m정도로 뻗으며 한 그루는 꽃송이까지 맺었었다. 그런데 7월 어느 날, 더덕이 모두 말라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멀쩡했었기에 뜻밖이었다. 내년에는 더덕꽃 구경 초청도 하려 했는데……. 아쉬움과 혹시나 하는 기대로 나는 다른 화분들에 물을 줄 때 죽은 더덕 화분에도 가끔씩 물을 부어주었다.

 

이듬해 봄에 신기하게도 더덕 한 싹이 솟아 나왔다. 나의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죽지를 못했던 모양이다. 나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되돌아온 것 같은 심정으로 정성껏 보살폈다. 네 개의 지주를 세우고 중간중간을 끈으로 얽어매어 더덕을 올렸다. 위로만 감아 오른 줄기를 살살 풀어서 옆으로 돌려 감기를 여러 번 하였다. 더덕은 잘 자라 한 아름의 덩굴을 이루었다. 마디마다 가느다란 꽃줄기가 나오더니 꽃송이들이 피기 시작했다. 먼저 핀 송이가 지는가 하면 다른 송이가 피고, 시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것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새 송이들은 끊임없이 경쟁하듯 꽃을 피워냈다. 더덕꽃 향내가 온 집안을 채웠다. 그렇게 5~7월 두세 달을 더덕은 나에게 어여쁜 모습과 좋은 향기를 주며 함께 여름을 났다.

 

그런데, 더덕은 또 한 차례 죽을 지경을 맞게 되었다. 초빙교수로 외국에 봄학기 동안 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원주 숙소에 와서 물을 준 가족들의 정성이 나만 못했던 모양이다. 귀국해서 누렇게 말라버린 더덕 줄기를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까움보다 죄송스러움이 더 앞섰다.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것을 또 죽이다니……. 나는 스스로 위로하는 마음으로 겨울 내내 바짝 마른 줄기를 그대로 둔 채 속죄하는 마음으로 가끔씩 물을 주곤 했다.

그런데 금년 봄에, 그 더덕이 다시 싹이 난 것이다. 두 줄기로 시작된 더덕넝쿨은 가지마다 잎새를 달고 다시 꽃대를 내며 잘 자랐다. 나는 틈만 나면 줄기를 풀어 옆으로 이리저리 감아 덤불을 만들었다. 더덕은 네 개의 알미늄 지지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해졌다. 나도 덩달아 생기가 올랐다.

 

유월 하순 어느 날, 더덕은 꽃을 피웠다. 세 송이는 막 만발하고 많은 꽃송이들이 봉오리져 있었다. 나는 반가워서 꽃송이부터 살펴보았다. 커다란 꽃송이가 불가사리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받침에 붙어서 종[⋂]처럼 아래로 매달려 있다. 길이 3㎝에 폭이 2㎝ 정도 되었다. 연초록의 꽃송이 끝 부분은 다섯 가닥으로 갈라져 밖으로 둥글게 살짝 말려져 있다. 꽃줄기는 굵은 볼펜 심 정도밖에 안 되게 가는데다 꼬부라져 있다. 꽃줄기에 비해 꽃송이가 너무 커서 금방이라도 끊어져 떨어질 것만 같다.

 

손바닥으로 꽃송이를 받쳐들고 들여다보니, 속 한가운데에는 암술이 연한 노란색 꽃가루를 담은 채 달려 있다. 마치 종의 추(錘)와 같다. 꽃송이의 안쪽 밑부분은 초록색인데, 정5각형의 짙은 자줏빛 테가 둘러져 있다. 그 주변으로 꽃송이의 흰색 부분에 이어, 3분의 2쯤부터 자갈색 반점들이 골고루 퍼져 있다. 꽃잎은 다시 5가닥으로 갈라져 밖으로 살짝 말려 있는데, 가운데는 진한 자주색이고 양쪽은 연초록이다. 끝이 뾰족한 초록색 꽃받침 5가닥이 별 모양으로 펴져 꽃송이를 받치고 있다.

 

나는 그런 모양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신기함에 저절로 감탄을 하였다. 작은 경단 모양의 둥근 연노랑 암술머리, 꽃송이 밑바닥의 초록 바탕에 짙은 자주색과 흰색의 5각형 테두리, 밖으로 나오면서 자갈색 반점을 가진 통꽃, 다섯 가닥으로 갈라진 꽃잎마다의 짙은 자주색과 연초록 무늬, 그 밖으로 받쳐주듯 펴진 별 모양의 초록 꽃받침― 그것들이 한꺼번에 바라보이는 그 색깔과 모양과 무늬의 배열이 그렇게 고아(高雅)하고 신비할 수가 없었다.

 

더덕은 단순한 식품 식물이 아니다. 특히 꽃은 생긴 그대로가 훌륭한 예술품이다. 생김새며 무늬며 빛깔까지 아름다움과 고상한 품위를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꽃송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멋진 훈장을 보는 것 같다.

“천재 화가가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신의 여기(餘技)에도 못 미칩니다.“

어느 화가가 들려준 말이 이 작은 더덕꽃 송이를 보면서 저절로 수긍이 되었다. 거기에다 이 꽃은 좋은 향내까지 풍기고 있지 않은가.

 

산더덕을 심겠다고 종이에 쌀 때 들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이런 대구를 했다.

“더덕은 맛과 향기가 그만이지요. 하지만 기르는 재미는 더욱 맛이 날 겁니다.”

 

이제 나는 그 세 가지 맛을 다 보았다. 그리고 지금 더덕을 바라보며 그 흐뭇함을 즐기고 있다. 더덕을 식용으로 쓰자고는 기르지만, 화초로야 누가 대접이나 했던가? 살아 있는 향초(香草), 바람이 불면 향기를 퍼뜨리며 종소리를 낼 것 같은 꽃송이, 초록색 잎새들 사이로 무수히 매달려 있는 더덕 꽃송이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겁고 흐뭇한 것인지 모른다. 아름다움과 향내와 멋스런 자태에 나는 다시 한번 더덕 화분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번 주말에는 더덕꽃 구경 초대를 해야지. 특히 이런 말을 했던 그때 그 사람들을 부르고 싶다.

“더덕, 그거 비싸지도 않은데 뭣 하러 길러요?”

“바쁘신데 무슨 시간이 있어서 더덕을 다 길러요?”

“아파트에서는 못 길러요. 더구나 화분에서는 어렵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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