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와 배우(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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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와 배우(70)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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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吉雨의 수필세계>
 

 

영화 촬영장.

취조실이다. 

범인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다.

살펴보니 유명한 배우이다.

취조관은 신인인 듯 낯이 설다.

둘은 작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있다.

옆에는 커다란 촬영기가 허리 높이로 놓여 있다.

감독과 조수, 보조원들이 둘러서 있다.


조명 기사가 불을 켠다.

감독이 “래디 고”를 외친다.

취조관이 큰소리를 치며 다그친다.

“너 빨리 대.”

범인은 묵묵부답이다.

“정말 안 불 거야? 맞아야겠어?.”

취조관은 벌떡 일어서더니 다가가 따귀를 올린다.

그래도 한 마디 말도 않는다.

취조관은 머리카락을 잡아 흔든다.

범인은 맞기만 할 뿐이다.


감독이 중단시킨다.

실감나게 때리라며 다시 하란다.

취조관은 미안해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끌려온 범인은 또 맞았다.

그래도 감독은 다시 시킨다.

그러자 취조 역의 태도가 달라졌다.

정말 화가 났는지 양쪽 뺨을 마구 때린다.

범인은 얼굴을 내맡긴 듯 맞기만 한다.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잡고 흔들어댄다.

“지독한 놈이군.”

제 풀에 지쳤다는 듯이 취조관이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감독이 ‘됐다’고 말한다.


그때 주인공인 범인이 다시 하자고 한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다른 배우가 말한다.

“얼굴이 빨개요. 너무 맞았어요.”

감독이 힐끗 쳐다보고는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맞는 놈이 다시 하자는 것 처음 보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지껄인다.

“주인공이 하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그러더니 ‘레디 고’를 외친다.


끝난 뒤에 내가 매만 맞은 주인공에게 물었다.

“그렇게 맞고도 왜 다시 하자고 했나요?

 더구나 감독이 오케이를 놓았는데.“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맘에 들지 않아서요.

 영화는 한 번 찍으면 그만이거든요.“


좋은 영화는 좋은 감독에 의해서만이 아니다.

훌륭한 배우의 이런 열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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