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빛으로 가을길을 열어주던 코스모스도 떠났다. 주렁주렁 가을의 언덕길을 장식해주던 열매들도 ,황금의 물결로 가을의 들판을 주름잡던 낟알들도 모두가 주인의 품으로 귀가했다. 이제 락엽이 노란 주단인양 거리에 펴질 때 떠나야하는 형제들을 어떻게 바래야 할가하는 생각이 미치자 코마루가 찡해남을 어쩔수 없다. 언녕 떠나야 될 몸인데 시든 이파리가 되여 멀쩡히 남아있는 자신도 서글프기만 하다. 가슴을 때리던 하나하나의 사연들을 락엽처럼 날려보내고 이 가을에는 아마도 날아가야 할가부다. 찬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씨앗처럼.
"어디로 가려는거지?"
"모르겠어요. 가다가 막히는 곳이 있겠지요. "
서로의 눈들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웬 영문이냐? 연연한 카페의 노래가 우리들의 령혼을 적시며 흘러든다.
원래 우리는 슬픈 족속인가 보다. 그 어디에나 뿌리를 박지 못하고 또 박을 수 없는 부평초같은 갗은 족속! 아니, 뿌리는 있어도 뿌리 내린 자리에 씨를 받지 못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민들레 씨앗인가보다.
두만강을 건너와서 백여년 개척한 땅에 비록 일제들의 침략의 마수가 뻗쳐 60여년전에 우리 조상들의 피땀으로 일어난 공장이지만 해방과 더불어 2세 3세까지 억척스레 일하여 구백륙십만평방키로메터의 땅우에서 유일하 팔프기지의 코치로 이름 높았던 우리의 명줄을 달았던 공장이 수년간의 경영부진으로 몸부림치다가 지금은 우리의 것이 아닌 그 누구에게 속했는지 몽롱하다. 산동성의 한 사인기업과의 합자로 그것도 대방이 51%, 우리가 49%의 비례로 획분되여 굴러온 돌에 박힌 돌이 빼여버려지는 신세이다. 인젠 공장도 사람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분명한 획분으로 쫓겨나듯이 크고 작은 물건들을 챙겨가지고 공장밖으로 이사하는 직원들의 거동이 눈에 아프게 비껴온다. 이제 꽁꽁 얼었던 손을 호호 불면서 연기가 나던 굴뚝을 쳐다보면서 기대하던 마음도 버려야한다는 생각이 더 세차게 가슴을 때린다.
서서히 펼쳐졌던 아름다운 풍경이 여기서 막을 내리는가 ? 두만강을 한옆에 낀 천평벌남쪽모퉁이에 덩실하게 앉은 산간의 작은 진, 명승고적이며 대도시가 부럽지 않았던 나의 고향이였다. 우중충 높이 솟은 공장건물과 하늘을 찌른 칠형제 굴뚝이 황금빛 투구를 쓰고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에 비낀 황홀경은 뭇신선들 살아가던 금은대를 무색하게 할 듯이 자호감을 안겨주던 나의 공장이였다. 우르릉 우르릉 기계의 동음이 고드럽게 귀맛 돋구던 엄마의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나의 직장이였다. 아버지의 땀에 소금돋쳐 신의와 부강을 이 산간에서 나래 펴고 바다건너 섬나라로, 대양너머 아메리카나라들로, 산맥너머 비단의 길 따라 서쪽나라들로 내닫던 영광의 제품들이였다. 아이들의 별처럼 총총한 눈동자들에서 발하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발굴하던 처녀지같은 문화쎈터였다. 자양분으로 충적된 보금자리에 평화와 안녕이 깃을 내린 주택단지들이였다. 수십년 고이고이 키워준 어버이사랑에 보답하고저 암에 걸린 어버이를 구하려는 효도의 마음으로 가적이라도 바라던 우리의 다정다감한 족속들은 신들메를 조이면서 열여덟개월의 로임체불에도 참고 견디면서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모은 자금과 친척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 꾼 자금을 공장경영집금과 주식에 선뜻이 바쳤었다. 이로써 받은 대가는 너무나도 참담하다. 정리실업이 황소같이 지렁이같이 대를 이어 일해온 우리 형제들의 마지막 보수란 말인가?
피빛에 젖어든 황혼을 붙잡고
어설피 울고있는 황소의 무리들
칠흙속에 포장된 거리에서
풀 한포기 어디 가서 구하랴
무리무리 지어 방황하는 정리실업군체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휘감겨드는 마음이 산란하기만 하다. 70년대 배워야 할 나이에는 광활한 천지에로 하향(下鄕)하고 80년대 하해(下海)의 물결에 감겨도 보고 90년대로부터 공장의 경영부진으로 같이 몸부림치다가 정리실업(下崗)대오의 실체를 이루었다. 현대문명이 낳은 천당같은 빌딩들이 지구촌을 밟고 일어설 때 내 조부가 첫삽을 떠서 세운 빌딩보다 높은 굴뚝이 몸부림치는 환각아닌 환영(幻影)이 펼쳐질때 우리 형제들의 곤혹은 그 무엇에 비길가? 국가 퇴직 나이도 안되고 그 어디에서나 밀어던지는 40대의 그네들, 고립차원의 경지도 아닌 소박한 마음으로 덕을 쌓으려는 심사도 없이 오직 자신의 피와 뼈로 인간을 완성하려고 자신이 선 공간을 메우려고 애만 쓴다. 이제 수십년 손에 익혔던 일자리에서 밀려나와 새로운 일거리 탐지의 길을 찾아 뿔뿔이 떠날 차비를 할 그네들이 정녕 눈물만 겹다. 거두어들이는 낟알이 아니여서 주인에게 속할수 없는 민들레씨앗이 되어 이제 마가을 찬바람과같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갈것이다. 날려가다가 그 어느 언덕, 들녘, 돌틈사이에 묻혔다가 봄빛을 기다려 싹 트고 꽃잎을 피우고 또 씨앗을 날리고 ...... 그 씨앗이 다시 날리여 지구촌 방방곡곡을 휩쓸다가 무슨 씨와 번접할가? 슬픈속에 어설픈 희망도 기탁해본다. 단 하루를 살아도 마가을 찬서리속에서라도 행복한양 웃고 있는 갓꽃도 부럽다. 가을 떠나보내는 우악새야, 가냘픈 하얀 손 흔들어 바래지 말아다오. 정열의 마지막 발악인양 울긋불긋 단풍이 환송하는가? 일사천리로 다가서 는 현실이 꿈만 같다. .
알알의 두만강변 민들레 씨앗, 정녕 뿌리는 있어도 씨앗은 날려버려져 야하는 방울방울 피 맺힌 족속들의 생명의 한이여라!
200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