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강릉시립미술관에서는 강릉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 전공, 재학 중인 중국동포 유학생 최청호의 서양화 전시회가 열리었다. 이에 기자는 최청호 씨를 찾아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 개인 전시회 오픈을 축하합니다. 쉽지 않은 걸음을 내디뎠네요. 감수가 어떤가요?
◆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덕분이지요. 특히, 우리 강릉대학교 일반대학원 원장님과 지도교수님의 사랑 속에서 개인전을 갖게 되어 저는 더 없이 행복합니다.
기자: 이번 오픈식에 참가한 분들 좀 소개시켜주시지요. 감동 많이 받았겠는데요.
◆ 이번 오픈식에는 강릉대학교 일반대학원 한 기주 원장님, 강릉대학교 미술학과 김 한국 교수님(지도교수), 강릉대학교 조소과 김 창규 교수님, 연변미술협회 주훈 부회장님(중국화 작가), 강릉대학교 박 춘미 강사님 등과 강릉대학교 대학원 재학생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강릉시의 시민들과 해당 부처에서도 찾아주셨고요.
이번 전시회는 제 생애에 영원히 기록될, 만리장성의 첫걸음을 내 디딘 날입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비록 자그마한 전시회이나, 저는 우리 조선족 유학생들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한국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힘들고 어지럽고 위험한 3D업종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시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다소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자: 고향이 연변이라 했던가요, 언제부터 그림공부를 하셨지요?
◆ 연길입니다. 전 어릴 적부터 그림공부에 취미를 가졌습니다. 그림이 너무 좋아 수업 시간 책상 밑에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가면서 미술 관련 책을 보다가 선생님께 매의 벌을 받고 돌아앉아서는 또 미술책을 보고 또 매의 벌을 받고…이렇게 수 없이 매의 벌을 받으면서도 미술 작가가 되려는 꿈은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그 시절 저에게 매 드신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에 꿈을 접을 수 가 없었던 것이 아마 선생님의 매가 아니였던가 봅니다. 처벌 받을수록 꿈이 더 굳어만 졌으니까요. 이 자리를 빌어 존경하는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전 이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미술작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대한항공편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기자: 유학생활이 결코 평탄치는 않았겠는데요?
◆ 그랬지요. 가정경제 상황 때문에 학비도, 기숙사비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강릉은 지방이라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방학이나 공휴일이면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산 설고 물 선 타향 서울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서울역 노숙자생활의 맛도 봐야만 했지요. 있을 곳 없는 저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곧바로 노숙자 속에 합류해 밤을 보내군 했습니다. 노숙자 속에서 뜬 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때마다 사나이가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그렇게 매 맞으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미술 작가의 꿈도 훌 날려 보내고 산속에 들어가 머리 빡빡 깎고 절에서 중 생활을 하고 싶던 충동, 또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때론 너무 배고파서 붕어빵 옆에서 빙빙 돌다가 꾹꾹 참고 하루 끼니를 거르고, 또 아르바이트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정말로 눈물의 나날들이었지요. 그래서 일당을 받고는 그 돈 쳐다보고 눈물 펑펑 떨구기도 했지요. 때론 “돈이 뭐기에 내가 이 잘난 돈 때문에 미술가의 꿈을 포기해야 하지?” 하고 정신질환자처럼 자문자답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 학기 시작되면 그 다음 학기 학비며 기숙사비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동해바다 사나운 파도를 멀쩡하게 바라보면서 무거운 한 숨만 푹푹 내쉬곤 하였지요. 그 때의 그림이 바로 동해바다 사나운 파도를 멀쩡하게 바라보면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이 자화상이었지요.…
기자: 네, 그래서요?
◆ 전 그래도 행운아라 생각합니다. 미술 작가의 꿈을 포기할까 말까, 방황 할 때 강릉대학교 일반대학원 원장 한 기주 교수님과 지도교수 김 한국 교수님께서 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두 분께서 계셨기에 저는 희망과 용기를 되찾고 학업에 몰두하여 장학생 장학금으로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료가 끝난 후에는 기숙사를 퇴사하고 논문 준비를 했어야 했습니다. 어디에 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망설 일 때 또, 담당 교수님께서 강릉대 일반대학원 원장 교수님의 작업실에 거처를 잡아주시고 숙박과 식사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너무 너무 고마운 분들입니다. 교수님 곁에 있으면서 저는 교수님으로부터 새롭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또 다시 미술작가의 꿈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강릉대학교 일반대학원 원장님과 지도교수님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제자 최청호가 올리는 큰 절을 받아주십시오!…
기자: 네, 참말 훌륭하시고 좋은 분들이군요. 그 분들의 큰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은, 이제는 서양화 창작에서 혼신을 다해 이 사회에 ‘최창호’란 도장을 확실하게 찍어가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 네, 그분들의 바람도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꼭 열심히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