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공원으로 말하면 등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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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공원으로 말하면 등 외 2편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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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1. 애주일화

      바이올린의 귀재 빠가니니는 세개 현으로도 바이올린을 무난하게 연주하였고 똘스또이는 한 장편의 서두를 사십번 고쳤다는 등 명인의 뒤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수두룩이 따른다.

로기순의학박사는 하루 삼시 술에 밥을 말아자신다. 어린 시절에 귀방울이 따갑게 들은 일화이다. 로박사는 비뇨연구를 해서 박사자격을 가졌지만 일본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 독일에 가서 인정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와전이라면 내 잘못이다. 

    귀동냥으로 소문만 들었을뿐 로박사를 직접 본적은 없다. 그러다가 띄워본것이 그의 장례행렬이였다. 소학을 마친 뒤였을가, 초중입학을 하고나서였을가. 공원뒤길 (서쪽)로 앞에는 추도곡을 연주하는 취주악대가 서고 그뒤를 슬픔에 잠긴 긴 장례행렬이 뒤따르는 장면은 실로 굉장했다.

    그의 서거가 혹시 과음과 관련된게 아니였는지 모를 일이다. 허지만 연변의학의 푸름한 새벽길을 연 로박사의 애주일화자체는 여전히 존경을 자아낼뿐이다. 비록 흠이 엿보이는 일화일지라도 존귀한 분의 인간적인 일화는 역시 매력적인것이다.

2. 명산은 명산대로

자연생태보전이 잘되여 연변은 갈수록 세인의 각광을 받고있다. 인구밀도가 조밀하지 않고 삼림피복률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장백산을 비롯하여 산수가 수려하니 그럴만도 하다.

연길만 보더라도 모아산, 뾰족산, 마반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부르하통하가 도심을 적시며 흘러 천혜의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무성한 수림을 거느린 모아산은 선량한 선비의 중절모자처럼 우아하게 솟아있어 명실공히 연길의 상징으로 되고있다. 모아산은 어느 때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다양한 모습으로 정겹게 안겨오는 멋진 산이다. 객지에 나가서도 먼저 떠오르는 산이 고향산 모아산이다.

이렇듯 훌륭한 명산도 남쪽 산중턱엔 지난날의 무지를 일깨워주듯이 아픈 상흔이 남아있다. 룡정의 말밥굽산이 돌캐기군들에 의해 도륙을 당한 뼈저린 교훈이 있듯이 모아산도 한때 구들장채석으로 인하여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자국을 남긴것이다.

명산은 명산대접을 받아야 한다. 명산을 명산그대로 존대하는것이 명산에 대한 례의요, 명산의 가치를 아는것이다. 명산에는 전망계획을 세우지 않는것이 좋은 전망계획일수가 있다. 명산에는 큰건축물건설계획을 세우지 않는것이 바람직한 건설계획이다. 장백산은 장백산으로서 매력적이고 상징적인 명산이다. 후지산은 후지산으로서 일본의 상징이다. 모아산은 모아산으로서 연길의 표징이요, 상징이다.  인공적인것이 아닌 자연자체로서 명산은 명물이요 브랜드이다.

지난 8월 28일, 연변도시전망계획위원회 07년 제5차회의에서 연길 모아산에 일기레이다탑을 세워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여러 심사대상 토의시의 초점이였다는 보도에 심정이 개운하지 못하다. 찬반론란때문에 결론은 내려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아직은 이 다행이라는 말이 이를지도 모른다. 레이다탑건설찬성자들이 재심을 들구나올수도 있잖은가.

구들장을 캐자고 접어들든, 관광객유치명의로 접근하든, 명산에 건축을 시도하거나 공원에 저자거리를 앉히는식의 발상은 적어도 명물명소에 대한 례의가 아니다. 생태학적인 가치관과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기대된다. 일기레이다탑의 효과도 기대되기는 하지만 탑같은걸 세울데는 많다. 명산만은 제발 명산으로서의 어엿한 이목구비와 자연전래의 생태가 훼손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제날 미개가 저지른 구들장채석의 상흔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3. 연길공원으로 말하면


    1949년부터 연길에 살면서 어린 생각에도 연길의 몇가지 좋은 점이 알리였다.

그 하나는 수만명밖에 안살고 단층집이 흔했던 옛날 연길시내 한복판에 서광장이라는 꽤 큰 광장이 있다는 점이였다.

1953년 쓰딸린서거추모대회가 서광장에서 열렸다. 지금의 꼬마시대광장보다는 훨씬 컸다. 배구대회랑 시민이 운집한 가무단공연이랑 빈번했던 서광장에 복무대루, 기관 등 건물들이 자리잡아 시중심이 막힌건 한참 뒤의 일이다. 게다가 연변병원과 백산호텔(국제구락부)이 남북으로 길이나 시야를 막았다. 지난일은 후회막급이다.

다른 하나는 도심에 젖줄기마냥 부르하통하가 흘러서 목욕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와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구성진 방치소리를 들을수 있다는 점이였다.  

나무가 우거진 방둑길로는 산책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은 강변도로로 차량운행이 원활해진대신 행인의 강변접근이 어려워졌고 만국자동차박람회(주요도로 규제대상인 원시적인 수동식뜨락또르, 높은 데시벨의 대중소트럭들에서 각종 뻐스, 오토바이와 최신식승용차까지 무차별통과)를 련상시키는건 유감이다.

강 량안 아빠트바자들을 보고 녕파시에서 온 관광객부부가 <<우리 녕파에서는 강 량안에 수십메터 넓이의 수림대를 둘러주는데>> 하며 머리를 갸웃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무가 적어지고 소음이 많아지고 아빠트벽체가 막아서(또 막힘?) 강변에 랑만이 반감된건 사실이나 병원앞 애단로의 가로수를 세줄네줄로 하여 원래의 가로수를 살려냈고 특히 연서교 서쪽 북안수림을 새 수림(연길 유일의 가시적인 도심수림)으로 복원하고있는 모습은 록색리념을 반영하는 대단히 희망적인 조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작던 연길시내에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는 점이였다.

연길공원으로 말하면 그 자체가 국자가의 몇 안되는 유적이요, 연길의 민속민풍이 숨쉬는 명소이다. 고목이 우거진 수림과 소나무숲, 치솟는 분수, 우아한 늪과 정자, 희귀종 동물들이 재롱을 부리는 동물원, 아담한 층계, 그리고 지금은 용도변경이지만 워낙은 아담했던 경기장, 유적지 소돈대우론 연길을 한눈에 굽어볼수 있는 유서깊은 정자, 이렇게 연길공원의 정취를 꼽자면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연길공원이 시민들의 둘도 없는 쾌적한 보금자리요, 남녀로소가 즐겨찾는 마음의 명소임을 부정할 시민이 있을까? 명절이면 수림속 특설무대에서 풍악이 울렸고  경기장에서는 주덕해주장의 연설을 비롯해 행사가 많았다. 휴식산책코스, 손님 초대코스인 공원이 6.1절이나  8.15로인절이면 더구나 여러 민족 남녀로소들 환락의 웃음이 넘쳐났다. 외현의 농촌녀성들이 농한기에 연길에 오면 파마를 하고 랭면을 자시고 공원구경을 하는것이 최대의 락이였다.

인간본위, 공원식도시, 삶의 질이 운위(雲謂)되는 지금 보아도 연길공원은 시내의 유일한 도심공원으로서 선견지명이 낳은 명소임이 틀림없다. 연길은 지금 연길, 룡정, 도문을 통합한 동변의 중심도시로 거듭날것이 확실시되고있지만 연길공원을 그 중심도시의 자랑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다. 공원대문 량켠과 공원 동북켠 주변수림을 상가, 기관, 아빠트따위가 잠식하며 공원의 푸름을 가리고 앗아가 가슴아프지만 그런 와중에도 연길의 간판이요, 자존인  연길공원의 자색은 아직 남아있다.

이런 공원이기에 일전에 연길텔레비죤이 연길공원을 모아산아래로 이전한다는 뉴스를, 연변일보가 공원 동물원이전뉴스를 전하자 나는 청천벽력인듯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직은 론증단계라는 소문에는 안도의 숨이 나왔다. 전체를 옮기든 부분을 옮기든 오십보 백보로 느껴졌고 민속민풍을 간직한 공원을 허물며까지 민속거리<<개발>>을 해야 하는지, 나로선 이런 발상자체가 도무지 반갑지 않았다.

황차 모아산아래는 진작 삼림공원, 식물원, 민속촌, 휴양소 등 공원밀집지역으로 변해 하나뿐인 연길공원를 옮겨가야 할 정도로 궁하지 않아보인다. (동물들도 비행기소리 요란한 곳을 싫어할듯.) 옛날엔 공원 하나로 괜찮았지만 인구가 십배 팽창된 지금에 와서 공원을 더 만들지는 못할망정 하나뿐인 공원수림을 절개수술한다는건 나로선 꿈에도 생각못한 일이다. 민속거리(지금까진 행사때  일회용일뿐)는 더 합당한 자릴 찾으면 그만이지만 공원은 그대로 둬야할것은 물론 오히려 대문량켠 건물철거 등 조처로 공원경관 원상복구가 더 필요하잖을가싶다.

록색도시를 꿈꾸는 연길의 상징, 력사의 애환이 어린 연길의 문화부호, 그리고 오늘 인간본위의 방침아래 연길시민이 믿고사는 공기정화의 록색통로인 연길공원이 사활의 갈림길에 선것 같아 근심이다. 원림도시를 향한 원견있는 결책이 기대된다!

(부언ㅡ작년 연룡도일체화포럼에서 국내 유수의 전문가들은 연변엔 민속민풍이 살아있어 따로 생명력이 없는 민속촌같은걸 만들 필요가 없다고 충고를 준바 있다. 따라서 민속먹거리거리를 따로 신설한다는것 역시 재고가 필요하잖을가싶다. 민족민속식당이 연길엔 흔하디 흔하다. 돈을 팔면서 불쌍한 동물들을 쫓아내면서까지 먹거리거리를 내올 필요가 있을가? 산에 있던 동물이 시내공원우리에 들어와 희한한것이지 그걸 다시 산으로 옮겨간다는 발상자체가 과연 합당한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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