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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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의 운명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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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吉雨 수필 69>

  옛날에 들은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자그마한 찻잔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들어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는 오는 사람마다 꺼내어 보이면서 명품(名品)이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놀러 온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찻잔은 좋기는 한데 몇 월 몇 일 몇 시에 깨질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주인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도사(道士)처럼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그것이 이 찻잔의 운명이야.”

  그는 그 말을 듣고 웃어넘기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그 날이 가까워지자 그 찻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찻잔을 꺼내어 놓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살펴보았다. 찻잔은 멋지게 만들어졌고 온전하였다. 절대로 깨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친구의 말이 장난기 섞인 허황된 농담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 날이 다가오자 그는 호기심과 초조함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생물인 찻잔이 무슨 운명(運命)이 있을 것이며, 그 날 그 시점(時點)에 어째서 깨진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사실 여부가 더욱 궁금해졌다. 잘 보관되어 있는 것이 맥없이 깨질 이유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믿을 수 없는 말에 얽매여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였다.

  마침내 그 날이 밝아 왔다. 그는 결심을 하였다. 이 찻잔이 과연 깨질 것인가? 깨진다면 어째서 깨지며, 어떻게 깨질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찻잔을 깨지게 하는 것일까?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확실하게 확인해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방 한가운데에다 찻상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찻잔을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치워버렸다. 방안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 놓았다. 그리고는 아랫목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그는 더욱 초조해졌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는 그 찻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1분 1초라도 놓칠까 봐 눈을 깜짝이는 일조차 조심하면서 바라보았다. 찻잔은 찻상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고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기만 하였다.

 

  2분 전, 1분 전,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서 꼼짝도 않고 찻잔을 응시하였다. 불안과 초조로 숨도 함부로 쉬지 못했다. 30초 전, 20초 전, 그런데 그 순간 방문이 확 열리며 상기된 얼굴을 한 부인이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방 한가운데에 찻상 위에 올려놓은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이 찻잔이 뭐길래 대답도 없이 쳐다만 보고 있는 거    요?”

  그러고는 찻상을 발로 냅다 걷어찼다. 찻상은 저만치 굴러가고 찻잔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방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찻잔은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그때 시간을 알리는 괘종 소리가 울렸다.

  그것을 본 남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하! 이게 이렇게 깨지는구나!”

  그리고는 찻잔의 정확한 운명에 감탄하면서 몇 번이나 찬탄을 하였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생명체도 아닌 찻잔이 무슨 운명이 있겠는가? 다만 그 시점에 그것이 깨졌을 뿐인 것이다.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일이나 너무 작은 것에 지나치게 집착(執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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