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목사의 장편실화>
나의 스토리(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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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목사의 장편실화>
나의 스토리(57~58)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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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철거를 거부하던 철거반원들

경실련 초기에 서초구의 불법 비닐하우스에 사는 빈민들이 경실련에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도시빈민들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무작정 돕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 당시 빈민들 가운데는 정말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투기 때문에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오갈 데 없는 빈민들은 정부가 지하실 방 한 칸이라도 얻을 수 있는 배려를 해주어서 길거리에 나앉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정부는 그런 대책 없이 무조건 철거를 강행한다는 방침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빈민들에게 “만약 여러분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당하면 그때는 경실련 사람들이 직접 나가서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도 ‘경실련은 대책 없는 철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뒤인 90년 5월 서초구 신원동의 그린벨트 지역 내에 있는 비닐하우스주민들이 내게 ‘지금 비닐하우스가 철거당하고 있으니 빨리 와서 도와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걸어 왔다. 무척 다급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한 주민은 언젠가 내가 “몸으로 막겠다”고 한 사실을 기억해내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감옥을 여러 차례 가긴 했지만 이 나이에 또 잡혀갈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경실련에 연락하여 경실련 도시빈민협의회 회원들 10명 가량도 함께 오게 했다.

도착해 보니 그곳에서는 이미 10여 가구가 철거를 당했고, 계속 철거를 강행하려는 철거반원과 주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져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철거반원들과 주민들 사이에 한 줄로 늘어섰다. 모두 대책없는 철거를 반대한다는 띠도 둘렀다.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철거반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  보았다.
이때 내가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태까지 도시빈민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당하고 몸으로 막으려다 부상당하고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당하는 모습을 집에서 신문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국민소득 6천불 시대에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나앉는 서울 시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집에서 걱정만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서울시민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직접 철거현장에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만약 철거를 강행하려거든 먼저 나를 잡아 가두십시오. 그리고 나서 철거를 계속 하십시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철거반원들이 30~40미터 뒤로 물러서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철거반원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한 시청직원이 철거반원들에게 아무리 독촉해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때 철거반원들이 2~30명 가량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들은 하루 일당을 받고 새마을 취로사업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당황한 시청직원들이 경찰에 연락을 했지만, 경실련 회원들 때문에 철거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경찰에서 자기들은 나올 수 없다는 전갈을 보내오는 것 같았다. 그러자 시청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사정했다.
“목사님께서 우리 서울시 체면을 살려주십시오. 목사님이 먼저 물러가 주시면 우리도 곧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철거 안 하겠다는 약속만 지킨다면 얼마든지 물러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뒤로 물러섰고, 곧 이어 시청직원들도 그 자리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한 동안은 어디서 철거만 일어났다 하면 주민들이 경실련에 도움을 청하는 통에 그때마다 나는 철거현장에 나가 두세 시간씩 몸으로 막아서고 그러면 철거반원들이 오다가도 다시 돌아가곤 했다.
그 뒤부터 철거가 있을 때에는 시청에서 경실련에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엔 몇 집 철거하는 것인데, 이미 다 예정되고 있는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해를 해주십시오’라거나 ‘이번 건은 대책이 있는 것이니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얘기를 듣고 상황을 판단해 현장에 나가거나 나가지지 않거나 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구약성서를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얘기가 나온다. 점령하는 방식이 성스러운 물건들이 들어 있는 법궤를 메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성을 돌다가 일곱 번째 날 일곱 바퀴를 돌고 ‘와~~’하고 소리를 지르자 여리고성이 그냥 맥없이 무너졌다는 얘기이다.
이 여리고성을 깨뜨리는 이야기를 나는 어릴 적에 주일학교에서 재미있는 성경이야기로 들었다.

그런데 철거반원들과의 경험을 겪은 뒤 이 여리고성을 깨뜨리는 이야기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여호수아의 세력이 너무나도 옳고 진리에 입각해 있어서 하나님이 그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여리고성이 스스로 무릎에 힘이 빠지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독교 운동의 바른 모습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참된 기독교운동은 얼마나 강력하게 투쟁하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이 얼마나 영적인 힘을 갖고 있느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사회를 정말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이와 같은 ‘선한 의지’의 힘이라는 점을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 뜨겁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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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안기부 직원의 고백

내가 한창 도시빈민들을 돕는 운동을 할 때 한번은 지역 정보과 형사와 함께 저녁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형사가 나를 보더니 대뜸 “저는 목사님을 참 존경합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당황해 했다.

‘정보과 형사가 나를 존경한다니. 정보과 형사가 누군가. 젊은 시절 나를 잡아가서 조사하고 온갖 인격적인 모욕을 주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나를 졸졸 쫒아 다니면서 감시하고 가택연금하고 어떤 때는 공갈협박까지 했던 사람들이 아닌갗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경실련에 잠깐 출입한 적이 있는 한 안기부 직원이 나한테 “목사님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때는 내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뭐 잘못된 것이 없는가고 생각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온건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기로서니 이래뵈도 내가 과거에 감옥을 세 차례나 간 내노라 하는 재야운동가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어용이 되어 안기부 직원의 존경을 받게 되었나?”

하지만 그러고 나서 나는 한 가지 커다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정말 옳고 진리에 입각한 운동을 한다면 설사 그 운동과 정반대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도 그 운동을 향해 지지와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자기가 존경하는 운동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댈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실제로 과거 노태우 정권 당시부터 경실련 담당 안기부 직원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 분은 경실련 활동을 감시하고 정보도 캐내고 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을 만날 때 ‘저 사람이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만나지 않았다.

나는 교회에서 교인을 만나는 자세로 그 직원과 만나 인간적인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비록 안기부 소속 직원이지만, 그 사람과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한 적이 없다.
물론 어떤 경우 불가피하게 우리의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한 적은 있었지만, 그 사람을 이용하거나 뒤통수를 치거나 하는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하니 그 직원은 안기부 안에서 ‘경실련 운동의 실체는 이런 것이다’라고 납득시키고 일깨우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 경실련이 노태우정권 당시에 정부의 탄압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이러한 안기부 직원의 자발적인 경실련 변호 탓이었다.  

경실련은 노태우정권 당시만 해도 정부정책에 대해 재야단체 못지않게 맹렬하게 공격을 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우리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제시하고 합법적으로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뿐이다.
때문에 정부 안에서 일부 강경론자들은 ‘왜 경실련을 가만 놔두느냐’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기부에도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고, 그들이 우리의 운동에 공감했으며, 그들이 나서서 경실련을 보호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옛날의 운동권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회주의적 행동’ 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자기가 하는 운동의 도덕적, 정신적 힘이 강해서 상대방까지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많다.
한번은 내가 선배목사님인 김용복박사에게 이런 경험을 들려주었더니 그가 동독에서 만난 한 목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동독이 붕괴될 당시 라이프찌히의 어느 교회 앞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됐는데, 그 시위에 십만명의 인파가 모여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 촛불시위가 동독 전역으로 퍼져 나가 결국 동독정권이 무너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데 인파가 자꾸 불어나니까 동독 정부가 발포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발포 명령이 밑으로 내려오다가 도중에 시민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어 버렸고,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촛불시위가 전국으로 퍼지고 동독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말하기를, 발포명령이 어디에서 시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었는가를 지금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목사님께서 “시민들이 만약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하지 않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다면 과연 그런 결과를 가져왔겠느냐, 아마도 군인들이 아무런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을 것이다. 그러면 동독도 무너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새삼 사람들의 선한의지가 모였을 때 발휘하는 엄청난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경실련을 시작할 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나의 신앙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 이러한 운동방법론이 겉으로는 힘이 약한 것 같지만, 그 속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제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경실련 운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여 WCC 주최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선한의지를 모아서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내 생각이 나의 독특한 종교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가지지 못한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조직화해서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 운동, 이것만이 사회적 형평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모델을 지향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산권의 붕괴현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의 힘, 정의의 힘, 양심과 도덕의 힘을 모아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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