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장을 못하고 사는 여자
“자기야, 난 화장이 안 먹는단 말이야. 어떡해?” 영자는 거울 앞에 앉아 반시간 동안 화장을 하느라 애썼건만 신통치 않아 남편에게 원망하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여보, 매안해.” 남편 정식이가 내심으로 죄송한 말을 한다.
“이게 다 자기 탓이잖아, 6년 동안이나 화장을 안 했으니 얼굴에 먹힐 리가 있나?”
정확히 말해서 영자는 한국에 온 지난 6년 동안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편이 못하게 해서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영자는 세상에서 외모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세상에서 여성들이 화장을 가장 찐하게 하는 대한민국에 와서 30대 나이에 화장을 못하고 사는 것이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되어 때로는 분하고 억울하고 심지어 남편의 얼굴을 쥐어뜯어주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이렇게 ‘여자 아닌 여자’로 6년 동안 살아오다가 어제이면 영자가 한국에 온지 6주년이 되는 날이고 오늘은 시아버님의 70돐 생일이 되는 날을 맞아 어제 남편 정식이가 백화점에 가서 영자의 고급화장품이며 고급 옷이며 악세사리이며 하여튼 수백만 원의 거금을 들여 사다주면서
“이제부터는 당신이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옷도 곱게 입고 몸매도 가꾸라.”고 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영자는 어리둥절해
“해가 서산에서 떴나, 저 인간이 왜 저러지?”라고 중얼거리면서 꿈인지 생인지 심기가 복잡했지만 여자라면 아름다움을 싫어할 자가 없듯이 남편이 사다준 물건들이 싫지는 않았다.
허나 오래간만에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게 될 일을 생각하니 너무 흥분되어 온밤 잠이 오지 않아 새벽 5시에 일어나 거울 앞에 앉았다.
화장을 하고 옷을 곱게 입게 된다면 진정한 여자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 거야,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화장품에 선뜻 손이 가지 않고 멍하니 지나간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영자는 1968년 문화혁명이 한참이던 복잡한 시대에 흑룡강성 오상시에서 1남 3녀인 맏이로 태어났다. 자식이 많은 데다 부모들의 건강이 좋지 못해 그녀의 집은 째지게 가난했다.
영자는 다행히 숙부들의 경제적인 후원에 의해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연변대학에서 전교의 ‘교화’는 몰라도 조문학부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미녀였다. 같은 학급의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부의 사내들도 영자에게 눈독을 드리고 애정공세를 퍼부어왔다.
그녀는 학교 때 문학에 두각을 나타내 이름을 날린 철수와 결혼하여 1남1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1996년 여름, 남편 철수가
“노임을 받아 어느 천 년에 부자가 되겠느냐?”면서 잡지사 직업을 때려치우고 하해(下海)했다. 처음에는 러시아를 상대로 하는 무역회사를 차려 돈을 좀 벌었다가 장사에 밝지 못해 남한테 사기당하고 거액의 빚을 걸머지게 되었다. 철수는 빚 꾼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달려들어 끝내 배기지 못하고 러시아로 도망갔다.
철수는 러시아에 간 후 돈이 없어 큰 장사는 못하고 기차표도매장사를 하다가 남의 마약장사에 걸려들어 경찰에 잡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뿐 사실인지, 뜬소문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당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거울 앞에 앉아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 남편 정식이 물었다.
“엉, 아니야 아무 것도.” 영자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 보아도 화장이 잘 먹히지 않아 영자는 신경질적으로 “난 화장을 안 할래.”라고 말했다.
“과거 내가 다 잘못했으니, 마음을 풀고 화장을 예쁘게 하란 말이야.” 남편이 이렇게 말하고는 화장실에 갔다.
영자는 화장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다가 또 넋을 잃은 사람처럼 뭔가 생각에 깊이 빠졌다.
영자는 남편이 없어진 3년 후인 1999년 고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사촌 동생 미자가 근무하는 북경한국무역회사에 취직했다.
그녀는 북경한국무역회사에서 장빈이라고 부르는 사장의 비서 겸 경리 업무를 맡아 열심히 일을 했다. 노임에 보너스까지 합치면 연간 1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 자식 둘을 양육하고 공부시키는데 넉넉했다.
미자가 그녀를 북경에 데려간 것은 처음부터 충분한 계산이 있었다. 사장은 부인이 수년 전에 7살 되는 아들애 장신을 남겨놓고 위암으로 돌아갔다. 사장은 마누라를 잃었으나 사업에 열중하고 아들애를 잘 키우고 있었다. 지금 세월에 돈깨나 쓰는 사내들이 흔히 마누라를 두고도 계집질을 하는 것이 다반사지만 사장은 오로지 일과 자식 외에는 다른 일에 눈을 팔지 않았다. 더욱이 마누라가 없어 다른 여자와 바람 피워도 주변사람들이 이해해 줄 것 같지만 사장은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빈은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훌륭한 사내였다.
미자는 영자를 사장과 붙여놓으려는 타산으로 북경에 데려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말을 꺼내기보다 둘이서 서로 같이 일을 하면서 사랑하게 된다면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미자의 생각이 신통하게 적중했다.
사장과 영자는 홀아비와 과부라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반년이 지나 사랑하게 되었고 동거하기 시작했다. 장빈은 영자의 두 자식의 장래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고 영자는 장신을 친아들처럼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장신 또한 영자를 친엄마처럼 잘 따라주고 있었다.
그런데 장빈은 영자를 일을 그만두고 살림하고 애를 키우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빈의 됨됨이로 봐선 앞으로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의 장래를 책임지는 것은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놀고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모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양심적으로 꺼리 끼는 일이다. 더욱이 영자는 동생 셋이나 되는데 그들이 시집장가가고 살림을 차리고 자식을 낳고 하면 돌봐주어야 하는데 큰일 작은일 모두 남자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면 속이 편치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복잡한 일까지 떠올리니 그녀는 도무지 가정주부로 살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어찌하면 좋을지를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2년 전에 한국에 시집간 친구 은숙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영자가 북경에서 장빈과 동거하고 있는 줄 모르고 괜찮은 신랑감이 있으니 한국에 와서 돈도 벌고 살라는 것이었다.
은숙이의 전화를 받은 영자는 머리가 복잡해났다.
장빈이가 비록 민족은 달라도 좋은 신랑감이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한족들은 조선족남자들에 비해 남존여비사상이 없이 마누라를 끔찍하게 생각해준다. 허나 주부로 사는 것에 도무지 신심이 없다. 그렇다고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버리고 한국에 간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아닌가?
일단 그녀는 다른 핑계를 대고 은숙이에게 1개월이란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결국 자신의 두 손으로 돈을 벌어 두 자식과 형제자매를 돌보고 또 장래에 형제자매와 친인척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마음을 굳히고 은숙에게 OK소식을 전했다.
이렇게 되어 영자는 6년 전에 한국인 정식이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이 천당은 몰라도 ‘명당’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한국에 오고 보니 중국에서 살기보다 이런저런 문제가 훨씬 더 많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
정식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에서 10여 분 동안 큰일을 보고나서 나오면서
“화장은 잘 되고 있는 거야? 열심히 해봐. 그 사이 나 한잠 더 잘게.”라고 말하고는 침대에 눕더니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화장이 먹히지 않아 화나 있는데도 저 인간은 저렇게 편히 잠들 수 있지?” 영자는 심기가 불편해 화장을 하지 않고 방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해 보려고 했으나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한편 그녀는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자꾸 저절로 회억되고 있었다.
6년 전 정식이는 35살 먹은 노총각이었고 영자는 30대 초반이지만 애가 둘이나 딸린 과부였다.
어떤 조선족여성들은 애 엄마이면서도 불구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처녀라고 속이고 한국인과 결혼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으나 영자는 양심상 정식이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허나 생각 밖으로 정식이는 개의치 않고 영자가 좋다고 하면서 기어코 결혼하겠다고 한다.
정식이가 첫눈에 영자한테 반하게 된 것은 영자의 착하고 성실한 성격이 맘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주로 외모였다.
영자는 얼굴이 복스럽게 예쁘게 생겼고 163센티의 키에 무용수와 같이 체격이 훤칠하게 쭉 빠지고 젖가슴과 엉덩이 등 툭툭 튀어나올 거는 선명하게 나왔고 쑥쑥 들어가야 할 곳은 들어가 있어 몸매가 매우 성감적이다.
정식이가 외모나 지력이 비록 영자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경제능력도 있고 집도 잘살고 있고 거기다 총각신분이다. 그래서 비록 당사자인 정식이는 영자와 결혼하지 못해 환장해 결국 두 사람의 혼인이 성사되었으나, 정식이의 부모님들이 맏며느리를 과부를 맞는 것에 반대해 나섰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부모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혼인은 성사되어 영자가 한국에 오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처음에는 며느리를 못 마땅하게 여기다가
“기왕에 한집식구가 된 이상 잘 지내보자.”고 하시면서 여러모로 배려해주신다.
이에 비해 시아버님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으신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님이라는 말이 있지만 영자는 시어머님보다 시아버님한테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시아버님은 며느리와 말도 하시지 않을뿐더러 한밥상에서 같이 식사조차 하지 않으신다.
영자가 한국에 온지 보름이 지난 어느 하루 찌개요, 무침이요 하는 한국음식만 먹으니 속이 마르는 것 같아 초채(복음요리)를 해 밥상에 올렸다. 그런데 칭찬을 받기는커녕 시아버님이 집 안에서 기름이 탄 냄새가 난다면서 한바탕 며느리를 나무라신다. 중국요리에 솜씨가 있는 영자는 자기 딴에는 시댁식구들에게 잘하느라 오리지 날 중국교자(餃子)를 빚었다. 시아버님이 하나 짚어 드시더니 기름기가 많아 구역질난다면서
“이것도 음식이라고 밥상에 올리는가?”고 야단하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어르신에게 물건을 한 손으로 건네기도 하고 몸을 돌려 엉덩이를 보이면서 물러나도 괜찮지만 한국에서는 시아버님께 두 손으로 물건을 올리고 머리는 다소곳이 수그리고 몸을 돌리지 말고 뒷걸음으로 물러나야 한다.
영자는 한국예절에 대해 책이나 TV에서 보아 조금 알고는 있으나 모든 것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하지 못해 때로는 실수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님은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지.”라고 다독여주시는데 반해 시아버님은 매우 못 마땅해 하시면서 버릇없이 자랐다고 꾸중하신다.
영자는 눈물이 났다. 이렇게 힘든 시집살이를 어떻게 견뎌낸단 말인가? 만약 남편이 조금이라도 우군이 되어주고 위로의 말을 해준다면 모를까, 허나 마음 약한 남편은 효자라 부모님들의 말씀에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외톨이 힘으로 시집살이에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시어머님이 가족분위기가 엉망이라면서 아들을 불러놓고
“아버지가 당분간 에미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분가해라. 그래야만 너도 그렇고 에미도 맘이 편할 거 아니냐?”고 새로운 대책을 내놓으셨다.
이리하여 영자의 부부는 분가해서 살게 되었다.
부부만 살게 된다면 갈등이 적어 속이 편안하리라고 예상했으나 그녀의 생각은 빗나가고 매일이다시피 다툼이 생겼다.
남편 정식이가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전기설치기술공이어서 수입이 괜찮은데다 시댁이 재산이 많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충분했다. 그래서 정식이는 마누라를 일을 못하게 하고 집에서 살림만 하라고 한다.
“내가 살림만 하려고 이국땅에 왔겠어요?”라고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다.
사실 주부 노릇만 하고 세월 보낼 거면 북경에서 장빈과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내가 뭐라고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장빈보다 못한 정식에게 시집왔겠는가는 생각으로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전남 완주에 있는 대한방직에 취직하기로 작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회사에서 신분증을 보자고 하는데 아직 발급받지 못해 제시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외국인등록증을 내 달라고 청을 들었다. 헌데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애간장이 탄 그녀는 따지고 들었다.
“외국인등록증을 내주지 않는 이유가 뭐얘요?”
“천천히 보자고.”
“당금 수요 되는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요.”
남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요즘 TV뉴스에 의하면 조선족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고는 도망가는 사례가 있다나.”
“그게 극히 소수 조선족여성들의 일이지 다 그렇겠어요? 한국남자들이 이래저래 여자를 믿지 못하니 더욱 도망가는 사례가 많다는 생각은 왜 못하고 있지요?” 영자는 화가 상투밑까지 치밀어 올라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날 저녁 그녀는 남편과 외국인등록증과 취직문제 때문에 밤새 싸웠다.
야밤삼경에 이를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자 영자가 짐을 싸고 집을 나서려고 하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낯설고 물선 대한민국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며 그렇다고 자존심이 상하게 친구의 신세를 질 수도 없고, 또 한 번 집나가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어버릴 것이고, 또한 이렇게 나간다면 가출이란 ‘죄명’을 쓰게 되니 불리하다는 생각에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집에서 죽치고 결판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약 외국인등록증을 내주지 않는다면 저도 진짜 도망갈래요.”라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니 결국 남편이 승낙했고 취직에도 동의했다.
징식이는 마누라가 취직하는 데는 억지로 동의했으나 대신 어처구니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신 버는 돈에 대해선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겠어. 다만 화장을 하지 말고 출근하라.”
이 말을 들은 영자는 순간 잘못 들었나 하고 귀를 의심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화가 고도로 났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국내에서도 충분히 장가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과 결혼한 것은 중국여자들이 순수하다고 들었기 때문이요.”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이 기본인데 화장을 하면 바람피우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순수하다는 도리가 어디 있는가?”고 따지고 들었다.
“아무튼 나의 요구를 들어주겠으면 출근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하지 말아요.”
영자는 화장을 하지 말라는 말에 화가 상투밑까지 치밀어 올랐다. 젊디젊은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무슨 멋에 산단 말인가? 하지만 영자는 화장을 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득불 돈부터 벌고 보자는 타산으로 일단 화장을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정식이가 마누라를 화장을 못하게 한 이유는 이렇다.
영자가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화장도 하고 옷도 곱게 있고 남편 따라 거리에 나서면 길을 오가던 사내들이 그녀의 외모에 홀려 모두 목이 삐뚤도록 돌아본다. 정식이는 미녀 마누라를 데리고 거리에 나서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때는 마누라가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혼자서 거리에 나가는 일이 없어 정식이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허나 마누라가 회사에 출근한다면 일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 사내들은 다 도둑놈이라 외모가 예쁜 마누라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고 또 마누라가 자기보다 많이 우월하고 큰 회사에 훌륭한 사내들이 많으니 외간남자에게 붙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것이 정식이의 ‘주먹구구’였다. 하여 일단 예방조치차원에서 일차적으로 화장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당신 화장실에 들어 간지 20분이 되었는데 뭘 하고 있는 거야.”
영자는 남편의 말에 자신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엉, 나가, 나간다구.”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려니 변기에 닿았던 부위가 저려났다.
“오늘 아버님의 70돐 생일인데 옷은 어떤 걸로 입고 갈 거야?”
한국남자들은 참으로 쩨쩨하게 마누라가 무슨 옷을 입는 것까지 관여하지 않나, 화장에 신경 쓰지 않나······ 아무튼 좁쌀들이야. 몇 년 같이 살아도 마누라에 대한 자질구레한 일에 관여하는 버릇은 변한 것이 없다니깐.
한국에 온 처음에는 남편이 화장을 못하게 하고 옷도 예쁜 걸로 입지 못하게 하더니 해가 서산에서 떴나. 갑자기 180도로 돌변하더니 또 이것저것 옷과 화장에 대해 관여하고 있지 않는가.
옷에 대한 말이 나오니 옛일이 떠오른다. 영자가 한국에 오자마자 남편이 백화 구경 시켜준다고 해서 따라 갔는데 눈에 드는 옷이 있었다. 차마 사주라는 말은 못하고 옷을 만지작거리니
“그 옷은 너무 화려해서 걱정이란 말이야.”
“뭐가 걱정인데요?”
“아무튼 ······”
후에 알고 보니 남편이 마누라가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으면 바람날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영자는 남편에게 옷을 사주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길거리 시장에서 자기 돈으로 수수한 옷만 골라 사 입었다.
이렇게 영자는 화장을 하지 않고 옷도 수수한 것을 골라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이 완주에 아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원수는 아니지만 대한방직이 워낙 크고 또 생각 밖으로 완주와 주변에 시집온 조선족여성들이 많아 회사에서 점심식사 때 대학 동창 순희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영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마치 원수를 만나는 것처럼 싫어났다.
순희는 영자를 한참 주시해 보더니 가까이에 다가와서 손을 내밀며
“너 영자가 아니냐?”
“엉, 너 순희 맞지?”
이렇게 오랜 간만에 만난 두 동창이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순희가 영자의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너 그토록 예쁘던 미녀가 왜 화장도 하지 않고 이 꼴이야?”
“음, 귀찮아서.”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너 같은 미녀가 귀찮아서 화장을 포기한다는 것이 말이야.”
그날 영자는 퇴근해서 삐져 남편과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몸이 아파?”
“아니야.”
“왜 기분이 우울해보여?”
“피곤하니깐, 잠이나 자자구.”
영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으나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순희는 학교를 졸업하고 상해에 있는 한국LG전자회사에 근무하던 중 한국총각을 만나 자유연애하고 결혼하여 한국에 왔는데 대한방직 기술과에 근무하고 있단다. 점심을 먹고 둘이서 화장실에 가 습관적으로 거울을 본 영자는 깜짝 충격을 먹었다. 본래 순희의 외모는 영자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허나 순희는 꾸준히 얼굴을 가꿔왔고 영자는 얼굴에 찍고 바르지 않아 마치 물을 주지 않은 화초처럼 시들어 말이 아니었다.
출근하여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조선족여성들이 회사에 근무하는 수가 족히 10여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참으로 세상이 좁긴 좁다는 말이 실감난다. 더러는 전혀 안면이 없고 더러는 고향에서 시집온 여성들도 있었다. 매번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피하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홍역을 만나는 것처럼 싫어났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무감각해졌다.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마음을 먹으니 속이 편했다.
그럭저럭 출근하여 돈을 버는 재미가 있었으나 남편과 매일이다시피 전쟁을 치러야 할 일이 생겼다. 그 놈의 섹스 때문이었다. 섹스란 자고로 부부의 정을 두텁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고 또 섹스 때문에 부부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영자의 머릿속에는 남편 정식이가 전남편인 철수와 후에 동거남이었던 장빈에 비해 인물체격이 못하고 지식수준도 못해 섹스 할 때면 마치 학생이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억지로 완성하듯이 대충 가랑이를 벌리고 받았다. 허나 정식이는 미녀를 따먹었다는 기분에 젖어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영자가 출근하면서부터 몸이 피곤하고 애를 둘이나 출산한 여인이라 섹스에 흥미가 없었다. 이에 비해 정식이는 30대 중반의 노총각이라 섹스에 대한 욕망이 항상 불타 있었다.
영자가 일을 시작해서부터 낮에는 회사에 근무하고 저녁이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어쩌고저쩌고 나면 새벽 1시가 된다. 잠이 막 쏟아지는데 정식이는 마누라의 젖가슴을 만지고 아래에 손을 더듬고 하면서 하자고 한다. 대다수 섹스는 정식이가 죽은 송장에 대고 하듯 치렀다. 이 때문에 정식이는 정식이 대로 불만이 많았고 영자는 영자대로 괴로웠다. 때로는 영가가 섹스가 귀찮아 늑대처럼 달려드는 남편을 힘으로 물리칠 수가 없어 손톱으로 남편의 엉덩이며 허벅지를 꼬집어 놓는다.
이렇게 밤이면 옥신각신 섹스 때문에 하자거니 하지말자거니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튿날 출근이 몹시 피곤하다.
영자가 가장 무서운 것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다. 다음 날이 휴일이니 남편의 섹스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없다. 그래서 힘이 좋은 남편이 저녁에 한번 이튿날 아침 한번 하자는데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야 한다. 일요일이면 대낮에도 할 때가 많았다. 그녀는 매주 하루 휴일이 돌아오면 편이 쉬는 것이 아니라 섹스 때문에 몸이 지쳐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영자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남들이 귀찮아하는 생리기간이 오히려 편안한 시간이다.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매일 생리가 오는 법은 없나 하고 속으로 빌 때도 있었다.
하루는 소개자인 친구 은숙이가 놀러 왔다. 집에서 근사하게 접대하려고 장보러 가는데 영자는 남편을 기어코 데리고 간다. 시장이 2키로 거리다. 갈 때는 빈손이지만 택시 타고 올 때는 짐이 많지만 걸어온다. 영자는 이것저것 야채이며 과일이며 육류와 어류까지 수두룩하게 산 물건을 남편 정식이 더러 들고 오게 한다.
“야, 너 남편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너무하지 않니?” 은숙이가 영자를 나무란다.
“응, 아니야, 저 인간은 이런 식으로라도 힘을 빼야 저녁에 내가 편한 거야.”
영자의 말이 무슨 뜻인 줄 알아들은 은숙이는
“야, 너 남편이 밤일을 잘하냐?”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잡는단 말이야.”
“아이고, 너 복 받았구나”
“복은커녕 늑대처럼 너무 달려들어 귀찮아 죽겠어.”
“나 한번이라도 죽어보는 게 소원인데 우리 남편은 ······” 은숙은 말끝을 흐리면서 영자를 몹시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참 하느님도 불공평하시지. 누구는 단 한번이라도 시원하게 쑤셔주기를 기대하는 바람도 이루지 못하는데, 누구는 너무 쑤셔주어 귀찮다고 너스레를 떨고 말이야.”
나그네 귀가 석자라더니 멀찌감치 떨어져 뒤 따라오던 정식이가 마누라와 은숙의 대화를 다 엿들었다.
그날 저녁 영자에게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쳤다.
정식이가
“내가 힘이 빠진 줄 알아?”고 하면서 밀어붙이고 또
“봐, 은숙이는 남편이 변변치 않아 만족하지 못해 당신을 부러워하고 있잖아. 당신 복 중에서 살면서 무엇이 복인 줄 모른단 말이야.”라고 하면서 마누라가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때까지 몸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정식이는 그토록 매일이다시피 마누라를 죽여 놓으면서도 다수 한국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의처증이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느라 퇴근시간이 늦어지면 친구에게 전화를 바꾸라면서 확인한다.
영자가 한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난 어느 하루 북경의 장빈이 한국에 무역 건 때문에 출장 와 영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영자는 장빈을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장빈이 하도 간곡하게 만나기를 바라기에 어느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정식이가 또 확인전화를 걸어올 것이 뻔한 지라 영자는 같은 직장의 친구 순희를 불러 같이 갔다. 영자가 장빈이와 얘기를 나눌 때 순희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은 다른 테이블에 앉아 혼자서 정승 맞게 천정이나 쳐다보면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 아니나 다를까 영자가 장빈이와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식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영자는 신경질적으로
“나야,”라고 한마디 하고는 제꺽 정식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휴대폰을 순희에게 넘겼다.
이렇듯 영자는 정식이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었다. 전남편 철수와 장빈은 영자를 감시하지 않았다. 영자는 속으로 ‘한국 놈들은 참으로 못 됐어.’라고 수백 번 더 욕을 했다.
장빈은 화장도 하지 않고 얼굴이 초췌해 보이는 영자를 보자 그녀의 한국혼인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대뜸
“북경에 돌아가자!”고 조른다.
“아니요, 이미 엎지른 물이라 뻗혀 볼래요. 그리고 앞으로 저를 잊고 찾아오지 말아요. 당신을 만나게 되면 제가 더 힘들어지니까!” 영자는 이렇게 장빈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무 때이건 영자 씨가 북경에 돌아오겠다고 하면 받아줄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장빈이 자리를 떴다.
정식이가 의처증을 보이는 데는 마누라의 외모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아닌 이유가 있었다.
영자가 한국에 온지 한 달 만에 고향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회식하고 노래방에 갔다. 그때 남편을 데리고 갔다. 회식 중 남자들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농담이 조금 지나쳤다. 이런 일은 조선족모임에서 흔히 나타난다. 허나 그 후 가끔 고향 남자들로부터 영자에게 전화가 오면 정식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또 핸드폰이 울리면 번호를 체크하는 등 의처증을 보이면서 마누라를 피곤하게 했다.
비록 마누라를 의심하고 야욕을 채우기 위해 섹스를 밀어붙이기는 하지만 매일이다시피 임신부를 대하듯
“오늘은 뭘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서 몸보신에 좋다는 것이면 이것저것 사들여 마누라를 먹인다. 어떤 때는 마누라가 그릇을 굽을 낼 때까지 곁에서 지켜본다.
영자는 남편이 밉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어 희비가 교차한다.
정식이는 마누라가 밤낮으로 출근하고 과도한 섹스에 시달리고 하여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어느 하루
“당신 이러다가는 쓰러질 것이요. 제발 낮에만 출근하고 저녁 아르바이트는 때려치워요. 내가 그 부분을 경제적으로 보상해 줄 테니 내말을 들어주오.”
“좀 더 생각해 볼게요.”라는 영자의 말을 들은 남편이
“당신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고집하고 피곤해서 잠자리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나 밖에서 외간여자들과 바람피우겠어.”라고 하는 말에
영자는 화가 나서
“나 한 몸으로 자기를 받아내기가 버거우니 바람피우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말은 이렇게 했으나 한편 속으로 만약 남편이 바람피우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어버릴 것이고 또 걸레 같은 여자들의 이 구멍 저 구멍을 쑤셔 대느라면 매독이나 에이즈와 같은 불치병을 묻혀 나에게 옮겨놓으면 일생을 조진다는 생각에 겁이 덜컹 난다.
그래서 영자는 한발 물러서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저녁 아르바이트는 때려치우고 집 안 일에 신경을 더 쓰기로.
솔직히 영자는 정식이와 결혼해서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제욕심만 채우느라 남편을 남편 같이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 허나 정식이는 마누라에게 의처증을 보이거나 과도한 섹스를 하거나 화장을 못하게 하는 등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잘 입히지는 않았지만 잘 먹였다. 몸이 아플까봐 애주중지 보살폈다. 하다못해 시장에 가서 장을 보아도 마누라에게 배추 한 묶음이라도 들게 하지 않았다. 집 안 일이 엉망이 되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남편의 나들이옷을 제때 다림질하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았다. 제사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도 뭐라 하지 않았다. 한국인 남편 치고는 정식이는 솔직히 남존여비를 부리지 않고 마누라에게 정말 관대한 편이었다.
영자가 한국에 와서 3개월 지난 어느 하루 시비가 밝은 시어머님에게 남편이 화장을 못하게 하고, 예쁘고 비싼 옷을 입지 못하게 하고, 의처증이 있고, 과도한 잠자리 등등을 일러바쳤다.
시어머님은
“아가, 정식이가 그런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네가 모르는 이유가 아닌 이유가 있어. 28살 때 나의 친구의 소개로 한국인 처녀와 결혼 일자까지 잡았었는데 여자가 다른 남자와 뒹구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먹어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여자란 믿지 못할 족속이라면서 한때 여자만 보면 혐오감을 갖더라고.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이 안쓰러워 내가 중국여자와 결혼하면 어떻겠느냐? 고 제안했었지. 그랬더니 정식이가 뭐 중국여자들이 한국에 시집오면 국적인지 뭔지 따고는 거개가 도망을 간다나. 그래서 내가 그것도 사람의 나름이겠지, 우리 집의 생활형편도 좋고 새 식구를 잘 대해준다면 왜 도망을 가겠냐 말이야. 그래도 아직까지 중국여자들이 때가 덜 묻어 그쪽으로 신경을 써보라고 닦달했었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계속해서 정식이의 과거사를 얘기한다.
“솔직해 내가 정식이의 등을 떠밀어 중국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다짐을 받았어.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중국여자를 만나든지 정식이가 좋다면 무작정 들어주기로 했고. 그래서 아는 사람을 통해 너의 친구 은숙에게 부탁하게 되었던 것이야.” 여기까지 얘기하고는 아래 말을 계속 하실까 말까 망설이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보고 영자는 기왕에 시작한 말씀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작심하고
“제가 개의치 않으니 다 말씀해 주세요.”라고 했다.
“음, 네가 기왕에 우리 집식구가 되었으니 숨김없이 말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던 정식이가 중국에 가서 너를 만나고 돌아와 결혼하지 못해 환장을 하더구나. 정식이는 솔직한 사람이야. 네가 애가 둘이나 딸려 있는 과부라는 걸 알고 나와 정식이 아버지는 다시는 아들의 혼사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놓았으나 정작 그렇게 되지 않더구나. 그래서 한바탕 집안이 폭풍이 불었댔어. 그런데 정식 그 자식이 너와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면 평생 장가가기를 포기한다나. 예전의 경험도 있고 해서 내가 영감을 설득했지. 이렇게 너의 둘 혼사가 이루어지게 된 거야. 영감이 겉으로는 동의했으나 속으로는 맏며느리를 과부를 맞는다는 것이 맘에 걸렸던 모양이야, 나도 그런 서운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 허나 기왕에 한집 식구가 되었으니 과거는 묻지 말고 다 묻어두기로 했어. 내가 너에게 충고의 말을 해도 괜찮겠니?”
시어머님은 참으로 자상하시고 시비도리가 밝으신 분이며 양부모를 잃은 영자에게는 시어머님이 친정엄마처럼 느껴져
“네,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 받아들일게요.”라고 청원했다.
“사실 말인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너를 지내보고 내가 밖에 나가 들어본데 의하면 중국여자들이 우리 한국에 시집오는 것이 목적이 불순해. 한국에 오기 위해 국제결혼을 택하고 한국에 와서 남편이나 시댁식구를 잘 대해주겠다는 마음이 부족하고 무작정 제 욕심부터 채우려고 하지. 한국남편이 부족한데가 많다든지 시댁식구들이 며느리로 제대로 대해주지 않는다면 이혼을 하든지 도망가든지 할 말이 없겠지만 서로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고 서로 희생이 있어야 낙이 오는 법이고 고생이 있고 대가를 치러야만 결과가 좋은 법이지. 그렇지 않고 나의 생각만 하고 남편이나 시댁식구들만 탓한다면 혼인이 파탄날 것이고. 서로 원수가 되고 말지. 너도 진정으로 발을 붙이고 살아가려면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정식이 너를 화장을 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예쁘고 비싼 옷을 입지 못하게 하고 의처증을 보이는 것은 그 년(한국 처녀) 때문에 충격이 남아 있어 그런 거야. 그러니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네가 진정으로 정식에게 믿음을 준다면 언젠가는 그 ‘멍엷가 풀릴 거라고 나는 믿는다. 말하기가 껄끄럽지만 노총각으로 지내온 사내가 너와 같은 미인을 만났으니 과도한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도 정상이라 생각하고 다만 네가 일을 적게 하고 몸이 덜 피곤하면 받아들이기가 낫지 않겠니? 만약 네가 일을 그만둔다면 우리가 너한테 네가 버는 것만큼 돈을 보상해줄 수가 있어. 허나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니고 또 중국여자들은 사회활동을 많이 해왔다고 하니 갑자기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어.”
시어머님은 영자를 친딸처럼 여기고 섹스 얘기까지 거리낌 없이 할 정도로 이모저모 차근차근 도리를 설명해주셨다.
그때부터 영자는 비록 남편이 자기를 화장을 못하게 하고 의처증을 보이는 등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시어머님의 말씀을 믿고 일단 마누라로서 며느리로서의 의무에 노력을 하기로 작심했다.
그 후부터 부부생활과 시댁식구들과의 이런저런 면에서 비교적 큰 갈등이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화장과 의처증의 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럭저럭 6년을 지나오면서 영자는 남편과 시댁식구들로부터 믿음을 얻었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해마다 1500만원의 돈을 보냈고 형제와 가까운 친척을 요청해 돈벌이도 충분히 시켰다.
영자가 한국에 온 목적을 거의 다 이루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것은 가장 치명적으로 여겨왔던 새파란 여성으로서 화장을 못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가 풀리는데 장장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성이 성인이 되어 화장을 하기 시작해서 세상에 자신의 미를 과시할 시간을 따진다면 20여 년도 되나마나 한데 6년 동안이나 화장을 못하고 살아온 것이 왜 억울하고 분하지 않겠는가?
아침 8시에 시댁에서 친인척들과 합류하여 시아버님의 70돐 생일의 행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영자가 벽시계를 쳐다보니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화장이 제대로 됐는지 말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6년 만에 해보는 화장이라 어느 것을 먼저 바르고 어느 것을 후에 찍는지에 대한 순서도 그렇고 찐한지 연한지? 더욱이 한국화장품은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 명사도 제대로 모르고 있고, 아무튼 막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늘은 대형 웨딩홀에서 시아버님의 70돐 생일을 쇠니 하객이 수 백 명에 이를 것인데 그 많은 ‘관중’ 앞에 김 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나서면 바라보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 해서 아무래도 화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창피를 무릅쓰고 순희한테 전화로 강의를 받기로 했다.
“야, 해가 서산에 뜰 일이다. 네가 화장을 한다니.” 순희는 믿기 어렵다는 어투로 말한다.
“시간이 촉박하니 잔말을 할 여유가 없으니 순서만 알려줘.” 영자는 조바심이 나서 이렇게 명령조로 말했다.
순희의 강의를 들어보니 한심하기도 하고 픽 웃음이 나왔다. 스킨과 로션의 순서는 맞지만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전에 파우더를 칠했고, 아이섀도를 바르지 않고 눈썹을 그렸다.
이번에는 순희가 시켜준 대로 하고 있으나 모든 것의 양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눈썹은 중국의 희극배우처럼 희한하게 그려졌고 입술은 쥐를 잡아먹은 듯이 새빨갛다.
“당신 오늘 뮤지컬배우로 등장할 거요?” 남편이 곁에서 지켜보다가 이렇게 묻는다.
“자기 뭐라고 말할 자격이나 있어? 이게 다 누구의 탓인데·····” 가뜩이나 시원찮아 하는 판국에 남편이 뭐라고 하니 영자는 화살을 또 정식에게 돌렸다.
“미안해.”
영자는 여전히 자신이 하는 화장에 신심이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시집가는 첫날 색시거나 배우들이 남의 손을 빌어 화장을 하는 것처럼 순희를 불러 화장을 하기로 했다.
허둥지둥 달려온 순희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남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는 것이 머리에 털이 나서 처음이잖아.”
“야, 잔말 말고 다그쳐야 해.”
“알았어, 6년 만에 새로운 여자로 부활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지.” 순희가 이렇게 말해놓고는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드디어 화장이 끝났다. 순희는 볼일이 있다면서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화장이 곱게 먹힌 마누라를 본 정식이는 입이 헐레벌쭉 해졌다. 등 뒤에서 마누라를 꼭 껴안는다. 영자가 그 순간 남편의 거시기가 매우 단단하게 발기되어 엉덩이를 찌르고 있어 본능적으로 성욕이 발작한다.
“자기야,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잖아.” 영자는 남편의 속셈을 뻔히 알고 손을 풀려고 했다.
“아니야, 오늘 정식행사가 11시부터이니 우리가 9시 전에 합류하면 돼. 엎디면 코가 닿을 거리니 아직 시간이 충분하단 말이야.”
“9시 전까지 뭘 하려고?” 영자는 남편의 얼굴에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가 뻔히 쓰여 있었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면서 물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고 하는 사이 어느새 정식이의 손이 영자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영자가 여태껏 남자의 손이 닿자마자 이렇게 빨리 흥분하기가 처음이다. 지난 6년 동안 영자는 수동적으로 겨우 숙제를 하듯 해왔다. 허나 오늘은 주동적이고 싶었다. 머리 회전이 돌기도 전에 영자는 숨소리부터 거칠어졌다. 이것이 충분하게 흥분되었다는 증거이리라. 영자는 저절로 아래를 만져보니 흥건히 젖어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다.
“뭐해요?” 영자는 난생 처음 남자에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린 남편이 마누라를 훌쩍 안아 침대에 던진다. 서로 서둘러 상대의 옷을 벗긴다.
“오늘은 좀 천천히 즐기고 싶어.”
“응, 알았어.” 정식이는 마누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혀로 애무해준다. 이것도 정식이가 난생 처음이다. 그냥 여자가 마땅치 않아 하는 섹스만 해왔기 때문이다.
“더는 못 참겠어. 하지만 예전처럼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삽입하고 여러 가지 동작으로 해보고 싶어.”
“알았으니깐, 몸이 녹초가 될 때까지 해줄 테니 기대하라고.”
“음, 좋아, 좋아! 마치 천당과 지옥으로 오가는 느낌이야. 본래 섹스의 맛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더 환상적으로 해줄게.”
한참 둘이서 절정에 오르고 있을 때 얄밉게도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십중팔구 빨리 오라는 호출명령이다. 정식이는 시끄럽다고 전화코드를 빼버린다. 그리고는 여전히 작전에 몰입한다.
“딩동”
다행이 사정이 끝나고 막 씻으려는 참이었다.
“누구세요?”
시아버지가 찾아왔다.
“왜 전화를 안 받고 그래? 놀랬잖아.” 시아버지가 아들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보더니
“또 싸운 거야?”
“아니요, 싸우긴 뭘 싸워요?”
“그럼 너 얼굴이 왜 그래?”
정식이는 쑥스러워 얼굴을 돌린다.
“아무 일도 없었다니 시름 놓고 갈게. 빨리들 와.”
“예, 곧 따라 갈게요.”
“에미는?”
“화장실에 있어요.”
“알았다.” 시아버님이 뭔가 눈치를 채셨는지 제꺽 집을 나섰다.
영자는 시아버님한테 차마 부부가 격렬하게 섹스 한 흔적을 보이기가 민망해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식이도 눈치를 알고 마누라를 부르지 않았다.
거울을 쳐다 본 영자가 깜짝 놀랐다. 섹스를 격렬하게 하느라 얼굴이 땀범벅이어서 화장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자기야, 이리 와 바, 화장이 개판에 소판이 되었지 뭐야, 난 어떡해?”
영자는 발을 동동 구른다.
“당신과 화장한 모습으로 섹스 하니 마치 양귀비라도 따먹은 기분이었어.”
“내 얼굴을 보란 말이야, 자기 지금 나를 약 올리고 있어?”
“아니야,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고, 화장은 다시 하면 되잖아.”
“시간이 없지 않아?”
“괜찮아, 내가 부모님들께 적당히 핑계를 댈 테니 순희를 다시 불러 천천히 화장을 하고 와.”
정식이는 부랴부랴 부모님 댁으로 떠나갔고 영자는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발광한다더니 한번 화장한 아름다운 모습을 포기 못해 순희를 또 불러왔다.
“너 아까 무슨 일이 있었지? 바른대로 말해.”
“글세, 그 인간이 내가 화장을 한 모습을 보고 양귀비 같다나. 그래서 성욕이 발작하는 것을 주체 못해 기어코 해야 된다잖아.” 영자는 조금은 쑥스럽지만 친구 간에 못할 말이 뭐가 있으랴 생각하고 곧이곧대로 털어놓았다.
“사실 너를 정식한테 소개해준 은숙이가 네가 지난 6년 동안 화장도 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맘에 걸려 후회했는지 몰랐다고 하더라.”
“다 사람의 나름대로의 운명이지 뭐.”
“너 그렇게 너그럽게 생각하니 나와 은숙이는 친구로서 너에게 고마울 뿐이다. 사실은 나도 사는 게 그저 그래. 남편이 섹스를 잘 못하지, 맏며느리라 한해 제사만 열두 번 차리니 정신이 있겠니? 거기다 ······”
“너 하도 입이 무거우니 곁에서 모르고 다 너를 부러워하지 뭐야.”
“빛 좋은 개살구지.” 순희는 아픈 상처가 건드려졌는지 눈굽이 젖어났다. 그러더니 화제를 돌린다.
“아무튼 영자 너는 고비를 다 넘기고 마치 외나무다리를 건너 탄탄대로에 들어선 것 같아.”
“글세, 앞으로 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현재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영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전날 남편이 백화점에서 고급 옷을 여러 벌 사다 준 것을 하나하나 꺼내 순희에게 보이면서
“오늘 행사에 어느 옷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아?”고 자문을 구한다.
“화장품이고, 핸드백이며 악세사리 이 모든 것이 다 어제 그 인간이 사다준 것이야.”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너 참 행복해.” 순희는 영자를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헌데 정식이가 무슨 바람이 불어 너한테 이렇게 잘해준다니?” 순희는 모를 일이라고 묻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6년이 되었으니 그 인간도 변할 때가 됐지, 이제부터 나를 공주를 모시듯 잘해준다나, 기대해 봐야지.”
“이게 다 네가 진심으로 정식이와 시댁식구들을 잘 대해준 덕분이잖아.”
“내가 별로 한 거 있나? 그저 드놀지 않고 무게 있게 처사했을 뿐이지.”
“아무튼 축하한다.”
영자는 6년 만에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옷까지 입으니 막 하늘을 날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옛사람들이 옷이 날개라 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거기다 화장까지 했으니 본바탕이 훌륭한 영자는 마치 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더 예쁜 여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배짱이 생길 정도로 자신의 미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시댁에 도착한 영자는 전에 가끔씩 만나 뵈었던 친인척들을 만나 인사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본능적으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형식적으로 인사를 받을 뿐 낯모를 사람이 인사를 해온다고 지나치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뉘시더라?”고 묻는다.
영자는 친인척들의 반응에
“여자는 역시 가꿔야 해.”고 중얼거리면서 마치 두꺼비가 백조로 변한 기분이었다.
아마 남편이 시부모들한테 미리 영자의 변신에 대해 통보를 했던 모양이다. 시부모는 전에 없었던 충격적인 행동까지 해가시면서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지으시고 직접 몸을 일으켜 며느리를 맞이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 며느리만큼 예쁜 색시가 있으면 나와 바라!”고 하시면서 친인척들에게 인사시킨다.
영자는 마치 이 김 씨 댁에 마음에 딱 드는 새 며느리로 시집오는 느낌이었다.
웨딩홀 행사장에 가서도 시부모들은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고 하객들에게 일일이 인사시키면서 매우 흡족해 하신다.
헌데 사람이 모인 곳이면 싱거운 소리를 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전에 가끔 만나 뵈었던 친인척 중에
“저 여자가 정식의 아내 맞아? 참 정식이 이제부터 속을 썩이게 생겼네. 저 모양을 보라고, 바람이 나서 화장하고 예쁘게 가꿨지 뭐야.”라고 쑥덕거리는 자가 있었다.
하지만 영자는 자신에 대한 어떤 반응이든지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맘을 먹었다. 오로지 남편과 시부모 그리고 가까운 형제분들이 인정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날 시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생일잔치보다 맏며느리의 변신에 더 기분이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시부모들이 맏아들 정식이가 70돐 생일잔치를 차려드릴 것을 제안했더니 처음에는 거절하시다가 아들과 다음과 조건을 걸고 허락하셨다고 한다. 이번 계기로 맏아들이 마누라를 화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계율’을 폐지하는 것이고, 의처증을 버리고, 6년 동안이나 지내보았으니 그간 장이 세 독이 아니라 열 독도 더 먹여 보았으니 진정한 우리 집 식구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이고, 맏며느리로서의 위상을 높여주고 권위를 부여하고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정식이도 이 면에 대해 미리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님, 어머님 그렇지 않아도 제가 그렇게 하려고 상의를 드리려고 했던 참이었어요.”라고 선뜻 대답하고 앞으로 꼭 지킬 것을 약속드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부모님들이 맏며느리의 외모에 대한 변신에 기뻐하신 것뿐만 아니라 맏며느리의 위상을 인정하시고 가문이 바로 서게 된 것을 더욱 기뻐하셨던 것이다.
영자도 화장을 하게 된 기쁨보다 김 씨 댁의 맏며느리의 위치와 위상을 인정받게 된 것이 더 그녀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영자의 남편 및 시부모 못지않게 영자의 변신에 기뻐하는 사람들로서는 은숙, 순희 및 영자를 알고 가깝게 지내온 중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이었다. 물론 그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은숙이가 가장 기뻐했다. 왜냐하면 영자를 정식에게 소개해주었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중매는 잘되면 술이 세 잔이고 못되면 칼을 세 번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은숙이는 늘 괜히 중매쟁이 노릇을 했다고 후회하면서 마치 칼을 세 번 맞은 기분이었다. 허나 오늘부터는 술을 세 잔 받아먹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 가족 모임이 있었다. 시아버님께서 하루 행사를 총화하시고 나서 시어머님께서 경제장부를 회보하신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축의금에 관한장부와 돈을 몽땅 맏며느리에게 맡긴다고 선포하시고 영자에게 넘겨주신다.
영자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충격을 먹어 몸 둘 바를 몰라 어리벙벙해 있었다.
남편이 이미 다 정해진 일이니 가슴을 열고 받으라고 한다.
순간 영자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확 나온다. 너무 감격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장부와 돈을 두 손으로 받아 남편에게 주고 넓적 엎드려 시부모님에게 절을 올렸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네가 너의 남편을 잡아먹었느냐, 아니면 우리 집 재산을 말아먹기라도 했느냐?” 시어머니가 어리둥절해 하면서 물으신다.
“그보다 더 큰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그게 뭔데?” 시아버님이 질문을 하신다.
“제가 김 씨 댁에 시집온 지가 6년이 되었으나 여태껏 제 욕심만 채우느라 부모님들께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했습니다.”
“음, 그거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려.” 시아버님이 같은 생각이었다는 뜻으로 얘기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내가 에미를 조용히 찾아 말해보려고 했었네. 다행히 너의 입으로 먼저 말이 나왔으니 참으로 기분이 좋구나.”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같은 여자의 입장에 서서 말씀하셨다.
“한마디만 더 할게. 설마 에미 너 그 공장 문이 닫기 지는 않았겠지?” 시어머님의 이 한마디 농담에 조금 긴장감이 돌았던 분위기가 웃음바다로 변했다.
“그럼요,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게요!” 영자는 작년에 루프를 제거했다가 임신되어 남편 몰래 병원에 가서 지워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공장이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을 마치고 나니 새벽 1시가 되어 그냥 시댁에서 밤을 묵기로 했는데, 정식이는 기어코 집에 가서 편히 자자고 조른다. 도보로 10분 거리이니 아무데서 묵던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집에 도착해서 잠자리에 들려고 시계를 쳐다보니 이미 새벽 2시가 되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말똥말똥 해난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영자는 도무지 자신의 위치이며 위상이며 권위에 대해 흥분하여 잠을 이룰 것 같지 않았다.
“자기야, 잠이 오는 거야.” 영자는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오늘은 당신이 6년 만에 가장 기쁜 날인데 내가 어떻게 먼저 잠이 드냐? 그건 그렇고 오늘만은 아침처럼 당신이 주동이 되었으면 하는데.” 정식이는 은근 슬쩍 마누라를 말로 건드린다.
“아침에 격렬하게 한판 치렀는데 또 한단 말이야? 자기 솔직하게 말해봐, 집에 기어코 오려고 한 것이 그 짓 하려고 ······ 변강쇠가 따로 없다니깐, 난 또 죽기 싫단 말이야.” 영자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말 오늘만은 몸이 콩가루가 되도록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섹스를 즐기고 싶었다.
“헌데, 자기 그 물건이 일어설 수 있어?”
“참, 내가 누구냐? 거시기가 서지 않으면 정식이 아니지, 아니 영자의 남편이 아니지!” 라고 하면서 영자의 손을 잡아끌어 만져보게 한다.
과연 정식이의 물건이 쇠망치처럼 꿋꿋해졌다. 그들은 침대가 망가지도록 질퍽한 섹스에 빠져버렸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