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기에서 우승하면 우리는 모두가 기뻐한다. 특히 우리보다 실력이 앞서는 나라와 싸워 이겼을 때에는 온 국민이 떠나갈 듯이 환호하며 좋아한다. 그리고 모두들 가슴 뿌듯해하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러한 열광적인 모습을 여러 차례 우리는 서울시청 앞이나 광화문 네거리를 메운 수십만 인파로 이미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런 환호는 운동경기는 물론이고, 성악이나 연주로 1등을 하거나, 바둑이나 장기 같은 오락 경기에서 우승을 해도, 외국의 명문대학 수석 입학이나 졸업을 해도, 우리는 연일 방송에 신문에 대서특필하며 즐거워한다. 세계 최초로 무엇을 연구해 내거나, 어떤 첨단 기기를 개발해도 그렇다. 세계적인 큰상을 받거나 또는 최고의 산봉우리나 극지 탐험을 이뤄도 우리는 가슴을 한껏 부풀려 펴며 자랑스러워한다.
금년 4월 초에 끝난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안현수와 진선유 선수가 각각 첫 남녀 그랜드 슬램을 이뤄냈을 때에도 온 국민이 열광하며 자랑스러워하였다. 2월에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하인스 워드(Hines Ward)가 미국 프로풋볼 리그 결승전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크게 환호하였다.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혼혈이었기 때문에 순수 혈통은 아니지만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된 듯이 기뻐하였다. 물론 그러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외국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우승이나 최고 최초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있다. 월드컵 4강 진출보다도 훨씬 기쁘고 자랑스러울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아주 오래 계속되고, 내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곤 한다.
금년 정월 초순에 이런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외국인 승객 살리려 회항”
제목은 나의 마음을 끌어당겼고, 신선한 충격에 기사를 한숨에 읽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주 진한 무거운 감동이 서서히 가슴에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구나 생각하였다.
1월 5일 밤 12시 10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출발해서 인천으로 향하던 우리나라 여객기가 1시간 50분쯤 되었을 때 부인과 함께 탄 82세의 필리핀 탑승객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마침 승객으로 탄 의사가 “상태가 심각하니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진단 소견을 냈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상의 끝에 가까운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돌아갔다.
4만 달러 상당의 비행기 기름 63톤은 안전을 위해 캘리포니아 인근의 해상에 쏟아버린 뒤, 1시간 30분 만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 여객기는 3시간 뒤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4시간가량 지연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지난해 8월 25일에도 우리나라 여객기가 인천을 출발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던 중 회항해서 감동을 시킨 적이 있었다. 이유는 4살 된 여자아이가 39도의 열성 경련으로 의식을 잃자 승무원들이 산소호흡기로 응급처치를 해주며 살피다가, 이륙 10여 분만에 되돌아온 것이다.
장거리 여객기가 되돌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버린 기름값 4만 달러, 우리 돈으로 4000여만 원도 큰돈이다. 일반 봉급생활자의 1년 치 월급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그런 돈을 과감하게 버린 것이다. 또한 수백 명의 다른 탑승객들의 처지도 문제다. 4시간의 지연은 별별 난처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개중에는 막대한 손실을 당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승객들이 유명인이거나 강대국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여객기의 회항은 오로지 어리거나 고령인 무명의 한 생명을 구하자고 하는 일념에서 취해진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감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물론 사람의 목숨은 매우 소중하다. 목숨을 건지는 일은 어떤 이유나 논거를 따질 일이 아닌 최우선의 급선무이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면서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일이다.
단 한 명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수백 명의 회항(回航), 비록 노인 환자가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숨을 거두기는 했어도, 생명 존중의 매우 거룩하고 훌륭한 처사이다.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끝까지 연주하던 악사들의 모습보다도 훨씬 더 묵직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이런 자랑스러운 일도 서슴없이 해내는 나라가 되었다. 수출입 금액이 세계 11위인 경제적 성공보다도 고령의 노인, 어린이 한 사람의 생명을 탑승객 수백 명의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나라가 된 것이 더 자랑스럽다. 선진국은 경제적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