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시인.본지 논설위원)
인류사에 빛나는 간다라 불교미술양식은 파키스탄 페샤와르현에서 시작했다. 카불강 평원지대, 이 고장이 그 옛날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교류하던 간다라이다. BC 1500년경 아리아인들이 이곳을 지나 인도로 갔으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왕조, 알렉산더대왕과 그리스인, 샤카족, 페르시아, 돌궐 등이 여기를 거쳐 갔다. 특히 BC 4세기 알렉산더대왕 침입 이후 동서간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을 간다라문화라고 한다.
특히 불상조성에 그리스 헬레니즘 양식을 반영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불교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주 석굴암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불상이다. 어찌 그 영향은 미술만이겠는가. 인도의 명상과 그리스의 논리성이 결합된 간다라불교는 동아시아로 건너가 화엄학과 선불교 등 새로운 문화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이 지역에는 이슬람문화가 번창하고 있다.
2005년은 인천에서 자장면이라는 새로운 요리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장면에 관한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 자장면이다. 그러나 자장면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음식이 아니다.
1883년에 개항한 인천에 해상무역이 번성하면서 중국 무역상을 대상으로 한 중국음식점들이 생겨났다. 중국의 대중음식을 처음으로 접했던 당시 조선 서민들은 싸고도 새로운 맛에 매료당했다. 그러자 중국인들은 조선 부두노동자들을 상대로 싸면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했다. 그것이 고기와 야채를 함께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다. 자장면을 처음 팔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장면의 원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한국에서 한국의 재료로 만든 한국의 음식이라는 주장도 있고, 중국 베이징(北京)·톈진(天津) 방면에서 널리 만들어진 요리인 차오장몐(炒醬麵)이 그 뿌리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돼지고기·양파·생강 등을 다져 중국식된장과 함께 볶아 국수 위에 얹은 중국식 ‘한국요리’라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이단’을 배척하며 ‘근본’과 ‘원리’를 강조하는 부류가 극성을 떨게 된다. 그동안 서구철학의 관심사는 ‘궁극적 실재’에 있었다. 변치 않는 ‘근본’과 ‘원리’가 실재하리라는 믿음이다. 그 ‘근본’과 ‘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단과 야만인’ 취급을 하고 마는 것이다. 대개의 갈등은 이러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주변의 민족들을 야만인으로 박대하였고, 중세시대에는 십자군 전쟁과 마녀재판 등으로 전개되었으며, 근대에 와서는 제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
탈레반은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며 1994년 25,000여 명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수니파 이슬람 무장정치조직이다. 1994년에 이미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대부분을 장악한 뒤 이듬해 수도 카불(Kabul)을 점령, 14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역시 무장 게릴라 조직인 모자헤딘과의 권력투쟁을 종식시켰다. 이들은 초기에 약탈과 강도,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 힘을 쏟아 많은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전이 계속되면서 정권의 완전장악이 어려워지자 각 지역의 무장집단과 전략적으로 야합하였다.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불법행위와 인권침해를 묵인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슬람교 원리주의에 입각해 여성차별, 아동학대, 가혹한 이슬람식 사법제도 부활 등을 자행하였다. 서구문화 및 외국세력에 대한 저항도 함께 있었다. 2001년 봄에는 야포 등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불교 유적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였다. 타종교에 대한 극단적인 적개심을 보인 것이다.
2001년 9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항공기 테러사건이 있었다. 탈레반은 이 사건의 주동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인 알 카에다를 숨겨주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발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전쟁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최근 탈레반은 한국인 23명을 인질로 억류하였다. 이 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탈레반은 무장하지 않은 한국 민간인을 벌써 두 명이나 살해하였다. 저주받을 야만적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막가파식 행위’ 뒤에는 끝없는 외국세력의 침입에 대한 피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근본’과 ‘원리’를 강조하며 ‘이단’을 배척해온 서구문명이 또 다른 극단적인 ‘근본원리주의자’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간다라 불교미술’과 ‘인천 자장면’은 많은 희망을 시사한다.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의 자세,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의 출발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진정한 ‘근본’과 ‘원리’는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평화를 가장한 각종 침략정책으로 이슬람문화권의 원한을 사고 있는 모든 세력들에게, 그리고 외국인들을 원수처럼 노려보고 있는 탈레반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장면 시키신 분’을 찾아 한국 자장면은 세계 모든 곳에 배달되니까, 한국인이 사랑하는 중국음식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어보라고. 자장면을 먹고 나서는 한국 경주의 석굴암을 구경할 것을 권하고 싶다. ‘동양’이 ‘서양’과 화합하여 어떻게 아름다운 한국의 미소로 꽃필 수 있었던가를 살펴보라고.
자장면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
석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