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서 외국인 취급...합법 체류자도 자유왕래 제한
조국인 코리아에 대한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수 많은 중국 동포들. 그러나 그들은 같은 한민족이지만 모국에서 멸시와 냉대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데다 임금체불 피해도 헤아릴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의 경우 산재·의료보험 혜택마저 받지 못해 산업재해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또한 합법 체류자라도 재미교포, 재일교포와 같이 자유로운 왕래마저 불가능 한 것이 현실이다. 불법 체류와 합법체류 중인 두 중국 동포 여성을 가리봉동에 있는 중국동포의 집에서 만나 그들의 한 맺힌 사연과 함께 그간의 설움과 애환에 대해 들어봤다.
조국인 코리아에 대한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수 많은 중국 동포들. 그러나 그들은 같은 한민족이지만 모국에서 멸시와 냉대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데다 임금체불 피해도 헤아릴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의 경우 산재·의료보험 혜택마저 받지 못해 산업재해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또한 합법 체류자라도 재미교포, 재일교포와 같이 자유로운 왕래마저 불가능 한 것이 현실이다. 불법 체류와 합법체류 중인 두 중국 동포 여성을 가리봉동에 있는 중국동포의 집에서 만나 그들의 한 맺힌 사연과 함께 그간의 설움과 애환에 대해 들어봤다.

임금체불 다반수 국가인 한국
중국 길림성에 거주하다 지난 97년 돈벌이를 위해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김길녀씨(77세, 가명). 브로커로 부터 위조된 친척 초청장을 거액을 들여 구입해 한국에 들어온 김 할머니는 밀린 임금을 받기만 기다리다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불법 체류자로 전락했다. 단속과 강제추방의 두려움을 안은 채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몸까지 불편해져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재활치료를 받은 후 언어장애는 사라졌으나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어 지팡이가 없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김 할머니는 중국에서 일할 곳이 마땅치 않자 ‘선진국이라 알려진 한국에 가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에 올 결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예순일곱으로 일하기에는 많은 나이였지만, 중국에서 몇 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한국에선 몇 달이면 충분히 벌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리를 해서 한국에 나왔지요.”
김 할머니는 한정식 식당에 설거지 도우미로 취업, 새벽 2~3시까지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1년여를 고생했으나 결국 11개월치의 임금 1천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밀린 월급을 달라고 사장에게 사정도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것 욕설 뿐이었다.
그후 여러 어려움을 거쳐 법원으로부터 임금지급 판결을 받을 수 있었으나 사업주가 잠적한 상황에서 체불 임금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노동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서도 내 보고 심지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도 해 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에 불과했다. 고령에다 불법 체류자 신분인 김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중국 동포의 집’ 내의 무료 쉼터에서 마땅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할머니는 최근 혈압이 자꾸 오르는 등 건강이 자꾸 나빠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에게 받은 차별과 멸시를 생각하면 남편과 아들들이 있는 곳으로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밀린 임금을 받기 전까지는 중국에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김 할머니는 “임금 체불은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들의 열 명에 일곱명 정도가 겪는 아픔"이라며 "동포들의 이런 애통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수수방관 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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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 '엔벤시장' ⓒ임영무 기자 |
그녀는 이어 “같은 동포임에도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더욱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동포는 일제의 착취와 수탈, 징용 등을 피해 이주했거나 나라를 위해 투쟁했던 독립투사들의 자손들임에도 고국에서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불법체류자로 쫓겨 다니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김 할머니의 남은 소원은 가족들이 있는 중국 땅을 돌아가 편안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물론 밀린 월급을 받은 후라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김 할머니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누구도 쉽게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없는 것이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 동포들의 현실이다.
“한국에 자유롭게 오갈수 있었으면”
중국 요령성에 거주하다 97년 12월에 한국에서 결혼한 첫째 딸의 초청으로 처음 한 국에 온 이순녀씨(60).
이 씨는 남편과 함께 지난 2005년 4월에 재입국하여 다음 달에 곧바로 귀화 신청을 했으나 남편은 신청 후 2개월만에 허가가 났지만 본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현재까지 법무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 제대로 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실제 중국 동포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노동부 고용안정센터 등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 받을 수 없을뿐더러 사설 직업소개소에 비싼 알선비용을 내고도 입주 가정부 이외에는 청소부나 식당 도우미 자리조차 얻기가 힘들다.
다행히 이씨는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 임금체불 등과 같은 어려움 없이 가정부로 일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는 참으로 가슴 아픈 딱한 사연들이 많다고 전한다.
“입주 가정부로 일한 중국 동포 할머니 한 분은 먹는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고, 배가 고파 밥을 조금 많이 먹으려면 주인이 ‘중국에선 밥도 못 먹고 살았냐’며 구박하기 일쑤였다고 해요. 게다가 그 전날 먹은 반찬을 다음날 올리면 밥상을 뒤엎어 버리기까지 했다니 그 설움이야 어찌 말로 표현하겠어요.”
비자 문제도 늘 합법 체류 중국 동포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거리이다.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 올 때 가장 큰 제한은 분명 동포임에도 동포 자격으로 입국비자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체류기간이 3개월인 친척방문 비자로 입국하게 되며 장기체류를 원할 경우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아 6개월~1년 단위로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외국인 등록증을 받은 이 씨도 불법체류가 되지 않기 위해서 6개월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했는데 이것 또한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 발급수수료 3만원이 없어 불법체류 신세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일이 힘들어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사업주 허가 없이는 불가능했고, 1년에 3번 이상 회사를 옮기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동포들 사이에선 붙잡히거나 추방당할까봐 불안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을 때가 더 일하기에 편했었다는 푸념마저 나오곤 했지요.”
이 씨는 지난해 3월 남편이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국 동포의 뼈아픈 현실을 실감하기도 했다. 보호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편이 병원 입원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고자 했던 둘째 딸마저 아버지의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중국 현지의 영사관에서 입국 거부를 당했지요”라며 그때 당한 설움에 감정이 복받혔는지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다행히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남편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딸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치로 남편이 임종한 지 15일 후에 입국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한국 정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결국 “한국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보호자가 중국 교포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외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할 수 조차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권 침해가 아닌가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화하지 못한 중국 동포는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지원받는다거나 취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는 것도 언감생심일 뿐이다. 얼마 전 심한 감기가 걸린 이씨는 병원에서 진단 받는 데에만 1만 5천원, 주사 한번 맞는 데에만 1만원이라는 비싼 돈을 내야만 했다. 그야말로 조국 땅에서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는 것이 중국 동포들이 처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의료, 취업 등 제도적인 문제 이외에도 언어와 생활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 조선족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국 동포들의 고충이다. 이 씨는 조선족 말투를 쓰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의 따가운 시선과 불법체류자로 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한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낸 적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또 체류비자를 받기 위해 법무부에 방문했을 때에는 “비자 확인서 원본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윽박지르는 직원의 말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이어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라면 소수민족으로 살았던 중국에서보다 더욱 극심한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이 씨가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은 그저 소박하기 그지 없다. 몸이 아플 때 어느 병원에서나 치료받을 수 있고, 다른 재외동포들처럼 조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소에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혜택들이 중국 동포들에겐 그토록 바라는 소망인 셈이다.
전민정 기자 puri21@economy21.co.k
김 할머니의 남은 소원은 가족들이 있는 중국 땅을 돌아가 편안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물론 밀린 월급을 받은 후라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김 할머니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누구도 쉽게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없는 것이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 동포들의 현실이다.
“한국에 자유롭게 오갈수 있었으면”
중국 요령성에 거주하다 97년 12월에 한국에서 결혼한 첫째 딸의 초청으로 처음 한 국에 온 이순녀씨(60).
이 씨는 남편과 함께 지난 2005년 4월에 재입국하여 다음 달에 곧바로 귀화 신청을 했으나 남편은 신청 후 2개월만에 허가가 났지만 본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현재까지 법무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 제대로 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실제 중국 동포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노동부 고용안정센터 등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 받을 수 없을뿐더러 사설 직업소개소에 비싼 알선비용을 내고도 입주 가정부 이외에는 청소부나 식당 도우미 자리조차 얻기가 힘들다.
다행히 이씨는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 임금체불 등과 같은 어려움 없이 가정부로 일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는 참으로 가슴 아픈 딱한 사연들이 많다고 전한다.
“입주 가정부로 일한 중국 동포 할머니 한 분은 먹는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고, 배가 고파 밥을 조금 많이 먹으려면 주인이 ‘중국에선 밥도 못 먹고 살았냐’며 구박하기 일쑤였다고 해요. 게다가 그 전날 먹은 반찬을 다음날 올리면 밥상을 뒤엎어 버리기까지 했다니 그 설움이야 어찌 말로 표현하겠어요.”
비자 문제도 늘 합법 체류 중국 동포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거리이다.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 올 때 가장 큰 제한은 분명 동포임에도 동포 자격으로 입국비자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체류기간이 3개월인 친척방문 비자로 입국하게 되며 장기체류를 원할 경우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아 6개월~1년 단위로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외국인 등록증을 받은 이 씨도 불법체류가 되지 않기 위해서 6개월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했는데 이것 또한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 발급수수료 3만원이 없어 불법체류 신세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일이 힘들어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사업주 허가 없이는 불가능했고, 1년에 3번 이상 회사를 옮기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동포들 사이에선 붙잡히거나 추방당할까봐 불안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을 때가 더 일하기에 편했었다는 푸념마저 나오곤 했지요.”
이 씨는 지난해 3월 남편이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국 동포의 뼈아픈 현실을 실감하기도 했다. 보호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편이 병원 입원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고자 했던 둘째 딸마저 아버지의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중국 현지의 영사관에서 입국 거부를 당했지요”라며 그때 당한 설움에 감정이 복받혔는지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다행히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남편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딸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치로 남편이 임종한 지 15일 후에 입국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한국 정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결국 “한국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보호자가 중국 교포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외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할 수 조차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권 침해가 아닌가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화하지 못한 중국 동포는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지원받는다거나 취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는 것도 언감생심일 뿐이다. 얼마 전 심한 감기가 걸린 이씨는 병원에서 진단 받는 데에만 1만 5천원, 주사 한번 맞는 데에만 1만원이라는 비싼 돈을 내야만 했다. 그야말로 조국 땅에서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는 것이 중국 동포들이 처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의료, 취업 등 제도적인 문제 이외에도 언어와 생활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 조선족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국 동포들의 고충이다. 이 씨는 조선족 말투를 쓰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의 따가운 시선과 불법체류자로 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한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낸 적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또 체류비자를 받기 위해 법무부에 방문했을 때에는 “비자 확인서 원본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윽박지르는 직원의 말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이어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라면 소수민족으로 살았던 중국에서보다 더욱 극심한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이 씨가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은 그저 소박하기 그지 없다. 몸이 아플 때 어느 병원에서나 치료받을 수 있고, 다른 재외동포들처럼 조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소에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혜택들이 중국 동포들에겐 그토록 바라는 소망인 셈이다.
전민정 기자 puri21@economy21.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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