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한국나들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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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한국나들이(6)
  • 려호길
  • 승인 200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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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호길의 장편계렬 수필>

6,상경

장인장모는 야채재배농장에서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으면 곧바로 상경하겠다고 한다. 나는 날짜를 넉넉히 잡고 항공권을 예약하고는 월급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월급일이 이틀이 지났는데도 얼굴은커녕 전화 한통화 없다. 서로 알건 알고 상의할 건 상의해야 하건만 사위가 부담스러워 한다고 소식을 두절하고 산다. 그것이 오히려 사위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줄은 생각지 못하나 본다.

여행사에서 발권하라는 통지가 두 번째 왔다. 다행이 안면이 있어서 둘러댈 수 있었다. 농장에 전화를 넣어도 받는 이가 없다. 월급일이 삼일로 지나던 날 퇴근하여 숙소에 들어서는데 계단 옆에 큼직한 배낭 두 개가 놓여있고 어두운 계단 뒤로 두 사람이 종이박스를 깔고 앉아 있었는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대뜸 장인장모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보매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버스타고 전철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사장이 버스터미널까지 실어줘서 무척 고마워 하고 있었다. 한마디 하려다 하다가 살결이 쏙 빠지고 얼굴이 검실검실타고 눈에 정기가 도는 장모의 모습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장모님, 진짜 10년 젊어 졌어요.”

장모는 히죽이 웃는다. 방에 들어서자 장모는 허리춤에서 끈을 풀더니 끈에 달린 헝겊주머니에서 현금 160만원을 꺼내 나한테 넘겨준다. 월급을 받은 것인데 사위가 맡아서 집에 부쳐달란다. 나는 그렇게 많은 현금을 간만에 보는지라 저도 몰래 입이 딱 벌어졌다. 이럴 줄 알고 서울에 오던 날 카드를 빌려주고 현금인출기에 가서 시범까지 보여 주었건만 아직도 현금이 믿음직스러운 모양이다. 보매 사장이 “현금으로 줄까요? 통장에 넣어줄 가요?” 하니 현금으로 달라고 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TV를 틀려는 장인장모를 보고 남산으로 가자고 졸랐다. 앞으로 3일 남았으니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몇 곳을 선정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 중 첫 코스가 남산이었다. 정상에 올라 서울시내의 빌딩숲과 야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경복궁과 덕수궁 한강과 청계천과 동대문시장, 종로와 명동거리도 보여 줄 심산이었다. 솔직히 효도관광이라도 시켜줄 입장인데 저절로 서울까지 와 주셔셔 은근히 기뻤다. 그런데 좋아할 줄 알았던 어르신들이 난색을 한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부득이 저녁시간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반응이 없다.

“아니 왜 그럽니까?”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사위" 그때야 장인은 할 수 없다는 듯 건기침을 떼고 말한다. “다름이 아니고 좀 더 있고 싶어 그러오.”
“네? 그건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래도 간다 해놓고 이제와서.......”

어르신들은 사위 앞에서 체면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 장인장모가 한국에 돈 벌러 온다고 할 때는 반대했지만 정작 한국에 와서 일에 적응하는 것을 보고는 기뻤다. 아직 일할 수 있다는 것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노인층으로 말하면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주변 조선족들로부터 우월감을 느끼고 집에 돌아간다고 할 때는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의 수많은 조선족 노동자 농민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역을 치르고 있는 현장에서 이런 불협화음은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인장모는 보던 드라마가 있다며 TV를 튼다. 나는 배낭을 옮겨놓다가 눈길이 저도 모르게 장모가 내 놓은 돈 뭉치에 가 멎었다. 그 때야 나는 일의 자초지종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손자손녀 때문에 ‘6ㆍ1아동절’ 전에 귀가해야한다고 항공권예약을 서두르던 어르신들이 월급을 받고 보니 딴마음이 생긴 것이다. 두 분이 중국에서 무얼 하면 한 달에 만 위안이 넘는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수많은 조선족들이 넋을 잃은 것도 중국에서 월등감에 사로잡힌 조선족사회를 말로직전으로 치닫게 한 것도 한화의 유혹과 갈라놓을 수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조선족사회는 한화 앞에서 울고 웃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쓴 고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장인장모도 한화 앞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나는 어르신들을 위로했다. 잘 생각하셨다고. 돈을 벌어 꼬박꼬박 적금하는 재미도 좋지만 여가시간에는 여기저기 관광도 다니시라고. 그리고 돈이 있으면 하고 싶었던 일들도 찾아하시고 가끔은 절에도 교회에도 가서 다른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삶도 들여다보시라고.

장인장모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자식들과 하나하나 통화를 한다. 좀 더 있고 싶다고. 둘째사위가 곁에 있어 든든하니 걱정을 랑 하지 말라고.(계속)

2007년8월19일영등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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