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변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남한강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이사
어느 자리에서였다.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친구 가운데에 퍽 성격이 활달하고 게걸스런 사람이 있단다. 머리도 좋고 또 임기응변에 아주 능하다면서 거의 자랑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나의 보기로써, 그는 구두를 사서 신는 법이 없단다. 그래도 그는 늘 반짝거리는 새 구두만을 신고 다닌단다. 어쩌면 매일 신을 갈아 신고 다니는 것 같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니까, 그는 아무데서고 구두를 얻는단다. 병원이라든지 음식점 같은, 신을 벗고 들어가는 곳에 자주 드나든다. 그리고는 적당히 일을 빨리 마치고는 나온다. 그래서 죽 벗어 놓은 신들을 둘러보고서는 자기에게 맞을 만한 새 구두를 아무것이나 하나 골라 신는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의젓하게 밖으로 나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진짜 주인에게 들키면 어쩌느냐니까, 그러면 그는 “어어? 내 구둘 텐데요…… ?” 하며 갸웃거리다가는,
“거 참! 꼭 닮았는데……. 이거 구두가 서로들 비슷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성의 있게 사과를 한단다. 그러면서 그는 그 구두를 얼른 벗어서 친절하게 신기에 좋게 놓아주고는, 그가 신고 나설 때까지 정말로 미안한 듯이 몇 번이고 사과하며 거들어 준단다.
그러면 대개는 진짜 주인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조심하라면서 여보란듯이 가슴을 펴며 나간다. 그러면, 그 다음에서야 적당한 신을 신고는 그도 버젓이 나선다는 것이다. 결국 사과를 하며 진짜 주인을 잘 보살펴 주어 보내는 것도 위기를 잘 모면하기 위함과 함께 그 다음의 바꿔 신기 위한 기회를 얻으려는 수단이란다.
이런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친구들은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혀들을 찼다. 거의가 다 똑똑한 녀석이라고 칭찬들이었다. 요새 세상에는 그만큼 대담하고 임기응변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거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그의 그 같은 행동을 과연 칭찬해야 옳을까? 아니다. 그런 사람은 지능적인 사기꾼이나 교활한 도적밖에 달리 보아줄 수가 없다.
물론, 요즈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라야 출세를 한다는 말도 있다. 무슨 일이든지 요령껏 하고 적당히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점차 많아질 때 인간 세상은 과연 살맛이 날까? 너나없이 그런 식으로 산다면 모두 잘 출세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다. 더구나, 그렇게 하며 사는 것으로써 자기 자신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보다도 더, 그런 친구를 가리켜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해 주고 칭찬하던 그 때의 그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 그것이 더욱 서글픈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