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申 吉 雨
: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연변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남한강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이사
skc663@hanmail.net
화초에 물을 주자니 청개구리가 팔딱 뛰어나왔다.
“아! 네가 살아 있었구나!”
어찌나 반가웠던지…. 1주일만이다. 외국에 다녀오느라 혼자 두었었다. 방금까지 화초 잎들을 젖혀가며 살펴보았을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잃었던 지갑을 찾아낸 것보다 더 좋고, 애인이 찾아온 것보다도 더 반가웠다.
나는 청개구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넙적한 턱밑 살을 할딱이며 숨쉬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끔씩 껌벅인다. 으름넝쿨의 꽃술처럼 끝이 동글한 발가락을 한 앞다리며, 기다란 뒷다리를 쩍 펴고서 위로 올라가는 자세도 아무 이상이 없다. 귀여운 모습도 여전하다. 청개구리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도 보고, 손등과 팔뚝에, 나중에는 메리야스만 입은 내 가슴에도 올려붙이며 한참 동안 만난 기쁨을 즐겼다.
내가 이 청개구리를 만난 것은 5월 중순이었다. 일요일에 화초에 물을 주다가 깜짝 놀랐다. 무언가가 잎이 넙적한 옥잠화 화분에서 베란다 바닥으로 톡 튀어나왔던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검지손가락 앞마디만큼도 안 되는 작은 청구리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물을 주다 말고 청개구리를 살펴보았다. 얼굴을 반이나 차지한 두 눈은 왕방울만한데, 옆으로 긴 입은 꽉 다물어 볼보다도 더 길었다. 그래도 하얀 가슴팍을 드러낸 채 앙증스런 발가락들을 펴고 양쪽으로 벌려 버티고 선 자세는 제법 기개 있어 보였다.
청개구리는 큰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옆으로 살짝 돌아앉는다. 마치 내 눈길을 피하기라도 하듯 한 몸짓이다. 하지만 옆모습이 훨씬 더 멋지게 보였다.
가만히 손바닥을 펴서 눈앞에다 갖다놓았다. 청개구리는 살짝 몸을 틀어 고쳐 앉는다. 다시 그러자 또 자세를 튼다. 그러더니 화분께로 팔짝 뛴다. 손바닥을 가까이 대자 기어오른다. 손가락을 살짝 벌리자 떨어질까 봐 바둥거리다 올라앉는다. 눈 가까이 방향을 바꿔가며 살펴보니 어릴 적보다 훨씬 더 귀엽게 보였다.
청개구리가 내 집에 들어오게 된 것도 신기한 일이다. 15층 아파트의 4층에 사는데, 베란다가 있는 남쪽 면은 온통 유리창이다. 창을 열어도 망충망이 설치되어 있어 들어올 수 없다. 바닥의 물빠지 구멍도 총총한 채칼 식으로 되어 있어 들어올 틈새는 아니다. 북쪽의 출입문도 기역자 문틀에 철문이 닫쳐지게 되어 있다. 그 밖은 시멘트 난간이 붙은 긴 복도로 되어 있다. 청개구리가 설령 4층까지 왔다고 해도 출입문은 언제나 닫아놓고 있어 그리로 들어왔다고는 할 수 없다.
청개구리가 어떻게 사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무엇을 먹는지 모른다. 처음 발견된 몇 일 동안은 아침저녁으로 밥이나 감자, 야채, 두부에 고깃점도 주어보았으나 전연 먹은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먹을 것은 아예 포기해 버렸다. 다만 화분에 물을 흥건히 줄 뿐이었다. 다행히 햇살이 잘 들어오고, 화분의 이끼도 푸르게 자라 혹시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궁금해서 화초 잎들을 헤쳐 보면 가끔씩 청개구리가 튀어 나왔다. 어떤 때는 더덕 꽃송이 아래에서, 때로는 널따란 옥잠화 잎새 밑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럴 때면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설레기도 하였다.
그렇게 청개구리와 함께 살기를 보름쯤 지났을 때, 1주일 동안 외국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먹이는 챙길 수가 없지만 마실 물만은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혼자 사는 집이기에 대신할 사람도 없다. 별수 없이 대야와 넓은 그릇 두세 개로 화분들을 받치고, 마지막 날에 가득 차도록 물을 흥건히 주고는 떠났었다.
그런데, 1주일이 넘게 지난 오늘, 청개구리가 팔짝 튀어나온 것이다.
그 동안 좀 큰 것 같기도 하지만, 본래 작으니 자란 것이라 여겨지지가 않는다. 무엇을 먹고 사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청개구리는 그 뒤에도 가끔 보였다.
그렇게 다시 보름 정도가 지난 6월 하순에 청개구리가 보이지 않았다. 출퇴근 때 몇 번 살펴보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몇 일이 지나도 청개구리는 볼 수가 없었다. 팔짝 튀어나오던 그 귀여운 모습이 자꾸 눈에 떠올랐다.
혹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그래서 일요일날 화분들을 옮겨가며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흔적도 없었다.
밖으로 나간 것일까? 하지만, 틈새도 없는데⋯. 아파트 4층 높이는 어떻게 내려가며, 나가서는 또 어쩌겠는가? 혹시나 해서 아파트 바깥 벽 옆의 도랑을 살펴보았지만 주검도 볼 수가 없었다. 정말 가버린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들어왔으니 나 모르게 가버린 지도 모르지.
청개구리는 혼자 들어왔다가 스스로 살다가 혼자서 떠나갔다. 몇 가지 화초와 돌이끼들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다가 간 것이다. 나는 화분에 물을 줄 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청개구리에게는 내가 준 물도 동식물에게 내리는 비나 햇빛 같은 자연적인 현상일 뿐이었을 것이다. 청개구리는 어쩌다가 내 집에 들어오게 되어 잠시 살다가 우연히 떠나게 된 것인지 모른다.
또한, 우연히 만난 청개구리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그와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한 것도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삶이었을지 모른다. 청개구리가 나를 좋아하고 않고, 내가 베풀고 말고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비록 서로 사랑하고 주고받으며 사는 보다 큰 기쁨은 얻지 못했어도, 나는 청개구리를 좋아하고 애정으로 대함으로써 그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혼자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잠시 만난 인연에 따라 스스로 살다가 혼자 가는 것이다. 사랑은 꼭 서로여야 하고 주고받아야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더 좋아도, 그렇지 못하다고 서운해 하고 괴로워할 일도 아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스스로 좋게 여기는 데에서 생기고, 자신이 베푸는 데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내 집에 들어와 말없이 한 달여 동안 살다가 인사도 없이 가버린 청개구리.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삼 사랑의 삶의 원리를 깨우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