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농장에서2
직업소개소에 전화를 넣어서 장인장모의 행적을 추적하니 광주근교 야채재배농장으로 옮겼단다. 전에 누가 광주로 오라고 해서 봉고차를 끌고 경기도 광주로 갔다가 아니어서 뒤늦게야 전라도 광주로 이동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인젠 광주소리만 들어도 “어느 광주?”부터 묻는 나다.
“경기도 광주지 그럼 전라도 광주겠어요?”
접때 소개비 20만원을 내면 스무 번도 소개해 준다던 직원이다. 기회를 만났는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경기도 광주면 곤지암보다 서울과 한발 가까운 곳이다. 장인장모는 비닐하우스에서 야채 따는 일을 하고 있단다. 야채 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하루 종일 오리걸음을 하고 두 손으로 야채를 따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다.
농장에 전화를 넣으니 40대 초반의 사나이가 사장이라며 전화를 받는다. 나는 먼저 번 농장주가 욕지거리를 너무해서 노인들이 무척 괴로워했다는 것과 어르신들이 중국에서 쭉 살다보니 한국에 대한 요해가 없다는 것 연세가 있어서 고집불통이라는 것 그러나 맡겨주면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스스로도 잘해내더라는 것 그리고 나한테는 하나뿐인 장인과 하나뿐인 장모니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마지막 말은 물론 웃자고 한 말이다.
그 쪽에서 잘 알았다며 전화를 놓는다. 어쩐지 예감이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 전화로 장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이 사위한테 전화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위한테 전화를 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 전화를 쓰라고 했다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한주일이 지난 어느 날 장모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사위, 인젠 할 만 하오.”
“네?....... 축하합니다.”
한국에 와서 그 보다 더 반가운 말은 없다. 그 말이 떨어지기 전 한국은 그냥 지옥이다. 이제 그 지옥문을 열고 밝은 세상으로 성큼 나온 것이다. 또 그때면 중국에서 수 십 년 먹고 찐 부석부석하고 유들유들한 비게가 빠져 바지허리가 헐렁할 때이다. 그리고 피부는 탄력을 되찾고 몸매는 날씬해져 훨훨 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물론 하루노동도 거뜬히 해 치우고 간만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기이다.
“장모님, 왜 돈 주고 다이어트를 합니까. 앞으로 우리 집에선 살찐 사람만 있으면 한국으로 보냅시다.”
장모는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 호호 웃는다. 자기도 요즘은 몸매가 가벼워져 날것만 같단다. 나도 날 것만 같았다. 드디어 장인장모가 한국생활에 적응 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뜻밖으로 고향에 있는 자녀들이 애를 먹였다. 아들딸 셋을 키워 모두 대학에 보내어 지금은 의사 교원 군관으로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나오는 것을 자녀들이 동의할 리 없었다. 거기다 사위들과 며느리까지 합세하여 막았지만 놀러 가면 안가겠는가 해서 결국 말려내질 못했다. 그런데 농장주한테 괄시를 받았다는 말에 자식들이 펄쩍 뛴다. 한국인이 뭔데 사람을 괄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본바닥사람들도 똑같이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요행 입은 막았지만 이번에는 어르신들을 무조건 들여보내라는 것이다.
장인장모는 동요하고 있었다. 게다가 함께 야채를 따는 조선족들이 합세했다. 자기들은 아들이 장가를 가지 못해서 혹은 집이 없어서 혹은 퇴직금이 없어서 이 고생을 하지만 댁들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한단다. 나는 입국할 때 이미 만류했고 또 무참히 거절당했기 때문에 듣는 둥 마는 둥 대꾸하지 않았다. 분명 장인장모는 주변 조선족들로부터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장인장모는 귀가하기로 하고 나한테 항공권을 예약하라고 부탁해 왔다.
“아니, 그럴 거면 왜 왔어요. 남들 다 하는 걸 왜 못해요.”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한국에 나온 조선족 대부분은 노후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이미 떼 부자가 되고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몇 해만 열심히 일하면 더 이상 퇴직금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됩니다. 퇴직금을 받는 공직자 층이 그들로부터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인민들이 준 권력’을 어찌 사용하고 지금은 살길을 찾아 객지로 해외로 흘러나온 인민들로부터 우월감을 느낍니까. 이건 퇴직금이 없는 사람들이나 할법한 일입니다.”
장인 장모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더 말해 봐야 사위한테 꼬투리 잡힐 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
2007년8월12일 영등포 /조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