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연변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남한강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이사
skc663@hanmail.net
부인들이 모여 환담을 하다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해 보자고 하였다. 그러자, 어떤 이는 최고 명품의 옷을 말하고, 어느 부인은 값비싼 보석 패물을 내보였다. 최고급 승용차를 들기도 하고, 으리으리한 저택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한결같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들을 자랑하듯 말했다.
그러다가 듣고만 있던 부인에게 말해 보라 하였다. 그러자 그 부인은 두 자녀를 앞에 세우고 ‘내게는 이 아이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다른 부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가장 소중한 것이 친자녀들일까? 위 이야기 내용으로는 물론 옳은 말이고,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하다. 하지만, 그 역시 소유와 관련된다. 과연 최고의 소유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일까?
우리는 항상 현재를 살아간다. 그런데 흔히들 장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라고 한다. 그러나 미래지향은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래보다 현재를 충실히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지금에 귀결된다.
또 과거가 있어서 현재가 있고 다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과거의 소중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생물에게는 살아온 지난 시간보다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어제는 오늘의 과거이며, 오늘을 소홀히 하면 과거가 소중하게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어제 열심히 했다거나 내일 잘 하겠다고 오늘을 허송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란 현재일 때 가장 빛이 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며, 또 빛나는 시간으로 오는 것도 아니다. 과거는 지금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빛이 결정되며, 그 또한 그것의 현재만큼 빛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당장 빛낼 수 있는 지금이란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더불어 산다. 그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며 같이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인연과 관계에 따라 소중한 사람도 있고,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사람은 그런 특정인일 수가 없다. 부모님도 떨어져 있거나 계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홀로 먹는 식사는 맛이 없고, 영화구경이나 운동도 혼자서 하면 재미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만나 함께 차를 마시고, 같이 이야기하며, 더불어 일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미리 일러준 분보다 찾지 못할 때 안내해주는 사람이 더 고맙고, 가르쳐준 분보다 곤란할 때 알려준 사람을 더 감사한다. 그들을 지금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자보다 필요한 물품을 파는 상인이 더 고맙고, 대통령보다 당장 내게 일을 처리해주는 창구 직원이 보다 고맙다. 외롭거나 불행할 때 멀리 있는 친척보다 자주 찾아주는 이웃이 더 고마운 것이다. 그들은 지금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의 삶은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엮는 것이며, 지금 만나서 같이 사는 그것이 나의 인생이요 일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많은 일을 하며 산다. 일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크든 작든, 중대하든 아니든, 일상적이든 특별한 것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일하며 산다. 업무 처리나 임무 수행만이 일이 아니며, 세수하고 칫솔질하는 것도, 식사를 하고 옷을 입는 것도 일이다. 술 마시고 환담하며,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을 여는 것도 일이다. 우리가 쉬고 놀고 잠자는 것까지도 일이 아닌 것이 없다.
물론 일에는 힘들고 어려운 것도 있고, 쉽고 재미있는 것도 있다. 때로는 성공하기도 하지만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이루어냈을 때의 흐뭇함과 기쁨은 일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며, 실패도 다시 성공을 이끄는 거름과 바탕으로 일의 가치를 높인다.
그러나, 성취에서 오는 기쁨은 결과에서 연유되는 것이어서 일시적이고 잠깐이다. 일한 기간에 비해 맛보는 흐뭇함은 짧다. 일의 재미는 이루어낸 데에서가 아니라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루고도 할 일 없는 정년 노인의 삶이 쓸쓸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고, 일을 해야 살아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사는 재미는 일을 하는 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한 평생을 산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소중한 것도 많이 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으로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며, 사람으로는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일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 이상 소중한 것은 없다. 다만 그 가장 소중한 이 세 가지를 우리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