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한국나들이(2 외국인등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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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한국나들이(2 외국인등록증)
  • 려호길
  • 승인 2007.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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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길>

한국에 왔으니 먼저 외국인등록증부터 신청해야 한다. 장인은 동포한테 왜 하필 ‘외국인’이라고 붙이냐고 서운해 했다. 나는 국적관계로 볼 때 엄연히 외국인이라고 하니 저쪽(이북)같으면 큰일 날 소리라는 것이다. 외국인등록증을 받던 날 장인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왜 하필 "중국어 영어발음을 따나가 신분증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여권과 신분증이 어찌됐던 동포한테는 한글 이름을 밝혀주는 것이 고국다운 자세가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여권과 신분증과 대조해 보는 경우를 감안하여 한자나 한자영어발음을 한글 밑에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연변신분증처럼 한글표기를 먼저하고 밑에 한자나 한자영어발음을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백 번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현실은 장인장모한테 외국인등록증부터 신청하게 했다. 나는 평일 직장에서 빠질 수 없어 장인장모한테 이리저리 가고 여차여차 하라고 가리켜 주었다. 또 조선족들이 많이 몰리는 서울출입국사무소보다는 조선족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종로출장소로 보내어 외국인등록증이 빨리 나오도록 했다. 또 돈암동에 있는 한국인한테 부탁하여 동사무소에서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을 떼어서 거주지확인을 받도록 장인장모한테 갖다 주도록 하였다.  

외국인등록증이 나오자면 아직  한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장인장모는 기다릴 수 없다며 내가 없는 동안이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취업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가 장인한테 야단을 맞았다. 그냥 일을 하면 되지 ‘이쪽나라’는 왜 이렇게 복잡하냐는 것이다. 거기다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한술 더 떳더니 장인이 천둥같이 화를 냈다. 돈도 벌지 못했는데 또 돈 내고 공부하고 이건 도대체 조선족들을 데려다가 소비만 시키려고 잡도리를 했다는 것이다.

하긴 동포관련법은 해외동포들이 참여권이 없으니 시종일관하게 형평성을 잃은 법만 출범한다. H-2무연고동포의 선출방법만 봐도 그렇다. 한국어시험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조선족이 거의 없음에도 강행시키고 마는 한국정부와 관련부처는 조선족을 얕잡아본다는 평밖에 얻지 못했다. 한국어시험은 해외동포들에게 모국어를 배우도록 격려하는 수단이여야지 그 이상은 아니다. 더욱이 조선어교육을 대학교까지 받는 중국에서 한국어시험은 중국동포에 대한 모독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등록증’신청으로부터 취업교육, 취업까지는 빨라야 1달이 걸리고 일자리 찾은 뒤 월급이 나올 때까지는 빨라야 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2개월 숙식비용과 입국비용을 포함시키면 적어도 한화 200만원은 휴대하고 한국에 입국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H-2고 이런 방문취업제다. 인건비와 단가는 IMF전 수준이고 동포들이 많이 몰리다보니 요즘은 인건비가 1~2개월 밀리는 현상은 보통일이다. 옛날 노다지판이던 한국이 ‘놀다지’로 변해가고 있다. 마음상하고 몸상하고 돈은 모아지질 않는 한국생활을 웬만하면 접을 때도 되었지만 죽기내기로 오려는 사람들과 돌아가 봐야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겹치는 바람에 한국은 또 하나의 조선족집거구로 되었다. 또 많은 조선족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인건비와 단가가 떨어지고 조선족끼리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국면을 맞게 되었다. 

나는 저녁이면 일치감치 퇴근하여 장인장모와 식사도 하고 때론 여기저기 거닐기도 했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면서 장인장모한테 ‘지하철’이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한 달 뒤 귀가할 때까지도 기어이 ‘소철’이란다. 혀가 굳어진 원인도 있겠지만 정신적 여유가 없다보니 새로운 사물을 접수하려는 용의가 없었다. 또 온통 연변 말을 쓰는 통에 내가 옆에서 통역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인장모는 한국에 차가 많은 것도 못마땅했다. 그러면서 차 1대 값이 얼마나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여기는 차를 사는 것이 아니고 할부로 차를 ‘뺀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할부기한에 따라 차 값도 틀린다고 하니 별 희한한 동네를 다 본다면서 "사위는 할부놀음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장인장모는 길가 가계와 매장들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볼 때마다 난색을 하고 혀를 끌끌 찬다. “1원 2원 할 것이지 왜 동그라미는 잔뜩 쳐서 1000원 2000원, 10000원 20000원 하면서 바람만 잡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밖에 나서면 건물들이 제멋대로 들어앉아 동서남북이 분명치 않고 버스는 또 뱅뱅 돌며 시간만 허비하고 지하철은 계단이 너무 많아 탈이고 장사꾼들은 흥정을 할라치면 불친절하고 마진을 너무 많이 본다는 것이다. (계속) 2007년7월22일/조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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