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돈은 지갑을 만나면 늘 게면쩍어한다 < 시. 외1수>
상태바
잔돈은 지갑을 만나면 늘 게면쩍어한다 < 시. 외1수>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7.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범수 <연변대학 조문학부 비교문학강좌에서 근무>

오십전이라는 체면과

일원이라는 체통으로

함께 인민페의 거룩한 족보임에도

송구스러움과 까닭모를 불안감에

잔뜩 구겨진 얼굴을 더욱 쪼그리는

 

잔돈은 지지리 슬픈 족속이다

지갑을 만나면 게면쩍은 무리들이다

 

한모의 두부나 한봉지 소금

한단의 풋배추라도 사고나면

한동네 가난한 친척처럼 만나는 잔돈은

 

GDP라는 난해한 외래문자와

행복지수라는 어물쩍한 신조어와는

사돈인지 팔촌인지는 거의 알수 없고

 

아파트라는 전단지속의 멋진 공간과

자가용이라는 바퀴달린 또 하나의

아파트하고도 촌수는 없겠지만

 

오금 쑤실 때 정통편 한알이 그립고

학교 가는 어린것 군입질이 걱정인

그 누군가는 매일 그리워하는 사연을

 

그들은 자신도 결코 모르고있다

그래서 지갑을 만나면 늘 숙명처럼

몹시 게면쩍어한다

 

혈색 좋고 체격 좋은 백원짜리의

뻣뻣한 얼굴을 쳐다보기 민망스럽고

둘이 합치면 더 위엄스런 하나가 되는

오십원짜리의 오만한 눈길도 서러워

 

지갑속에 있고싶어도 나돌기를 잘하지만

언제가는 오구작작 함께 모여서

점잖은 십원짜리라도 되여 보고싶은

때 묻고 보풀 인 거침 꿈을 안고 산다

 

지난 메일을 뒤적이며

 

메일을 열었다

서툰 이방인의 알파벳 문자와

역시 서먹한 박래의 수자로

내 고정된 이름의 현주소를 찍었다

e시대의 행복을 세련된 손가락으로 노크했다

 

선착순으로 줄지은 그리움을 차곡차곡 벗겨보면

마우스의 중얼거림으로 재생되는 여온의 사연들

재불속에 잠자다 속살 보인 감자들처럼

뜨거운 감동은 습관적인 기아를 목메게 하고

 

제한된 용량의 가슴이 미련없이 지워버린

시답잖은 이름들과 귀찮은 광고마저도

비온 뒤 우산처럼 축축한 기억들을

또다시 한껏 펼쳐줄것  같기도 한데

 

참깨야, 문 열어라

훔쳐들은 주문 아닌 홀로의 밀어로도

기다려지는 숨결들을 불러오기엔 턱없이 멀어

또다시 뒤적이는 주소록의 간편함과 널어놓은 말씨들

 

수신확인처럼 진찰하고픈 직립보행의 본능에

자리 털고 꺼버린 창을 뒤로 한채 유리창에 다가서면

별과 함께 싸늘히 쏟아지는 황홀한 저 풍경

 

시간의 강은 정렬된 수자방울로 끝없이 흐르고

같아 만든 돌쪼각을 든 류인원 두상으로

대안의 수풀에서 당황한 원숭이를 보란듯이

부지런히 부지런히 물수제비를 띄우고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