摩的
상태바
摩的
  • 우상렬
  • 승인 2007.07.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상렬의 문화칼럼>

 남방하고 북방의 제일 큰 차이 하나 말하라 하면 남방은 자전거 많고 북방은 자전거 적은 거, 남방은 오토바이 많고 북방은 오토바이 적은 거. 그럼 자전거, 오토바이 얘기 좀 해보자.

남방 가운데서도 중경에 오토바이가 특히 많은 거 같다. 중경 嘉陵江의 이름을 따 지은 嘉陵摩托 全國第一, 한 동안 전 중국을 풍미하지 않았던가. 중경 사람들은 중경의 嘉陵摩托라는 브랜드 때문에도 오토바이를 더 많이 타는 것 같다. 성도는 一馬平川이라 자전거 맞잡이로 경편 오토바이, 특히 여자들이 많이 타든데 중경은 山城이라서 그런지 중형 오토바이를 많이 탄다. 사실 중경의 오토바이족속의 특성은 뭐니 뭐니 해도 摩的에 있다. 한국의 아직 철들지 않은 애들이 광기를 부리는 것쯤으로 보면 되는 폭주족하고는 영 딴 판인 摩的. 그럼 摩的가 무엇인지? 오토바이택시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정도로 달리는 한국 오토바이가 중화요리나 다른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등 배달에 많이 쓰이는데 비해 중경 오토바이는 택시노릇을 한다 이거, 참 희한하쟈.

중경 시내를 돌다보면 이런 오토바이택시들이 오구졸졸 여기저기 죽 늘어서 있는 것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런 오토바이택시들은 일반택시들이 기본요금을 5원 하는데 비해 3원밖에 안 한다. 물론 일반택시들처럼 미터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기본요금 이상 거리일 때는 摩的기사와 흥정을 해야 한다. 이 摩的기사들은 일반택시들이 들어가기 힘든 골목길을 요리조리 요량껏 잘도 들어가거나 올라가기 힘든 길도 부릉릉 부릉릉 한두 번에 느끈히 냅다 올라간다. 그러니 일반택시보다 손님에게 편리한 점이 있다. 한번은 내가 슈퍼마켓에 갔다가 허욕에 물건을 한 짐 샀다. 비닐봉지 적어만치 예닐곱 개는 되었다. 그래서 일반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어느새 오토바이기사 한 명이 부릉릉 코앞으로 다가와 기어히 자기 오토바이를 타라는 것이다. 히죽이 웃으며 잘 모시겠다는 호의를 보이면서.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하는 식으로 비닐봉지 짐들을 가리켰다. 그러니 그 기사는 걱정 말라는 식으로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어느새 비닐봉지 짐을 받아 앞에 운전대 안쪽에 짐을 걸도록 만든 걸이들에 거는 것이었다. 걸고 또 걸고 겹쳐 걸고 하더니 삽시에 비닐봉지 짐을 다 걸었다. 참 빠르고도 깔끔한 동작이었다. 이런 摩的들은 대개 여름의 더운 날씨를 감안하여 뒤의 손님자리까지 해를 가리워 줄 수 있는 제비꼬리 모양의 전문 양산까지 해 달았다. 물론 교통질서고 뭐고를 떠나 한국의 총알택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냅다 달리며 급한 대목을 막아줄 때는 좋기는 한데 위험 지수가 높아서 문제다. 사실 중경 사람들은 摩的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역시 안전상 문제를 고려하여 될수록 삼가는 것 같다. 그들도 오토바이 三快-學得快, 跑得快, 死得快를 믿는 것 같다.


그럼 중경은 왜 摩的가 유행할 수 있지? 山城 때문에. 맞는 듯하다. 그러면 나는 本溪 같은 우리 북방의 山城을 들이대 본다. 우리 북방의 山城에는 왜 摩的가 그리 성행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그러니 천상 다른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봐야 한다. 아무래도 북방과 남방의 생각의 문제로 풀이해볼밖에.


우리 북방사람들은 일단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하찮게 본다. 물론 상대급부로 일반택시나 승용차에 비해서. 그래서 자가용 개념이 없고 일반택시가 없을 때 별로 부담 없이 자전거라도 끌고 다녔는데 어느새 택시가 쌩쌩 달리고 자가용시대가 온듯한 들 뜬 분위기속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정말 쪽 팔리는 노릇이다. 오토바이도 피장파장. 여기에 우리 조선족이 더 한 것 같다. 우리 연길시처럼 자전거가 빨리 한 물가기에 따라올 도시가 없다. 한국에서 대형차 선호가 초스피드를 이루듯이. 사실 자전거타기에 딱 적합한 수준인데 말이다. 우리 학교만 놓고 보아도 자전거 타고 다니는 교수 정말 보기 힘들다. 아니, 있기는 있다. 우리 학부의 괴짜 교수 김관웅 선생이 ‘나의 坐驥’를 열심히 타고 다닌다. 그러나 남방 사람은 일반택시가 있든 말든, 자가용이 달리든 말든 관계없이 내 자전거, 내 오토바이하는 식으로 아직 자건거, 오토바이천지다. 面子에 사로잡혀 틀거지 차리기 보다는 실속 있게 내 편리하면 된다는 식.


바로 面子에 사로잡힌 틀거지 때문에 우리 북방사람들은 명분의식을 많이 내세운다. 남자는 어쩌야 되고 여자는 어쩌야 되고 하는 식. 언젠가 우리 학부의 여비서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사람들이 별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속으로 여자가, 그것도 여비서가 오토바이를 탄다야 하며 좀 희기해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한국에서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면 은근히 흉이 되는 것처럼. 사실 비서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데. 그러면 교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하자. 사람들은 뒤에서 또 의론할 것이다. 교수라는 신분에 적어도 승용차쯤은 굴리야지 하는 식. 이렇게 항상 평준화된 명분을 들먹이기 우리는 좋아한다. 사실 아직 우리 교수라는 수준도 괴짜 교수 김관웅 선생의 ‘坐驥’ 수준을 약간 벗어 났을가 말가한데 말이다. 그러나 남방 사람들은 이런 실속 없는 명분에도 잘 사로잡히지 않는다. 교수가 자전거면 어떻고 오토바이면 어떻고 하는 식. 내가 자주 들르는 중경에 있는 사천외국어대학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젊은 교수들이 오토바이를 씽씽 달리며 출퇴근한다. 자기 현재 목표는 이제 돈을 좀 더 벌어 자가용을 사는 것이란다. 현재는 자가용 살 주제가 안 되니 오토바이란다. 참 인생설계를 실속 있게 착착 다져나간다.

다시 중경 摩的얘기로. 가령 우리 연길에 摩的가 생겼다 하자. 아가씨 내 뒤에 탑소, 내 잘 모실게 하면서 摩的기사가 처녀손님을 끌어보았다 하자. 우리 처녀동지들 기겁을 하겠다. 조건반사적으로 단방에 류망~하다가 摩的기사니 으레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곱게 봐준다 해도 그래 몇 숙녀들이 그 생면부지 남정의 뒤꽁무니에 타겠나 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인데 말이다. 그러나 여기 중경의 처녀들 잘도 탄다. 물론 좀 부끄러움을 타는 여자들은 뒤 좌석에 두 다리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한데 가다듬고 엉치를 옆으로 앉는 식으로 타고 옆에 손잡이를 잡기에 바쁘지만 간 좀 큰 여자들은 두 다리를 벌리고 가로타고 앉아 두 손으로 그 생면부지 남정의 허리를 감아쥐고 오른 쪽 뺨이나 외쪽 뺨을 그 모르는 남정의 뒷등에 착 갖다 붙이고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음미라도 하듯 하면서 부릉릉 오토바이 달리는데 그대로 맡겨버린다. 좀 더 까부는 여석들은 그 모르는 남정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아쥐고는 오빠. 빨리 달려줘요, 빨리~ 일종 오토바이 속도감,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스릴을 느끼려 한다. 그 생면부지 남정의 등에서 나는 땀내는 관계없이. 여자고 저쩌고 떠나서 여하튼 내 편리하면 된다는 식이다.

중경의 摩的는 이래서 잘 된다. 面子고 틀거지고 다 벗어던지고 실속 있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여기에 중경의 摩的가 살아있다.



2007. 7.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