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남한강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이사
skc663@hanmail.net
하와이 호놀루루에서였다. 한 야외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식탁 주변으로 날아왔다. 그리고는 자주 주둥이로 땅바닥을 쪼았다. 별로 먹을 것도 없는데 새는 자리를 옮겨가며 내 발 밑에까지 다가왔다. 아마 배가 무척 고픈가 보다 생각하고, 빵을 잘게 조각을 내어 흘려주었다. 그러자, 그 새는 게눈 감추듯이 재빠르게 주어먹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두 마리의 새가 더 날아왔다. 그들도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주둥이로 쪼아댔다. 나는 무심히 또 빵 부스러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주었다. 새들은 좋아라고 순식간에 주어먹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나이든 백인 남자가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 것이 보였다. 나도 덩달아 웃음을 건넸다. 그의 웃음은 내 행동을 좋게 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는 손가락으로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심히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는 나무판이 하나 보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순간 내 얼굴이 화끈 하였다. 그를 다시 바라보기가 민망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음식을 씹으며 조용한 웃음을 띈 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새에게 빵을 준 것은 새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주어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또한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새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잘못이란다. 새가 식탁 주변에 날아와 이리저리 푸드덕거리며 다니는 것은 먼지를 일으키고 신경도 쓰이게 된다. 때로는 갑자기 날아들어 음식을 물고 도망가기도 한단다. 이런 새들의 행동은 개나 고양이가 멋대로 식당 안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영업에 방해가 되고, 손님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위생상 좋지가 않다. 그러므로, 새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사물을 사람의 입장에서 실리적으로만 본 것이다.
이런 고차원의 설명도 있다. 새에게 먹이를 주면, 새들은 자꾸 모여든다. 그리고 먹을 것을 자꾸 주면 그들은 스스로 먹이를 잡거나 찾아먹으려 들지를 않게 된다. 나아가 사람들이 주는 음식에 입맛을 들이게 되면 다른 것은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도리어 식당에 새들이 더 많이 모여들게 하는 것이고, 또한 새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한 마디로 새들이 새들답게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정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새들은 먹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간다. 그리고 식당 주변 같은 곳에는 일부러 주지 않아도 먹을 만한 것이 많은 곳이어서 새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방앗간을 참새들이 그냥 지나가겠는가? 그러므로, 새들은 오지 말라 해도 오게 되어 있다.
실제로 내가 식사하던 그 식당가의 주변 나무들에는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라는 나무판이 몇 개 더 걸려 있었다. 그리고, 새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도 별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새들은 곳곳에서 날아다니고 기어다니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 쪼아먹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두셋이 훌쩍 밖으로 날아가곤 하였다.
또, 새들은 사람들과 아무리 친밀하게 지내도 그 본성을 잃지는 않는다. 본성적인 행동은 서커스의 동물들처럼 오래 동안 특별히 훈련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먹이를 따라 울안에도 들어오고 손바닥에까지 올라와 먹이를 받아먹어도 먹이가 끝나면 곧 날아가 버린다.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식당에 날아온 새들에게 먹을 것을 약간 준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거나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하다. 신경이 쓰이고 방해가 되는 것도 극히 미미한 일이다. 어찌 그런 사소한 이유로 음식 부스러기를 새에게 주는 일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이것은 확실히 너무나 인간본위의 실리적인, 인간들의 이기주의적인 구호이다.
새들이 먹이를 쪼아먹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가 좋다.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입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모습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즐거움이 있다. 오대산의 상원사 앞뜰에서,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암스버그의 민속촌 길가에서 내 손바닥에 올라와 과자를 먹던 다람쥐의 촉감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