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나는 막 26살이 되여가고있었다. 시대를 닮은 머리가 어깨에까지 흘렀고, 아직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소설가 지망생이였다. 그리고 여름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서 가정에 녀자의 물 묻은 손길이 일각이 삼추같이 그리웠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 녀자를 만났다. 한번 만나려면 적어도 세시간은 뻐스에 흔들려야 했는데 아버지와 친척들의 어서 색시를 맞아들였으면 하는 기대에 걸맞게 당장이라도 식(결혼)을 올려줄수 있다고 나서주는 그녀가 고맙기만 했었다.
그런데 산을 내려 마을에 들어서는 길을 밟고있던 내 발걸음이 갑자기 왜 주춤주춤 팔촌네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던가.
자칫 분홍물이 들려 하는 내 흰꽃의 의식에 푸른 싹을 틔워올리며 달려오던 그 청청한 말발굽소리때문은 아니였을가.
6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날, 그 아이를 위한 그녀와의 접목과정에서 나만 홀로 아픈 금을 긋고 돌아서야 했던 사실은 지금도 은하수처럼 내 기억속에 아스라하니 뿌려져있다.
참, 그녀 없이 내가 있을수 있을가. 내 20대는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새해부턴 본격적으로 소설창작에 뛰여들어야겠어.》
그랬다. 내 근심하는바가 바로 그거였다. 장가든 뒤에도 그냥 문학공부를 할수 있을가 하는 바로 그것.
그러나 내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가고있었다.
《네?》
하고 그녀가 이상한 눈초리를 만들어왔던것이다.
《이때까지 열심히 소설 만드는 묘법을 장악해왔으니 이제부터야 머리를 싸매고 부지런히 써야할게 아니겠어!》
어쩌면 나는 그때 그녀에게 기대고픈 심리였는지도 몰랐다. 혹은 내 휘청거리는 아이를 부축해줄, 그리고 등을 밀어줄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이윽토록 어덴가에 먼 시선을 갖다대고있었다. 그 시선이 끝나는 곳에 한 아낙네가 앉아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패고있었다.
《저기 저 녀자가 보이지요?》
급기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남편을 집에 앉혀두고 안해가 밖에 나앉아 나무를 패는 꼴이 보기 참 좋지요?》
《어? …》
이 무슨 무당같은 소리란 말인가! 남편을 집에 앉혀두고 안해가 밖에 나가 나무를 패야 한다니? 그 꼴이 보기가 좋다니? 나더러 문학을 하라는 소린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소린가.
다음, 나는 한가지 드릴같은 사실을 꿈속에서나 깬듯 훤하게 깨달아야 했는데 그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마찬가지로 문학인을 거지발싸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세월이였다는것이다.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수밖에,
그나저나, 저녁에 나는 다시 그녀와 만났다. 따라서 나는 내 인생의 뒤부분을 휘딱 뒤번져놓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나는 이미 내 길의 어둡고 긴 복도를 더듬더듬 걸어가는 장님같은 내 모습을 눈앞 가까이 보고있었다.
《두고봐. 서른살에는 내 기어이 출세작을 내고 말테니깐!》
내 말이였다. 그 먼저 그녀의 충격적인 말이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청알이 되여 내 령혼을 펑크내기에 충족했다.
《문학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예요. 로신이나 김학철 같은 특정된 배경속의 특정된 사람들이 하는거예요. 그러니… 그게 그렇게 쉬우면 누구나 다 하게요!》
이 또 무슨 스무고개람. 개는 다 자라도 결국 큰 개밖에 못된다는 그 소린가? 그녀의 눈에 비친 이 아무개의 형상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것인가?!
그때 그녀가 내게 던진 말중의 다른 하나는 미술 같은 돈 벌수 있는 재주를 젖혀두고 하필이면 왜 할수록 가난해만 지는 문학을 선택하느냐 하는 그것이였다.
충분히 그럴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어찌 한두마디 짧은 말에 다 꿰맬수 있으랴. 꿈 잃고 오락가락 수년동안의 방황 끝에 목숨같이 받아든 문학이 아닌갉
어쨌거나,
그 밤은,
이튿날 아침 나더러 홀로 뻐스에 오르게 만들었는데,
그녀는 나를 전송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불문곡직 아버지께 계모를 모셔들이자고 청구함과 아울러 소설창작에 뛰여들었다. 그것이 후날 《송화강》지에 발표된 소설(처녀작) 《개짖는 밤의 고요》이다.
내 소설이 륙속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른살에 소위 《출세작?》이라는것을 써냈고, 두루 문학상이라는것도 받으면서 소설가 비슷한 놈이 된 지금, 도리대로 말하면 나는 응당 장가라는걸 가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녀와의 접목과정에서 실패한 나는 고약한 버릇 하나를 키워냈으니 세상 녀자들을 전혀 우습게 아는 그것이다. 혹 가다,
《나는 작가들을 제일 숭배합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바로 소설가입니다.》
라고 말해오는 녀자들을 종종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야 이 새꺄, 웃기지 마라 좀. 어느 아낙네처럼 마당에 나앉아 나무를 패는 꼴이 되지 못해 그래애!》
하는 말이 올라오는걸 용케도 참는다. 내 인생에 한획을 그을만한 큼직한 글을 쓰려 하는 요즘 와서는 그 생각이 더욱 그러하다.
누구로부터 뿌려져 나왔을가. 어느날 밤 갑자기 일어나 시를 쓰고있는 자신을 나는 놀랍게 지켜보고있었다.
바람이 불어
향기를 맡아오고있었으므로
꽃은 져도 섧지가 않아라!
비가 잔등을 뚫어
간을 쫏고있었으므로
달려오던 해빛도 무리가 촉촉해라!
락엽이 발목을 덮어도
푸르른 하늘
다시 또 한번 초라해져라!
개똥처럼 굴러라
언땅우를 데굴데굴
그래서나 비명마디 질러보아라!
* * * * *
―모든것이 그대로 되니라
그렇다. 사람이 어찌 혼자서 살랴. 서로 영향을 끼치고 받으며 엄불려서 사는게 이 세상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내 세월의 눈금우에 누가 또 뛰여들어 아픈 금 하나 그어놓고 달아나 버릴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리라. 먼저번 그녀와 같이 그녀에게도 시 한수 적어올리리라. 혹 알겠는가.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어느날 오늘처럼,
그 녀자가 있었기에
그 남자가 있었노라
라는 제법 뜻있는 말을 하게 될런지도.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세상 모든 녀자들을 껴안아주고싶고 또 사랑해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