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난해 8월초의 일이다. 그렇게 조심하느라 했는데도 꽃씨는 기어이 우리 부부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임신 6주입니다.》
뜻밖의 결과에 안해는 잠간 멈칫하기는 했으나, 그러나 속으론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누가 뭐래도 안해는 필경은 녀자로서의 구조를 완벽하게 갖추고있는 녀자였으니까 말이다. 대놓고 말은 안해도 안해의 녀자로서의 본능은 언녕부터 아이를 원했던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우리한테 아이란 결국 십자가일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도 그럴것이 이제 결혼한지 겨우 석달. 그사이 상사와의 오해로 직장마저 걷어장진 상태였고, 하나밖에 없는 녀동생의 비운의 교통사고(죽음)때문에 법원에 출근하듯 드나들던 좋지 못한 상황까지 겹쳐있었다. 해결도 보지 못한 그번 녀동생의 소송사건 때문에 나는 우리가 그사이 힘들게 모았던 돈을 다 털어넣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녀동생의 아이마저 우리 집에 얹혀 살게 되였다. 형편이 이렇다보니 나는 참으로 이 불청객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안해앞에 그런 표정을 솔직히 드러낼수는 없는 일.
그러던중 한 잡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되였다. 그리고 나는 그 꽃씨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보스니아인 수녀 루치 베트루스는 어느날 세르비아인 병사에게 체포되였다. 그리고 그날밤, 수녀는 그 병사에게 강간을 당한다. 이 끔찍한 장면을 베트루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그날밤 누군가가 저를 자기의것으로 만들기 위해 범했습니다.》
더 끔찍한 일은 이 수녀가 바로 그 강간범의 아이를 밴것이였다. 수녀는 오랜 고민끝에 비록 배속에 든 아이가 폭력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증인》이 될것을 믿으며 낳기를 결심한다. 이 결심을 그녀는 총장 수녀한테 이렇게 편지로 썼다.
《수녀님, 저는 이 편지를 쓰는데 위안의 말씀을 청하고자함이 아닙니다. 다만 <원하지 않은 임신>을 강요당하고 또는 강간당하는 수많은 동포들에게 제가 동참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치욕을 통해서 그들과 일치하고싶습니다.》
그리고나서 수녀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맺고있다.
《이 아이는 제것이지 그 누구의것도 아닙니다. 설령 태여나기를 원하지 않는 아이라 할지라도 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것입니다. 저는 이제 오래전에 소원했던대로 앞치마를 두르고 어머니와 함께 소나무껍질에서 송진을 얻으려 나설것입니다. 또한 저는 아이에게 사랑만을 가르칠것입니다. 폭력으로 태여난 아기는 저와 더불어 <사랑>이야말로 인류에게 영광을 주는 위대한것이라는 점을 증언할것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강간범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 베트루스는 그렇게 수녀원을 떠난다.
원하지 않는 강간범의 아이라 할지라도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다면서 수녀원을 나오는 베트루스수녀의 마음이 저기 저 장미꽃우에서 한방울의 이슬로 피빛처럼 빛나고있는것이다.
(거기에 비해, 최근 우리 연변에서는 한해동안에 태여나는 아이의 3배도 넘는 아이들이 엄마의 배속에서 락태수술로 죽어가고있다던가!)
수년전, 카이로에서 락태수술을 어떻게 합법화시켜 인구조절의 한 방편으로 채택할것인가를 세계 각국 대표가 모여 토의하였을 때 인도의 마더 테레사가 보낸 메시지는 그대로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가 이처럼 무서운 파괴와 폭력과 정신의 황폐로 치닫고있는것은 어머니 배속에 있는 아이를 살인하는 락태수술에서 비롯된것입니다. 만일 키울수 없는 아이라면 죽이지 말고 저를 주십시오. 제가 키우겠습니다.》
그랬다.
그리고 올 3월 17일, 나는 연변부유보건원 산실밖 화장실에서 줄담배를 피워대고있었다.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 안해의 극심한 진통이 나를 여기 3층으로 불러들였던것이다. 예정일까지는 아직 19일이나 남아있는데도 의사는 때가 되였으니 아이와 산모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오라고 하는것이였다. 아, 그때 그 가슴을 파고들던 강렬한 떨림이라니!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서 기저귀와 포대기와 위생종이와…를 가져왔다. 그런 준비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던것이다.
아기는 10시 30분 눈내리는 시각에 태여났다. 체중 2,800그람에 키 48센치메터. 19일이나 앞당긴 아이답지 않게 골통이랑 너무나 야무지게 여물었다. 아직 이마빡에 남아있는 피자국. 더구나 눈이며 귀며 입술이며 내 표적들을 그대로 쏙 빼닮은 아들을 대하노라니 저도 모르게 속에서 왈칵 솟구쳐오르는 어떤 설음을 주체할수가 없었다.
화룡에 있는 처형한테 전화를 넣고,
집으로 돌아와 산모를 위한 음식 좁쌀죽과 미역국을 끓이면서, 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월 130원짜리 세집이라 있을리가 없었다. 있으면 차라리 이상한 일. 아이를 가져오면 아이를 뉘여야 할 공간, 침대라도 있어야 할텐데…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를 위한 준비를 너무나 해놓지 않고있었다. 하다 못해 아이의 입에 물려야 할 빈 젖꼭지라도… 이런 부족한 나를 믿고 무작정 달려만 왔을 아이를 생각하니, 그 아이의 에누리없이 완강한 믿음을 생각하니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보일수가 없었다. 아, 아이야. 넌 뭘 믿고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단 말이냐.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마음만 고와서 되는 일이란 도대체가 없다. 생각해보라. 아름다운 장미한테 왜서 가시가 필요했겠는가를. 왜 그 빛나는 털을 가진 스컹크는 고약한 악취를 만들어야만 했을가? 왜서 선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속에 총을 장탄하여 베개밑에 숨겨두어야 하는가?
이렇듯 가시 만들기에만 열심인 사람들. 서로가 찌르고 핥고 빼앗기에만 급급한 사람들. 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나처럼 순백의 마음을 전하면서 달려온 아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너무나 준비가 되여있지 않은 미숙아상태라고 그때 감히 생각했다.
그렇찮은가. 왜, 아이가 놀아야 할 놀이공원, 아이가 읽어야 할 동화책, 그리고 아이가 접촉해야 할 선생님과 학교제도, 아이가 앓을 때 필요한 병원과 아이를 지켜줘야 할 지구상의 법규들, 더 나아가서는 아이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연환경과 아이가 평생을 걸고 지켜야 할 정신적 지주…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사는 이 땅덩어리는 그 허약하기가 빈혈에 걸렸다 아니할수가 없다. 도저히 아이앞에 당당히 나설 자격이 없다는것이다. 더구나 내가 지금껏 열심히 해온 문학이란것도 그 빈혈가운데 하나라는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참말이지 아이앞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이앞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초라한 문학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시밭에 백합화》란 낱말의 의미를 곰곰히 새겨보면서 지금부터라도 아이를 《낳은 죄》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아이는 결코 내 가슴에 달고 다니는 장식품이나 악세사리가 아니니깐. 아이는 장차 이 나라, 이 민족의 얼굴이요 미래이니깐.
《만일 키울수 없는 아이라면 죽이지 말고 저를 주십시오. 제가 키우겠습니다》라는 인도의 마더 테레사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아빠가 못다한 일을 네가 마저 해달라는 뜻에서, 이 험악한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술마시고 담배피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파렴치한은 되지 말라는 뜻에서,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없는것에서라도 줄려고 노력하는 자가 되라는 뜻에서― 2004년 4월 12일,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을 베풀 은(恩), 갖출 비(備), 해서 량은비라고 호적에 올렸다.
호구부를 안고 파출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은비야, 너한테도 인젠 <아직 태여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할 책임>이 주어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