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나는 운동권에서 쫒겨난 사람이오’
개혁은 얼핏 보면 지지부진하게 보이지만, 한참 지나고 보면 엄청난 진보를 가져다준다. 따라서 혁명적 방법보다 온건한 개혁이 그 사회가 진보의 길로 가도록 하는 빠른 지름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개혁은 한꺼번에 완벽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충분한 개혁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중첩되어 일어나면 한참 지난 뒤에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
때문에 나는 급격한 혁명을 지향하는 재야운동 방식은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층 민중운동이 과거의 같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운동방식을 유지하는 한 보통시민들은 절대로 여기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설사 기층 민중세력이 재야 민중운동을 지지하더라도 보통시민들의 지지가 없으면 민중운동은 우리사회의 진보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재야운동도 보통시민들이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방식, 즉 온건하고 합법적이며 합리적인 대안모색 방식으로 바뀌어야져야 한다.
민중당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중당이 보통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협력을 얻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거꾸로 그 사람들의 지지를 배척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폈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나는 경실련을 시작하면서 나의 모든 관심을 어떻게 하면 경실련이 보통시민들 속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에 집중시켰다. 운동권의 지지는 처음부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보통시민들의 두터운 신뢰와 지지를 받게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운동권을 얼마든지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거꾸로 운동권으로부터 내가 내쫓겼다는 사실을 열심히 선전했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 사회자가 ‘이 분은 운동권으로부터 개량주의자로 찍혀 내쫓긴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나를 색안경을 쓰고 보던 청중들도 나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버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내 얘기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내가 정부의 잘못을 아무리 맹렬히 질타해도 전혀 정서적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스스럼없이 받아 들였다.
그래서 나는 ‘만약 내가 기사연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시민운동에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경실련은 운동권이 얼굴만 바꾸어 새로운 포장을 해서 나타난 운동권의 아류일 뿐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나는 가끔 ‘하나님이 경실련을 위해 서경석을 예비해두셨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쭐대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그때의 상황이 나처럼 운동권에서 쫓겨 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경실련과 같은 시민운동을 이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많은 시민들이 사회개혁에 참여하거나 적어도 지지하기를 원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운동권의 과격한 운동방식 때문에 시민들이 선뜻 지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세력과 손을 잡고 우리사회를 보수 반동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운동이 변화된 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여 종래의 과격한 성격을 포기하는 일은 극히 드믈다. 그리하여 상황이 변화하면 주류의 사회운동도 바뀌게 된다. 이를테면 유럽의 경우 나치치하에서 레지스땅스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전후 유럽재건운동을 주도하지 못했다. 재건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테크노크라트들이었다.
필리핀의 경우도 마르코스 치하에서 무장투쟁을 했던 민중세력은 고리 아키노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며 무장투쟁을 계속했다. 그 결과 이들 민중세력은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야운동이 우리사회를 민주화시켰지만 변화된 상황에 신축성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종래의 급진적인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고립당하고, 오히려 기득권세력의 목소리만 키워주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결국은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새로 등장한 시민운동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운동권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시민운동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쫓겨나지 않았다면 나는 항상 운동권을 의식하면서 운동권으로부터 비난받지 않으려고 눈치 살피게 되고 그 결과 시민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을 것이다. 쫓겨났기 때문에 나는 경실련을 시작하면서 재야운동과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방식을 택할 수 있었고 또 국민들만을 생각하면서 가장 적확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경실련 초창기에 경실련을 보통시민들 사이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우선 나부터 과거 재야운동을 했을 때 몸에 밴 언어나 행동을 보통시민들의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조직화를 해야 한다느니 이념이 어떻다느니 하는 운동권 표현들을 전부 버렸다.
실제로 내가 경실련 회원으로 가입한 일반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난 뒤 나중에 평가를 들어보면 내 얘기를 듣고 거부반응을 느꼈다는 시민들도 더러 있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우리가 과거 운동권에 있을 때 가졌던 일체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다 벗어던지지 않으면 경실련을 성공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한 경실련을 보통시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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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데모하기 전에 미장원에 다녀오세요’
경실련이 출범하고 두어 달 뒤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토지공개념 확대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었다.
그 전에 서초동 꽃동네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던 도시빈민들이 경실련에 찾아와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경실련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던 적이 있는데, 이들 꽃동네 주민들도 이 시위에 많이 참가 했었다.
그런데 주민들의 옷차림이 깨끗하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저 사람들은 하층민이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일 집회에 올 때에는 꼭 미장원에 들러서 예쁘게 머리를 단장하고, 가장 멋있는 옷을 입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위를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이 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참석한 꽃동네 주민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공공선을 위해서 참여한 보통시민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경실련은 민중이 하는 집회보다 보통시민이 하는 집회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피켓에 쓰는 구호도 일반 사람들이 전혀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온건하고 설득력 있게 쓰도록 했다. 초창기에는 피켓에 사용되는 구호도 내가 일일이 다 점검했다. 경실련 실무자들이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어서 자칫하면 운동권 스타일의 과격한 구호가 등장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갈 때에도 가능하면 할아버지들을 시위대 맨 앞에 세웠다. 이런 이유로 경실련 초창기의 집회 사진을 보면 항상 맨 앞에 할아버지들이 서계신 것이 눈에 띈다. 그분들이 먼저 나가고 젊은 사람들이 뒤따라가면 일반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곤 했다. 경실련 시위대야말로 보통사람들의 염원을 대변하는 시위대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사람들에게 시위에 집안식구들을 총동원해서 데리고 나오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경실련 데모가 있을 때엔 내 처는 물론 아들 딸을 다 데리고 나갔다. 특히 열 살 밖에 안 된 내 아들 기준이가 전단 나누어주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길가에 있던 시민들이 박수를 치곤 했다.
운동권에서 주로 사용하던 빨간 띠 두르고 손을 치켜들면서 구호를 외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켓을 들 때에도 아주 순진한 모습으로 들도록 당부했다. 보통시민들이 데모를 하는데, 어떻게 피켓이 절도 있게 척척 올라가느냐. 시민답게 어색한 몸짓으로 피켓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야 보통사람들의 염원과 바램이 묻어 나오고, 그래야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동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실련에 처음 들어오는 실무자들은 80%가 운동권 출신이다. 그래서 나는 실무자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과거 운동권 시절에 가졌던 일체의 생각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운동권 시절에 가졌던 사고방식, 판단, 논리를 다 버리고 그야말로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와서 보통사람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과거 이념의 프리즘에 의해 모든 사물을 굴절시켜서 보았던 것에서 벗어나 그동안 보지 못했던 보통 시민들의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 문제에서부터 경실련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운동권적인 방식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기초해서 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무자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때마다 내가 강조한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하지만 운동권 시절에 가졌던 것 가운데 한가지만은 절대로 버리지 말자. 그것은 맨 처음에 운동권이 되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졌던 기본자세다. 인간을 가난, 억압, 굴레에서 해방시켜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은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이처럼 나는 경실련이 선한 뜻을 가진 많은 보통시민들의 지지를 획득할 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실련이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단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보통시민들이 경실련을 자신의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