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이진화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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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이진화 수필>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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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가고 싶다...
     그 곳에 가고 싶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넝쿨처럼 내가 영원히 기대고 싶은 곳.


그리운 모습이 하나둘 사라지는 나의 고향은 바람 한줄기 스치면 날아갈듯 하얀 민들레로 서있고 소나기를 기다리는 여름 언덕우에 가만히 숨겨둔 나의 비밀이 두렵다. 고향을 떠나오면서 서랍안에 묻어둔 나의 《꿀단지》, 언제든지 달려가서 헤쳐보고 싶은 풍만한 추억의 옷섶.

 

    거기에는 꼬깃꼬깃 접어둔 쪽지 몇장과 두툼하게 모아둔 백여통의 편지와 그리고 크기도 빛갈도 다른 카드 여러장 들어있다. 이제 당금 장마철인데 혹시 거기 누기라도 차지 않을가, 좀벌레가 먹어들지 않을가, 그리고 누가 가만히 훔쳐보진 않을가, 얼마나 못미덥고 걱정스러운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누구를 찾는다.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이 그 서랍속에 숨어있을것 같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서면 숨겨둔 수많은 얘기들이 와그르르 쏟아지고 그속에 내 좋아하는 사람들이 껑충껑충 뛰여나오겠지.


거기에는 남자애들처럼 시원히 깍아버린 단발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한여름 강물이 흘러가듯 콸콸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줄 친구가 있다.

편지속에 끼워보낸 사진 두장으로 내 마음속에 락인된 얼굴, 계절의 바람이 뜨겁게  스쳐가는 여름창가에 서서 오늘도 나는 내 친구 영의 이름을 부른다. 바람이 나무가지를 스치는 소리는 그 여름 우체국 배달부가 우리집 삽작문을 여는 소리와 흡사하다. 남자애들처럼 휘갈겨쓴 편지가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듯 가슴이 뛴다.

그러나 편지는 오지 않았다. 대신 e메일이 왔다.


《수신》을 클릭, 어딘가 숨어있던 벌레들처럼 시커멓게 풀떡풀떡 뛰여오르는 수십통의 메일에 머리카락이 쭈삣 서도록 소름이 끼친다. 대부분은 거래업체에서 보내온 메일이고 그외 아는 사람이 보내온 메일과 스팸편지가 있다. 회신할건 회신하고 전달할건 전달하고 차단할건 차단한다.


메일함은 하나의 창구(窓口)와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창밖의 행인이나 드라마속 인물처럼 매일같이 그 앞을 스쳐지난다. 누구는 일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누구는 축복을 담아주기도 한다. 별일없이 한번 기웃거리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야한 포르노 동상을 슬그머니 끼워주며 야릇한 웃음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내게 익숙한 교제의 수단, 대화의 방식이기도 하다. 최고의 효률로 일처리가 가능하고 예쁜 편지지에 근사한 글씨, 우체국을 향하는 그 과정의 번다함이 없어서 좋다. 그리고 내 마음의 불안함이나 정서적인 흥분마저 감쪽같이 덮어감추는 그 신통력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아쉬운것은 누구에게나 다 메일이 닿을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년세 많은 엄마 아버지에게 메일이 통할리가 없고 컴퓨터 같은데는 아예 손도 대기 싫다는 은사님이나 아직 컴퓨터를 들여놓지 않은 가난한 친척에게도 메일은 통할리가 없다. 그들은 인터넷이 열리지 않은 이 시대의 머언 시골에 산다.


그들에게 편지 쓰는 일이 컴퓨터에 습관된 나를 무척이나 난감하게 한다. 편지지와 볼펜을 찾아들고 보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엄두가 안나고 삐뚤삐뚤 모양새없이 씌여지는 글씨체가 아무리 봐도 신통치가 않다. 그렇다고 정연하게 타이핑된 내용을 편지라고 봉투에 넣어보낼 용기는 없다. 정연하면 정연할수록  거기엔 웬지 성의가 없어보인다. 버릇없는 자식같으니라구, 은사님의 화난 얼굴이 어느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기도 한다.


편지 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익숙한 사람에게 쓰는 속심말이 종이우에 옮겨지면 왜 그렇게 쑥쓰럽고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쓰고 지우기를 몇번씩 반복하다 마침내 그것이 귀찮아지고 결국은 편지 쓰는 일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얼마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얼마나 오래동안 편지 한통 받아보지 못했던가?

서랍을 뒤져 제일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 한통 꺼내들고 보니 그것은 일년전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였다. 짧은 회답편지 한장 못쓰고 전혀 미안하거나 불안한 마음 없이 일년이란 세월이 흐르다니, 혹시라도 안좋은 일이 있을지 몰라 걱정하고 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도 마음이겠지만 어느새 말라버린 내 정감의 밑바닥을 그대로 들여다보는것 같아 마음이 쓸쓸해지고 있다. 언젠가는 거기에도 까만 조약돌이 빛나고 예쁜 물고기가 뛰놀고 맑은 시내물이 촐랑촐랑 흐르고 있었겠지.

편지를 기다리며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의례 기다려지는 편지. 그때는 무슨 할말이 그렇게도 많았을가? 친구 영과는 처음 편지연락이 되여서부터 중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줄곧  편지를 주고 받았다.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친구사이에 버성겼던 일, 속상하거나 즐거웠던 일, 내 신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얘기를 나눌수 있고 그의 회답편지를 받는 시간이면 모든 일이 거의 다 순리롭게 풀릴수 있어 좋았다.


수십통의 편지, 매 한통의 편지는 봉투가 터지리만치 두툼했고  그렇게 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도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언제 전화 한번 통하자거나 어디서 한번 만나보자는 말은 꺼내지를 않았다. 그렇듯 우리는 편지속의 서로에게 습관이 되였는가 보다. 나에게 편지를 가장 많이 써준 녀자애, 내가 편지를 가장 많이 쓰기도 했던 그 녀자애. 그의 편지는 차곡차곡 따로 모아서 커다란 봉투에 넣어 저장을 했는데 어쩌다 고향에 들려 편지에 손길이 닿으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날가. 별로 중요한 얘기나 심각한 구절도 없고 글씨체도 비뚤비뚤 그다지 수려하지는 않은 기껏해야 열몇살 녀자애들의 수다에 지나지 않는데 알락달락 예쁜 편지지를 펼쳐 익숙한 글자체가 눈앞에 다가오면 웃을때 보조개가 옴폭 패이는 어떤 녀자아이의 향기가 그대로 나에게 전해온다.


그리고 지꿎은 남자애들이 건네준 쪼글쪼글한 쪽지. 여기저기 틀려버린 철자와 엉망인 글씨, 나 자신의 은근한 기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서투른 감정표현에 실망스럽고 짜증도 났던 편지.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기억속에 사라져 가도 조글조글 쪽지를 건네던 친구들의 얼굴은 좀체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영원한 락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쓴 사람이 그 내용을 깡그리 잊었을지도 모를 지금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내게 남아있는 흔적들. 이토록 아름다운 저주가 더 있는가! 나는 그때 무엇이 부족해서,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갑갑한 마음만 쥐여뜯으며 쪽지 한장 건네지 못했을가. 공원의 어느 다리밑에서 만나자는 엉큼한 수작 한번 걸지 못했을가.


오늘같이 메일함을 열고 닫는 순간 조금씩 비여지는 마음. 어쩌다 반가운 사람한테서 좋은 소식이나 따뜻한 얘기를 메일로 접수하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막대기로 툭 치면 와그르르 떨어지는 오얏나무가 아니고 한입 뚝 떼여먹으면 달콤한 과즙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가 아니다. 그래서 웬지 딱딱하다. 메일은.

어느 순간 주위의 어둠을 헤가르며 반짝 하고 스쳐간 그 수많은 메일이 스텐드의 불빛이나 도시의 네온사인, 밤하늘 별빛의 찬연함이 되였다 할지라도 자연의 순수함이 빛나는 어느 마을 언덕우에 나의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무한한 사이버 세상속 내 비상(飛翔)은 결코 자유스럽지가 못하다.


먼지 한점 물 한방울 묻을세라 한장의 쪽지나 한통의 편지마저 소중했던 날들. 그 편지를 기다리며 아름다운 날과 한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마음의 창을 열고 보았던 푸른 하늘. 하늘만큼 동그란 우체국 도장과 그 도장보다 더 푸른 우표속의 세상.

아침 일찌기 도착하면 이슬이 묻어있는 그런 편지. 비오는 날 한쪽 귀퉁이가 흠뻑 젖어 있거나 고무줄로 묶었던 자리에 구멍 하나 뚤려 있어도 좋다. 봉투에 적힌 글씨체를 보고 단번에 누군가 알아맞출수 있는 편지, 멀리서 슬쩍 바라봐도 마음이 설레이고 웃음이 새여나가는 편지. 흘러간 나의 동년과 같이 멀어지는 나의 고향과 같이 어느새 추억속에 묻혀진 내 정감의 뜨락이여.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를 닮은 그런 편지지를 골라 편지를 쓸가.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능숙해진 손으로 비뚤비뚤 망가진 글자체로 편지 한장 써볼가. 앙증한 우표 두장 골라 봉투 한쪽 귀퉁이에 슬쩍 붙이고 아이때처럼 천진한 웃음이라도 지어볼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쪽지에 적어 배로 접고 비행기로 접어 그럴사한 표지 디자인의 잡지속에 끼워두고 누구에게 슬쩍 건네보기라도 할가. 나도 그렇게 아름다운 저주, 향기로운 락인이나 되여 볼가.


무엇이든 있을 것 같은 사이버 세상에 내가 찾고 저 하는 사람의 모습은 도저히 보이질 않는다. 바깥세상에 눈부신 빛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날, 나무잎이 한창 푸르른 시골에로 가고 싶다. 거기 나팔꽃이 피는 울바자에 오래 동안 기다려온 편지 한장 있지 않을까.


이진화: 중국 소주 거주.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단편소설, 수필 수십편  

           '연변문학' 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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