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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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 ?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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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지? 알고 싶다. 내 이 글은 그 친구를 위해 쓴다.

 

소학교 5학년 때다. 1975년, 온 나라가 등소평의 右倾翻案风을 反击한다고 야단법석. 그런데 어느 하루 아침 학교에 도착하니 공안들이 삼엄한 경계망을 늘였다. 전반 학교분위기가 무시무시했다. 이상하게 여기며 종종 걸음으로 우리 반 교실 앞으로 달려가니 사람들이 욱 모여 서있다. 우리 반 교실 문 앞을 원점으로 하여 회가루로 큰 반경선을 죽 끄어놓았는데 사람들은 그 반경선을 둘러싸고 게사니목을 해가지고 교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기에는 선생도 있었고 학생도 있었다.


우리 반 흑판에 반동구호가 씌어 있다는 것이다.‘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 참, 기겁을 할 일이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어떤 나쁜 놈이 썼지? 흰 옷을 입은 공안들이 들락날락하고 사진을 찍고 자로 재고 수첩에 적고 바삐 돌아쳤다. 우리는 내심이 기다렸다. 그 나쁜 놈을 저주하면서, 아니 빨리 잡히기를 기도하면서. 그날 우리는 온 하루 공부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한 사람 한 사람 흑판 앞에 나와 분필 글 쓰 보이기도 하고 전날 저녁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써내기도 하며 공안들의 안건수사에 협조했다.


공안들이 인민대중을 충분히 발동한 덕택인지, 여하튼 반동구호  쓴 범죄자를 몇 일이 안되어 쉽게 잡아냈다. 그런데 잡아내고 보니 좀 맹랑했다. 우리 반에서 말이 적고 너무도 온순한 새애기 같은 친구가 잡혀 나왔다. 자기의 죄과에 대해 순순히 승인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맹랑하다 못해 저어기  놀랐다. 공안이나 학교당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그 친구 뒤에 꼭 教唆犯이 있다고 추측했다. 그 온순한 친구가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청소년범죄 뒤에 꼭 教唆犯이 있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계급투쟁의 복잡성을 이렇게 풀이했다, 하물며 천인공노할 정치범죄사건임에라!


그래서 그 친구를 성토하는 대회의 구호의 하나가 教唆犯을 교대하라, 教唆犯을 잡아내자!였다. 그런데 정말 教唆犯이 있는지 없는지, 그 친구는 教唆犯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단독범죄로 단정짓고 그 친구를 청소년노동교양소에 보내는 것으로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이 어마어마한 ‘정치범죄’사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직 세상물정을 알기에는 어리고, 더구나 복잡한 정치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에는 한참 어린 12살 좌우의 코흘리기 나이의 그 친구가 어떻게 당시 모주석의 용인 하에 ‘4인무리’가 주도하는 反击右倾翻案风运动을 정면으로 맞받아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다. 이른바 반동정치구호‘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를 다시 한번 보자. 당시 모주석은 계속 좌적인 노선을 견지하는 데다가 인생만년에 사물에 대한 판단도 많이 흐려져 야심가들인 ‘4인무리’들한테 이용당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한 시기 등용되어 난국을 수습하며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있는 등소평을 타도하는 右倾翻案风运动을 일으킨다.


그러니 이 시기 모주석은 잘 못해도 한참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친구 반동정치구호‘打倒’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실사구시적으로 일 잘하는 등소평이 하루 빨리 올라가야 한다. 이것이 그 당시 중국 역사발전의 객관적인 요구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는 잘 못된 것이 없다. 당시 시점에서 대단한 선견지명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듬해 모주석이 서거하고 ‘4인무리’가 타도되고 등소평이 부상하면서 실제로 역사는 그와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그래 그 친구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썼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못한 감을 준다.


나는 그 친구 뒤에 ‘教唆犯’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문화대혁명말기라 등소평을 옹호하고 ‘4인무리’를 반대하는 선구자들이 실제로 역사에 등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청명 날 천안문광장에서 인민들의 주은래에 대한 추모와 ‘4인무리’에 대한 성토는 그 집중적인 폭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教唆犯’이 코흘리기 어린이를 시켜 교실흑판에 그런 엄청난 반동정치구호를 쓰게 했다고 보기에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남는다.


그런데 ‘4인무리’가 타도되고 잘 못된 것을 바로 잡는 그 시점에도 ‘教唆犯’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친구를 괴짜라고 할밖에. 그런데 그 친구의 이 반동정치구호 사건은 거저 그 친구 청소년노동교양소에 갔다 온 것으로 끝날 것인가? 그 친구 애매한 역사의 희생품으로 되고 말 것인가? 이 점 또한 석연치 않다.


200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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