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산 수필]
1. 물이 없는 강나는 지금 살고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지도 벌써 해수로 6년이 된다. 하남가두에 위치한 원래 살던 집에 대면 40평방메터이상 비좁고 6층이라서 오르고 내리기에도 힘든건 사실이지만 추호도 후회하지를 않는다. 오히려 감사할뿐이다. 자연에 굶주린 현대도시인으로서 부르하통하를 눈아래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한 집에 앉아서 강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정취보다 더 감동적인 일은 다시 없을것이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던 때는 추석전이라서 계절은 가을부터 나의 이주를 맞아주었다. 강변도로가 새로 생겨나면서 나무 한그루 없는 벌거벗은 강가에서는 타는듯한 단풍은 상상도 할수 없다는 사실이 가을날씨만치나 내 마음을 차겁게 했다. 그러나 우리 아빠트단지앞 공장 뜨락에 간신히 남아있는 30여그루 버드나무의 변화를 통해 가까스로 계절을 확인할수 있어서 그나마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 집에서 몇년을 살면서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계절은 순차(順次)를 기억하고 어김없이 오고가건만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록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타고 겨울이면 소복단장 눈부신 원래 계절의 모습은 옛날처럼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도시라는 빌딩의 숲속에서 일상에 쫓기다보면 봄이 오는지마는지 여름이 시작되고 기별도 없이 불쑥 가을이 나타나고 한겨울 복판에서 눈석이물도 흐르고…분명하지 않은 계절의 변화에 무심해지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지난해가을부터 마음에 앉은 세속의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겨울과 봄을 지켜보는 나는 다시 놀라운 발견을 했다. 겨울 부르하통하는 성에장도 흐르지 않고 얼어붙고 봄의 부르하통하는 얼음이 녹아도 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용(市容)을 살린다고 시내구역내에 가둔 물은 흐르는것이 아니라 넘쳐나는것이라서 성에장이 흐를리가 없고 눈요기로 남북강뚝사이 강바닥을 가리고 찰랑대던 물이라 얼었다 녹으면서 땅에 잦아들고나면 흐를리가 없었다.
올해는 겨울이 유난히 유순하고 봄이 성급히 달려와서 왕년보다 보름이상 먼저 해동이 된듯싶었다. 부르하통하 강바닥은 얼음 녹은 물을 다 먹고도 갈증이 풀리지 않은듯 거부기 등허리처럼 쩍쩍 갈라터졌다. 성에장을 떠싣고 흘러가는 강물을 마주하고 억압 받던 심정을 목이 터져라 속시원하게 감정을 토로하던 시인더러 여기 강변에 서서 시를 읊조리라고 하면 시는커녕 숨구멍이 막혀서 봉창이라도 내려고 두주먹으로 가슴만 두드려댈것이다. 연길의 봄은 진작 시적인 계기를 잃어버린 강마른 모습이였다.
며칠전에 강변도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보니 제방아래 작은 웅뎅이에 희한하게도 물이 고여있었다. 싱거운 사내 하나가 새하얀 연돌이 디룽디룽 달린 투망을 감아쥐고 웅뎅이 가까이 다가가더니 부채를 펼치듯하면서 휘익 힘주어 뿌렸다. 다음 순간 그물이 통채로 웅뎅이를 덮으면서 서서히 가라앉았다. 사나이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물을 걷어올려서 툭툭 털었다. 일회용 나무저가락 몇개와 광천수병이 수면에 떨어졌다. 몸부림을 치듯 수면에서는 잔파도가 퍼져갔다.
생명이 없는 부르하통하의 잔파도는 이미 죽음을 지척에 둔 어느 할머니의 얼굴의 주름같이 가로세로 깊어보였다.
2. 생명이 없는 강
4월 10일도 훨씬 넘어서야 우리 집 앞강에는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보름이 지나자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남북 곡방이 물이 넘쳐날듯한 착각을 만들어보였다.
이른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창밖을 바라보면 바람결에 넘실대는 물결우에 부서져내린 은가루같은 해빛이 마냥 즐겁다. 고인 물이라서 마치도 장방형의 거울을 눕혀놓은듯하다. 저녁이면 강역 가로등불빛이 그대로 물속에 비쳐서 불기둥을 품은 강이 날이 새면서 해빛을 통채로 안고 반사를 하는양 금방 잠기를 털고 일어난 나를 황홀한 기분속에 잠기게 하였다.
벌써 부지런한 낚시군은 강가 유보도에 쪽걸상을 놓고 엉덩이를 붙이고 그린듯 앉아있었다. 길고 가는 낚시대가 물우에 휘우둠하게 활등처럼 걸려있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강변 낚시군한테로 다가갔다. 쪽걸상옆에 놓인 통졸임 유리병에는 나의 식지만한 버들개 한마리가 시허연 배를 수면에 드러내고 죽은 듯 누워있었다.
나는 4월초에 싱거운 사내가 거둔 고기그물에 디룽디룽 달려나온 광천수병을 떠올리면서 낚시군한테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고기가 잘 잡히나요?》
《온 하루 앉았어야 열마리 잡힐려나…》
《고기가 없나보지요?》
《이런 물에 고기가 있을턱이 있나요!》
《그럼 며칠 잡아야 한끼 잡수시려나요?》
《재미지요. 여기 물고기는 못먹어요. 석유내가 나는데요.》
흙물이였다. 아침에 집에서 굽어볼 때 먼 거리에서는 맑은 거울같던 수면이 때가 덕지덕지 오른 유리같았다. 황하의 물을 옮겨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변유원지를 세를 맡은 장사군이 보트를 타고 강물속에 말뚝을 박고있었다. 10분 보트놀이는 인당 10원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의 기억은 소년시절로 되돌아갔다. 우리 마을뒤 봉밀하에서 마을사람들이 배놀이를 했다. 물은 어찌도 맑은지 배며 배우의 사람들의 모습을 거꾸로 비껴담았다. 물깊이는 사람키 넘었지만 물속에 청태가 낀 돌이 그대로 비쳐오고 돌틈을 헤여가는 물고기와 가재들이 어항속을 바라보듯 보였다. 지금은 봉밀하도 물이 줄어서 개울로 변했다. 그나마 상류에 마을이 별로 없어서 부르하통하에 비하면 오염은 훨씬 가벼웠다.
부르하통하의 강이름은 만족어로서 그 뜻은 진주강이라고 한다. 옛날 청나라에서 진주를 재배하던 강이란다. 진주가 날만큼 강이 맑고 컸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제는 진주가 아니라 물고기도 거의 없고 그나마도 오염된 물에서 사는 물고기마저 사람들이 먹을수가 없게 변한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그대로 무너졌다.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던 물이 아니라 물고기마저도 병이 들게 하는, 생명이변을 만드는 병균이 득실거리는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이 강이 누군가 버린 값싼 거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린지가 오래되여서 얼굴을 비쳐보일수가 없을 정도로 때가 묻은 거울이였다.
3. 록음이 없는 강
우리 집앞 공장 뜰안에는 버드나무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26그루였고 수령은 약 30여살 정도로 추정되였다. 아마 연신교에서부터 연동교까지 구간에서 한곳뿐인 버드나무숲(물론 숲이라고는 할수 없음)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어느날 석양녘에 육중한 포크레인차가 오더니 풀을 뽑듯 나무들을 뿌리채 뽑아버렸다. 금방 파랗게 록음을 머금기 시작한 나무이파리에 매달려 아롱대던 석양노을이 나무가 땅에 쓰러지는 순간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옆에 전기톱을 쥐고 기다리고 섰던 사람이 나무줄기와 가지들을 순식간에 토막을 냈다. 그리고 토막난 나무들은 자동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갔다. 불과 한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동안 마을사람들은 강뚝에 서서 나무를 뽑는것을 재미나게 구경하고있었다. 이제 나무가 살던 땅에 아빠트를 지을판이란다. 그것도 20층이상의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신식건물이 들어선단다. 숨차게 층계를 오르던 그 수고를 덜수 있고 또 허망 공중 높은곳에 살면서 거칠것 없이 멀리 바라볼수 있다는 흥분에 모두들 기분이 들떠있었다. 순식간에 토벌을 당해서 죽어간 한창 나이 나무들의 비참한 운명을 두고 동정의 말 한마디 하는이는 없었다.
이제는 연길시내 부르하통하구간 강뚝에는 버드나무가 거의 없다. 한여름 못지 않은 무더위로 시작된 봄날 강변에서 더위를 식힐만한 그늘 하나 없다. 콩크리트로 쌓은 강뚝, 콩크리트로 만든 네모난 규격의 인공돌을 깐 강변도로, 머리우에서 해가 쪼일 때 맨발바람으로 바닥에 서면 발바닥이 빨갛게 델 지경으로 따갑다. 어느핸가 소나무과에 속하는 침엽수를 떠다 옮긴 다음부터 강변도로는 마치도 렬사릉원 길을 방불케 했다. 그래서 강변도로를 거닐 때면 산보하는 가벼운 마음보다도 말 못할 비장함에 가슴이 무겁기만 하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능수버들 휘늘어진 록음속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보고 바둑을 두면서 한여름 더위를 식히던 그 옛날 진풍경은 다시 없다. 맑은 물에서 장구를 치던 벌거숭이 아이들도 없다. 강에서 잡아올린 고기를 강물을 퍼서 국을 끓여놓고 술을 마시던 랑만도 없다. 높고 굵은 나무가지에 그네를 매고 선녀처럼 날아오르는 처녀의 모습에 반해 가슴을 설레일 총각도, 강역 모래불에서 삿바를 끼고 씨름을 하는 사나이의 떡 벌어진 가슴에 얼굴을 묻는 상상에 취한 처녀의 빨갛게 물든 얼굴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연신교밑으로부터 연동교아래까지 보를 쌓아서 물이 고여 강처럼 보이는 부르하통하 강변길은 그나마도 연길시민들의 유보도길로 자리잡았다. 강변도로에는 또 간이음식점들도 들어섰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강, 나무가 없고 꽃이 없는 강뚝 유보도길, 나무그늘을 대신한 간이음식점들, 조수와 조화(造花)로 장식한 음식점 천정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그속에서 랭장고에서 반으로 언 맥주를 까서 마시면서 희희락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애달픈 연길의 강변문화의 진면모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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