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법체류자 시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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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법체류자 시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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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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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2003-12-20

18일 오후 서울 종로2가 종로타워 앞. 지나가던 행인들이 예상치 못한 “와!” 하는 함성 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렸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겨울 바람이 매섭던 이날, 서울 도심 한복판에는 외국인 노동자 600여명이 불법체류자 강제추방 중단과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참석자 대부분은 불법체류자들이었다.
“어?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네…, 이제는 외국인들도 우리말로 시위하나?”

사람들은 시위 광경을 바라보며 신기한 듯 이렇게 말했다. 까무잡잡한 피부, 오똑한 콧날 등 우리와 조금 다른 외모를 제외하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쥐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여느 집회·시위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어설픈 발음으로 ‘투쟁투쟁’ ‘추방 반대’ ‘노동권리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던 이들은 집회 후 최근 잇따라 숨진 외국인 노동자 7명의 영정과 만장을 앞세우고 종묘공원까지 1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회가 3시간 넘게 진행되는 동안, 경찰은 돌발 사태에 대비해 무전기로 연락하며 집회 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단속대상인 불법체류자들이 바로 눈앞에서 행진하고 있는데도 이를 단속할 의지는 없는 것 같았다. 집회 현장에 나온 한 경찰은 “집회 신고는 외국인이 아닌 일반 내국인들이 했고, 불법체류자 단속은 우리 소관 업무라기보다는 법무부 관할이어서 마음대로 나서기 어렵다”고 나름대로 ‘고충’을 털어놨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19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조선족타운’ 거리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스토리가 전개됐다. 상인 100여명이 몰려나와 “숨은 불법체류자를 잡는다고 단속반원들이 상가 안에까지 들어와 설치는 바람에 매출이 떨어져 못살겠다”며 집회를 가진 것이다. 불법체류 노동자에 관한 정부의 원칙이 무엇인지, 정말 아리송하다.

(홍원상·사회부기자 wsho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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