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대표해 외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의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홍콩 주재 한국 대사관 영사로 근무했던 이아무개씨는 재임 1년 남짓 현지 브로커들한테서 2억여원의 뒷돈을 받고 부적격 재중동포 260명에게 비자를 내 준 것이 들통나 구속됐다. 몇 달 전에는 중국 선양 주재 부영사와 베이징 주재 영사가 역시 비자를 불법으로 발급했다가 구속 기소됐다.
브로커에게 뇌물을 쓰고 한국에 온 재중동포들이 그 돈을 벌기까지 돌아가지 않으려 할 것은 뻔하다. 불법 체류자들이 단속에 쫓겨 도피생활을 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 일부 외교관들의 비리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비자발급 비리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부 동남아 쪽 재외공관에서도 저질러졌다고 한다.
외교관은 특수직이어서 외부 사람들이 내부 사정을 잘 알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안에서 부정부패나 낯뜨거운 비리가 횡행해도 여간해선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못 본 척 눈감아 주거나 끼리끼리 감싸온 관행이 굳어지면 더 큰 비리를 낳게 된다. 출장 일수를 늘여 차액을 챙기거나 사적으로 친구들을 만나 법인카드를 쓰고, 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사람 수를 부풀려 돈을 타내는 등 몰염치하고 낯뜨거운 짓을 일삼는 상사들의 비리를 내부 통신망에 올린 한 외교부 직원의 용기있는 ‘고발’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를 다른 조직에서도 흔히 있는 ‘도덕적 해이’나 ‘잘못된 관행’ 정도로 가벼이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외교관은 나라를 사랑하고 대표한다는 사명감이 가장 투철해야 할 직군이다. 그런데 이들이 불법·비리를 저질러 주재국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거나 부하 직원들을 좌절하게 한다면 이는 국위를 드높이는 게 아니라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이다. 철저히 수사해 구조적 비리의 싹을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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