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저녁 고려호텔 지배인이 우리 일행을 초대하는 장소를 마련했는데 연회를 굉장하게 벌렸다.
초대회가 시작되자 호텔지배인은 “수령님한테서 선물을 받은” 나에 대해 축하하는 장편발언을 했고, 나는 숱한 박스 갈채를 받았다. 1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일행이 초대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주로 화강석기지 합자합영 목적으로 갔으므로 전 북한의 화강석 산은 거의 다 돌아다니다 시피 하였다.
평양과 남포사이에 잇는 화강석은 한개 큰 산이었는데 산 전체가 한덩어리 화강석이라 하면 적절할 것이다. 산봉우리에 올라갔는데 발로 디디고 선 것이 바로 화강석이었다. 흙층도 없이 전체가 화강석이다. 그대로 끊어내기만 하면 면 쓸 수 있는 화강석으로서 우리 대표단은 너무나도 신기하여 바로 이 산을 파먹자고 하였고 모두들 아주 흡족해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화강석을 두부모처럼 끊어 내 남포항까지 실어갈 설비와 기계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북한 사람들은 무산계급, 자산계급, 자본가 등 단어를 많이 쓰고 있고 그들의 인생관에서 이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에도 이 몇 개 개념으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았던가?
우리 일행이 모란봉에 올라 구경할 때다.
싸락눈이 살짝 내려 우리가 탄 차는 마지막 올리막을 앞두고 모두가 차에서 내려 걸어올라 갔다. 다른 차들은 모두가 좀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 했는데 우리 운전수는 운전기술도 좋고 나이도 약 40여세로서 경험이 있었다.
그가 차를 뒤로 좀 빼더니 앵 하고 올리막을 톱아 올랐다. 숱한 사람들이 경탄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차가 올리막을 거의 올라 왔으나 약 5미터 정도 앞두고 눈에 미끄러워 헛바퀴가 홱홱 돌아가더니 뒤로 좀씩 밀리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차가 사고가 날수 있는 찰나였다. 본능적으로 나는 급히 쫓아가서 차 뒤에 어깨를 대고 올려 받았다. 차는 제자리에서 앵앵하기만 했다. 멍하니 제자리에 굳어 잇던 다른 관광객들이 제 정신이 들었는지 와 하고 쫓아와서 차를 위로 밀어 올렸다.
차 뒤에서 뻗치고 있던 나는 바퀴가 헛돌면서 눈과 모래흙이 한데 엉킨 것을 왕창 뒤집어 썼다. 흰 적삼에 넥타이 매고 양복을 입었던 나는 온 몸이 진흙에 감겨 말이 아니었다.
금방 휴게실에 가서 대강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운전수가 급히 와서 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큰일 날번 했습니다.” 옆의 사람들도 마치 영웅을 대하듯이 몰려와서 문안을 하였다. 무심결에 벌어진 일인데 100여명 사람들이 이와 같이 대해 주니 오히려 좀 무안해 났다.
이때 나와 한 차를 탔던 총국장님이 저와 약 몇 미터 떨어진 자리에 있었는데 주위의 사람들한테 내가 누구라는 걸 그들한테 소개해 주는 것 같았다.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내 귀에 들어 왔다. “보십시오. 자본가라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그 뒤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이전처럼 서먹서먹하지가 않고 아주 가까워지는 것이 감으로 몸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