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사탕 한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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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사탕 한알이 생각난다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6.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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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일


내가 누구인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정말 생각을 하지 말자고 자신을 다독인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말그대로 내가 누구이고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지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답안을 찾은지가 오랠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처한 처지가 억울하고 자기가 헤치고 나아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험악한 길이기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뭔가의 구실을 달아서 이 세상에 대고 어리광이라도 부려보고싶은 마음에서 흥흥거리기도 했었다. 남들은 진작 그 천진하고 깜직한 짓거리를 보아내고 어르고 다독이며 어화둥둥 그 어리광을 보아주고 부추켜주기도했다.

사람이란 요사한 동물이여서 그것이 자기를 어르는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어르어주는 그 재미가 좋아서 이거야 이런거지 뭐, 하고 스스로 쾌재도 불러보아섰다.

그것이 옳은지, 그것이 아닌지? 살면서 자기의 집구석에서 알량한 자기의 욕심에 의해 이것 저것 속구구를 하던 일이 정말 허무하고 어처구니가 없게 생각히울 때가 있다.

내밖에 내가 있고 세상밖에 세상이 있는것이다.

중국아동문학계에 양붕이라는 36살에나는 기재가있다. 환상소설을 창작하면서 자기의 <<과학환상소설공작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 사람은 26살나던 해에 중국작가협회에 입회했고 이미 160여부의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중국사람도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사람에게 노벨문학상을 주지않겠다고 하면 달라고 칭얼거리지는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나의 작품은 제일좋은것이 아니다. 나의 작품에는 나만의 개성이 들어있다>>는 신념으로 자기만의 창작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보름에 장편소설 한부를 완성하고는 일주일씩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앓기도 했다는 양붕의 그 장인정신을 한점쯤은 따라 보는것이 어떨가?

어제 오전, 양붕님의 강의를 들으며 부끄럽게 생각되는 점이 참 많았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 하고싶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것이다. 명지한 사람은 자기가 처한 공간, 자기가 가지고있는 지식구조, 또 자기가 나아가야 할 래일에 대하여 생각을 굴리고 반추할줄 알아야한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욕심이 나도 나의 것이 아니면 잡을수가 없는것이다. 자기를 제치고 저만침 뛰여가는 아무깨가 아무리 밉고 질투가 나도 아무깨의 성적에 손벽을 쳐주고 슬그머니 이를 앙다물고 아무깨를 쫓아가는 아량을 가져보면 어떨가?

정말 먹고 살기 바쁘던 그 년대, 간혹 사탕 한근에 흰술 한병을 들고 우리집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대단하게 생각되여 나는 친구들에게 <<너희들, 잘 해라! 그 사람이 사탕을 가지고 오면 잘하는 사람에게 줄게!>> 하고 으시댄적이있다.

천진한 친구들이 나도나도 하며 나에게 잘 보이겠노라고 열심히도 아부를 했다.

제일 빨리 오고 제일 잘 뛰는 사람에게 주고싶던 사탕이지만 사탕을 사가지고 오던 그 분이 일이 생기면서 우리집에 발길을 끊었다.

어쩐담?

엄마가 닭알을 팔아서 사가지고 온 그 사탕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다른 사람에게 주자니  이것도 생각히우고 저것도 생각히우면서 아깝기만 했다. 준다고 했으니 주기는 해야겠고 그럴바 하고는 내가 고운 사람에게 주면서 이래서 저래서 너에게 준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적이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사탕을 먹지못해서 <<이 개새끼야!>> 하고 욕지걸이를 하던 상호도 우습고 그 사탕을 좀은 밉지만 제일 빨리 뛰여온 상호에게 주지 않았던 나도 어처구니가 없게 생각된다.

사탕을 쥐고있던 내가 말한대로 제일 빨리 뛰여온 상호에게 줘버렸더라면 욕이나 먹지않았을것을, 누구도 빨리 뛰지않았다고 생각히웠더라면 좀 기다렸다가 래일, 정말 잘 뛰는 사람에게 줬을것을…

사탕한알을 누구에게 주는가가 문제가 아니였다. 그때 나는 나에게 사탕이 있다고 으시대는게 좋았고 그 사탕을 바라고 뛰여오는 애들을 보는게 재미가 있었다. 나에게 사탕이 있기에 그것을 가지려고 달려오면서 너희들은 달리기 련습이나 실컸 해보라는 나로서의 얄팍한 생각을 하면서 친구들을 열심히나 생각하는것처럼 으시대기도 했었다.

어쩜 그때 나는 너무도 성숙되지못한 그릇이였다.

오늘 나에게 사탕 한알이 있다면 정말 심중하게 누구를 줄가 생각해보겠다. 왜 나에게 주겠다고 해놓고는 남에게 주는가고 물어보고도 싶지 않다.

우리집 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저것들은 사탕 한알을 놓고 아웅다웅 한다고 남들이 웃을가 두렵다.

그 놈이 나를 주지 않으면 나에게는 다른 동네에 가서 얻어 먹을 재주는 없을가?

조글로/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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