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죽은 동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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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은 동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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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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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2003-12-20

금남 최부(錦南 崔溥·1454∼1504)의 <표해록(漂海錄)>에는 중국 요동 땅에서 만난 계면(戒勉)이라는 스님의 얘기가 있다(9월10일자 ‘떼지어 나가는 사람들’ 제하의 본란 참조).요동성(遼東城) 서쪽 요양(遼陽)역에서 만난 이 스님은 도망해 온 조선사람의 손자로 3대째 살고 있다고 했다. 계면스님은 말했다고 한다.
“이 지방은 옛날 우리 고구려의 도읍지로 1천년 동안 고구려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고구려의 풍속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 고려사(高麗祠)라는 사당을 지어 시조를 받들어 공경하고 제사를 지내 근본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최부가 계면스님을 만난 것은 성종(成宗) 9년인 1488년 5월24일(음력)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15년 전만 해도 요동 땅에는 고구려 시조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부 자신 그의 일기에 쓰기를 “요동은 바로 고구려의 옛 도읍지”라고 했다. 요동성 서쪽에는 “고려시(高麗市)까지 이르는 사이에 인구와 주택의 번성함이 한창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요동성에서 “고려동(高麗洞)에 들렀다”고 했다. “해주, 요동 등에서는 반은 중국사람이요, 반은 우리나라 사람이어서 차림새며, 말(언어)이나, 여자들의 패물도 우리나라와 같았다”고 했다. 요동 땅에는 5백여년 전까지 고려시, 고려동이라는 행정구가 있었고, 아마도 동명왕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일관되게 ‘고구려’라고 했지만, 중국의 문헌에는 고구려와 함께 ‘고려’라고도 했다.


일본은 왜곡, 중국은 약탈


그 고구려를 “중국 동북지방의 한 지방정권”이라 해서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우리를 격분케 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 돈으로 3조원 규모인 2백억 위안을 들여 압록강 북쪽 집안(集安)일대의 ‘고구려유적 정비 5개년 계획’을 시작한 지난해 2월만 해도 우리는 중국의 ‘역사약탈’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른바 ‘동북공정(工程)’이라는 이 고구려유적 정비사업에 이어 유네스코가 지난 7월 북한 고구려 벽화고분의 세계문화유산등록을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중국의 역사약탈 계획을 깨닫게 됐다. 중국이 집안일대 고구려유적을 정비하고, 고구려고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것을 추진하고 있음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9일 17개 역사학 관련 학회들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 학술회의’를 열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 25명이 ‘중국의 역사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을 내놨다(12일).지금 우리는 남에서 일본의 역사왜곡과 북에서 중국의 역사약탈위협의 협공(挾攻)을 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고대사와 일제강점기 왜곡을 문제삼아왔지만, 중국의 역사약탈시도는 그들의 오랜 패권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중국 한족(漢族)의 패권주의와 싸운 것은 백제와 당나라의 4년전쟁(660∼663),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에 이른 보장왕 4년(668) 당나라 침공 군과의 전쟁이 마지막이었다.


우리사회의 비리와 비정함


당나라 침공군은 이 두 전쟁 모두 신라가 식량을 보급해 주는 병참기지역할을 하지 않았던들 패퇴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300여 년의 역사가 흐른 지금 우리는 중국의 패권주의가 또 다시 고구려를 넘보는 현실을 눈앞에 보고 있다. 13억 인구를 거느린 거인 중국의 오만한 패권주의에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준하는 대응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하지만 밖으로부터의 약탈에 대응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될 뼈아픈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유난히 춥던 지난 9일 새벽 노숙생활을 하며 막노동을 하던 중국동포가 서울 한복판 길 위에서 동사(凍死)한 것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처자식을 두고, 집을 팔아 3년 전 밀입국한 44세의 동포 김원섭씨는 그동안 오륙천 만원의 노임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밤 그는 파출소에서 불과 20여 미터 떨어진 종로구 혜화동 길가에서 휴대전화로 13차례나 112와 119에 구조요청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날 아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얼어죽은 한 중국동포의 비극에는 우리 사회의 비리와 비정(非情)함이 농축돼 있다. “양 아흔아홉 마리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가 더 소중하다”고 했다.(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 모국에 돌아온 동포도 보살피지 못하면서 어떻게 중국의 역사약탈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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