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 취급에는 領土本位과 民族本位의 원칙이 있다. 영토본위는 국사를 해당 국가 현존 영토 안에 국한시킨다. 민족본위는 국사를 해당 국가 민족의 활동범위까지―그 범위가 현존 영토를 벗어나도 개의치 않고―확장한다.
영토본위에 따르면 발해는 당연 중국사이고 민족본위에 따르면―발해가 정말 고구려유민이 세운 나라라면―발해는 조선사(본문에서 편리상 조선반도 전체에 ‘조선’이라는 칭호를 쓴다)일 수도 있겠다.
만약 발해를 조선사에 넣을 수 있다면 아래와 같은 결론이 뒤따른다.
칭기스칸이 거느리는 몽골인은 極盛期에 元나라,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헝가리 등 여러 나라를 세웠다. 그러면 元 등 여러 나라를 몽골사에 넣을 수 있다.
1∼3세기 때 조선반도 동남에 위치한 辰韓은 진시황의 학정을 피해 건너간 중국 피난민이 세운 나라이다. 그러면 진한을 중국사로 취급할 수 있다.
商나라는 동이민족이 세운 나라이며, 그 동이민족은 조선민족이 주축일 가능성이 많다(필자는 언어학으로부터 이런 근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 상나라를 조선사에 넣을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은 고대 동북아시아의 이민일 가능성이 많다. 만약 이것이 증명되면 인디언의 아메리카대륙을 중국, 조선 또는 일본의 국사에 넣을 수 있다.
태국은 중국 雲南일대의 태족이 약 700년 전에 이민 가서 세운 나라이다. 그러면 태국을 중국사에 넣을 수 있거나 반대로 중국운남을 태국사에 넣을 수 있다.
백제가 망한 후 많은 백제유민이 일본으로 피난 갔으며 지금 일본(혹은 일본의 일부)은 백제의 피난민이 세운 나라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일본(혹은 일본의 일부분)을 조선사에 넣을 수 있다.
미국은 서유럽 이민이 세운 나라이며 영국인, 프랑스인이 주축이다. 그러면 미국을 영국이나 프랑스의 국사에 넣을 수 있다….
상기는 모두 민족본위가 초래하는 결론이다. 물론 황당하기 그지없다. 민족본위를 실천에 옮기면 더 큰 혼란이 빚어진다.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인 발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충돌은 바로 민족본위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사학계는 합리한 국토본위를 따르며 민족본위를 외면한다. 국토본위를 원칙으로 하면 점점 확장된 나라는 이득을 보고 점점 축소된 나라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별 도리가 없다(발해를 국사가 아닌 민족사로 취급할 수는 있다).
여기까지 서술하면 고구려 문제도 감이 잡히게 된다. 고구려는 절반은 현존 조선반도에 속하고 절반은 현존 중국영토에 속해있으므로 영토본위로 따지면 조선사에도 속하고 중국사에도 속한다(필자는 이를 ‘兩屬論’이라 칭하고 싶다). 즉 고구려를 중국사에 넣는데는 전혀 근거 없거나 100%의 무리는 아니다.
영토본위는 기본원칙이지 유일표준은 아니다. a)고구려가 중국사로서는 고작해야 발가락의 비중을 차지할 뿐이고 조선사로서는 심장의 역할을 하였고, b)고구려의 문화를 조선이 이어받았으면 받았지 중국이 이어받은 것은 아니며, c)지금 전 세계가 조선을 고려←고구려(korea)라 부른다 (고구려와 고려는 같은 명사, 중국 옛 문헌에 고구려를 高句麗, 高麗로 혼동해 썼음).
이렇게 볼 때 고구려를 조선사에 넣는 것이 더 합리하다. 중국사에만 넣을 수는 없으며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고 하는 것은 더욱 무리다. 그러므로 중국 사학계의 태두 郭沫若, 范文瀾, 翦伯贊 및 절대다수의 학자들은 고구려를 조선사로 여겼다. 적어도 1990년대 상반기까지는 이러했다. 단 지금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있으므로 緘口(함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고구려를 중국사에 넣어도 다소 근거가 있지만 넣지 않으려 하는 중국 사학자들이 발해를 조선사에 넣는 것이 완전한 무리지만 넣으려 애쓰는 한국 사학자들보다 더 양심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영토본위는 세계사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수긍하는 통념이다. 2004년 유네스코에서는 조선이 신청한 고구려벽화와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벽화를 모두 인류문화재로 인정하였다. 이는 유네스코가 고구려를 양속론으로 취급함을 의미한다.
그때 중국과 조선은 모두 유네스코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고구려는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이나, 고구려는 무작정 조선사라고 주장하는 한국이나 다 눈감고 ‘아웅!’하는 격에 불과하다.
지금 중국에서는 고구려문제를 신중히 대하며 재조명하려는 기미가 보이고 있다. 고구려를 논한 모 책자를 발행금지시켰고, 중소학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를 언급하지 않으며, 최근 방송한 <貞觀長歌>라는 역사대하 드라마에 당태종의 고구려 침범을 언급하지 않는 등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한국인들은 만약 민족본위가 옳다고 여겨지면 먼저 유네스코를 욕하거나 영토본위를 주장하는 전 세계 대다수의 사학자들과 한판 겨루어 이겨야 할 것이고, 만약 영토본위가 옳다고 생각되면 우선 발해를 포기하고 시비를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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