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국보전, 중국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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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국보전, 중국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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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산보] 漢의 비단옷에서 唐의 벽화까지
  • 가운데 도자기 인형을 주목하라. 이마에 올린 막대 위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 멋진 서커스. 북위(北魏·386~534)시대 '채색한 서커스 인물상'이다. 높이는 20~26cm.
  • 무릎 연골을 생각해서 가장 편한 신발을 골라서 신을 것, 이 많은 유물을 언제 다 보나 조바심을 내지 말 것, 섹션 별로 5분 정도는 의자에 앉아서 쉬어 줄 것, 유물을 관람하는 일인 동시에 꽤나 긴 거리를 오가는 산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대강이라도 중국사 연대표를 머리 속에 담아 놓을 것 등등.

    중국의 국보급 유물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2005년 8월 동경의 모리타워에서 진나라 중심의 중국 유물전을 관람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유물마다 멈춰 서서 감탄을 연발하며 영어 표지판이라도 읽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전시장을 빠져나올 즈음에는 얼마나 지쳤던지 단지 무겁다는 이유로 전시 도록을 외면할 정도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그와 같은 낭패를 보지 않을 요량이었다.

    중국국보전에서는 한(漢), 위진남북조와 5호16국, 당(唐), 5대 10국으로 이어지는 1200년의 역사를 325점의 국보급 유물을 통해서 선보이고 있다. 연도로 보자면 기원전 200년경부터 기원후 1000년경까지이며,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에 이르는 기간이다. 중국사 연대기가 머리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빨리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제 1관은 한의 문화유적들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소박한 듯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화려한 듯하지만 실용적이다. 유물들 모두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눈에 띄는 2점의 유물이 있었다. 하나는 서안에서 발견된 술 단지인데, 발견 당시에 담겨 있던 술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된 술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았다. 다른 하나는 황소모양의 등(燈)이다. 황소 위에 등을 올려놓았는데, 등에서 나온 관이 황소의 머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 관을 통해서 불을 켤 때 생기는 그을음이 소의 배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고 한다. 대단히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균형과 무늬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위진남북조와 5호 16국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2관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 시기는 처음으로 중국이 이민족에 의해 지배된 시대이다. 화려한 말 안장 장식, 잘 다듬어진 양 모양의 조각품, 채색을 한 낙타 도용(陶俑 : 도자기 인형)에서 유목문화의 분위기가 한껏 배어난다. 기마민족의 유목문화와 결합되면서 한과는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이 형성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서커스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채색 인물상과, 콧대만 봐도 서역인임을 알 수 있는 도자기 인형들이 조명 아래에서 웃고 있다.

    실크로드를 주제로 하는 3관을 접어들자 유리 공예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고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서양풍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설명에 의하면 로만 글라스 양식의 유리라고 한다. 페르시아의 은잔, 접시, 술병 등이 낙타의 등을 타고 건너왔을 것이고, 중국의 비단은 사막과 오아시스를 건너 서역에 이르렀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분위기 탓일까. 어쩌다 보니 계속해서 같이 움직이고 있는 중국인 부부와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본다. 랴오닝(遼寧)성 출신으로 화학을 전공하는데 한국에서 포스트닥터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중국어가 전시장의 분위기를 더욱 중국스럽게 만들어준다.

    당의 유물을 중심으로 꾸며진 4관과 5관에 접어드니 문화적 분위기가 또 한번 바뀐다. 불상의 조각은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고, 당삼채 여인상에서는 여유로우면서도 정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또한 이전 시대와는 달리 세트를 구성하고 있거나 스토리를 나타내는 유물들이 눈에 띈다. 말을 묘사해도 6가지의 다른 동작에 주목하여 조형물로 만들었고,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28명의 악사가 부조(浮彫)를 통해 제시되며, 무덤의 덧널이나 벽화에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표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위진남북조와 5호 16국 시대의 유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온갖 동물들을 조합해서 벽사(?邪: 사악한 기운을 쫓음)의 의미를 부여한 유물들에는 그시대만의 상상력과 무의식이 뛰어놀고 있었다. 또한 동서교류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에 내재된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서역과의 광범한 교역를 통해서 그리고 북방민족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중국의 문화가 더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는 사실의 확인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한 것이었다. 문화는 동질적인 것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과의 끊임없는 교류와 대화에서 만들어진다.

    모든 유물들이 각자의 예술적 개성을 한껏 뽐내고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동서교류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구성된 전시회이다. 욕심 같아서는 전시된 유물이 지금의 두 배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5관부터 거꾸로 다시 한번 보면 되지 않겠는가. 즐거운 시간여행이 될 것 같다. 잠시 한숨 돌리고, 당의 벽화에서 시작해서 한의 비단옷을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일보/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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