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내가 본 평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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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내가 본 평양 (1)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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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말에 나는 조선 모 회사의 초청을 받고 심천․홍콩무역 대표단의 단장 신분으로 조선(북한)을 방문하였다.


두만강을 건너니 초청사에서 파견한 차가 앞바퀴가 두만강 물에 젖도록 가까운 곳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른 후 모든 통관수속 등은 안내원이 다 알아 처리하였다.

무산에서 출발한 후 청진외국인 호텔에서 하루 밤 묵었다.


저녁 식사 때 푸짐한 식탁이 마련되었는데 그 중 매인당 엄지손가락만큼 굵고 길이가 20센치 이상 되는 붉은색의 게다리 비슷한 것이 2개씩 올랐는데 모두 서로들 마주 보면서 “이것이 게다리 맞냐?”하고 눈치 보기를 하였다. 


진짜 게 다리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게다리는 처음 구경하였고 맛도 참 신선하고 좋았다.

이튿날, 계속 평양으로 달렸다. 평양까지 가는데 몇 군데의 초소를 걸쳤고 매 초소마다 깔끔하게 검문을 하였다.


평양 도착하여 고려호텔에 묵었다. 무역 대표단이기에 우리는 주식이 모두 무료이었지만 호텔 가격표를 보니 매인당 매일 200딸러였다.


평양은 진짜 아름다웠다. 전체 평양시는 마치 공원처럼 녹화가 잘 되었고  공기도 맑고 깨끗한 정도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사람들마다 순박한 마음을 지녔고 우리를 아주 깍듯이 모셨다.

박물관, 주체탑, 공원, 기념비, 그 외에도 여러 곳에 가 보았는데 그 어디나 할 것 없이 그 추운 겨울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스커트를 받쳐 입은 직장의 20여명 처녀들이 줄을 서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들의 사업 열정, 민족적인 예절과 습관, 손님에 대한 배려는 나로서는 평생 처음 체험하는 그런 것 들이었다. 


평양시의 공공질서는 너무도 훌륭하였다.

고려호텔 앞에 창광식당이 있는데 이 집의 회 냉면은 너무 맛이 좋았다. 나는 종종 점심을 거기로 가서 먹었는데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창광식당이다. 그런데 인행도는 거기에서 한참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매번 한 바퀴 돌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는 초청사 직원보고 길에 차도 얼마 없는데 여기로 살짝 건너가면 안 될까요? 라고 우스개로 말을 건넸다. 그도 웃으면서 “평양시 기록을 남길려구요.…라고 하였다 마침 그 때 약 50미터 되는 곳에서 어느 두 사람이 인행도가 아닌 곳에로 큰길을 건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저 사람들도 건너잖습니까?” 라고 하자 그는 “아마 평양사람이 아닐 겁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눈빛을 보니 아주 자신만만해 하는 기색이었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를 이끌고 금방 길 건너온 두 사람을 향해 쫓아갔다. 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가 외국에서 유람 온 사람들이었다.


평양시의 이름 있는 건물은 대개가 대리석 또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대학습당, 주체탑등도 물론이다. 주체답 위에 올라서면 전 평양시가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  온다. 주체답은 에르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주체탑 안에는 수많은 사무실들이 있다. 나는 주체탑 안에 있는 사무실에서 초청사의 총국장님과 화강석합자합영에 관한 계약서를 체결하였다.


초청사의 총국장님은 북한에서 급이 아주 당당한 사람이다.

계약 등 절차를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개선문을 지나게 되었는데 나는 차를 세우고 구경하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는 약 20여 분간 머물다가 다시 총국장님과 한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교통경찰에게 걸렸다. 차를 그 곳에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총국장님의 비서가 차에서 내려 “이 차에 외국대표단 단장이 앉아있고 또 아주 높은 사람도 있는데…이대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을 넣었으나 교통결찰은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아주 난감해 했다.

나의 옆에 앉은 총국장님이 창문을 열고 “빨리 벌금을 하라”고 점잖게 말하자 비서는 금방 벌금수속을 했다.


내가 옆에서 “국장님, 저 경찰이 국장님인걸 아시면 어쩔까요?”

하고 묻자 그는 웃기만 하였다. 비서가 옆에서

“깜짝 놀라지요”라고 대답했다.

실제 총국장님이 관할하는 범위는 전 북한의 절반도 넘는 권위자이시다.


대학습당의 지배인, 주체탑의 지배인들을 애기 다루듯이 하는 걸 직접 목격한 나는 그 말을 그 대로 받아 들였다.


북한에서 지방사람들이 평양 들어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리원에 아주 가까운 친척이 있다. 평양 도착하는 날부터 나는 그 친척을 평양에 불러들여 함께 며칠 일을 보낼 것을 요구했는데 10여일이 되도록 종종 무소식이었다.


여러 번 졸랐으나 내일, 내일 하면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어느 하루 평양주변 어느 공장에 참관 갔다가 호텔에 도착했으나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이 차로 직접 사리원에 가자고 강짜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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