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분대장을 넘어선 보편적 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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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분대장을 넘어선 보편적 한 인간
  • 전유재
  • 승인 2007.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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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본위주의의 찬가 –

1.   역사는 언제나 뭇사람들의 이야기

 

항일독립군 최후의 분대장 김翁은 자서전의 후기에서 고백하듯이 일갈한다. “우리(조선의용군)가 지난날 일본군에 대항해 싸울 때 조선반도는 하나였다. 38선도 군사분계선도 다 없는 완정(完整)한 통일체였다. 그리고 우리도 조선 반도의 정정(政情)에 대해서는 당당한 발언권을 갖고 있다. 남에 대해서도 북에 대해서도 다 그렇다.(408면)”

 

우리, 일본군, 조선반도, 38선, 통일체, 政情, 발언권, 남과 북...

▲ 김학철 옹

 

읊조리듯 읽어가는 미학적 느낌구조로서 어마어마한 사태를 모조리 내포한 위의 단어들을 독자의 몸속에다 체화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낱말들이 우리의 실존을 규정시킨 그 무엇들로 너무나 농밀하게 압축된 정서 이상의 삶 자체를 강력하게 담고 있다고 할 때, 아주 가끔 가다 특별하게 겸허해지는 것은 텍스트, 그리고 그 텍스트를 역사라는 큰 줄기에서 삶으로 써내려간 김학철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후기'는 이렇게까지 거창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부터 나열되지는 않는다. 심히 가냘프고 그러다나니 오히려 소녀 아니면 성자의 어여쁜 사랑고백 같은 심경으로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나는 중학생 시절에 난생처음 공기총으로 참새 한 마리를 쏴 떨궜는데 그 할딱할딱하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나머지 소나무 밑에다 구덩이를 파고 내 손에 죽은 그 참새를 고이 묻어준 다음 공기총으로 조총(弔銃)을 쏘고 ‘영원히 다시 이런 살생을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409면)”

 

‘죽는 모습’과 ‘양심의 가책’, ‘내 손에 죽은 그 참새’와 ‘고이 묻어준’ 행위, 그리고 “영원히 다시 이런 살생을 않겠다”는 바로 그 話頭와 문제의식. 이 일련의 제식으로부터 생겨난 끝없는 고뇌와 부대낌, 양보할 수 없는 행동의 양심으로 김翁의 삶은 비로소 시작되었고 또 이런 사소하다 못해 터무니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로 치부되어버린 극한상황을 자서전은 다른 수많은 이야기로서 구체적으로 대신하여 굵직하게 묶어 이야기한다.

 

무엇이 극한상황이고 무엇이 또한 제식이란 말인가? 죽음과 삶의 자연스러운 연속체를 인위적으로 강제한 총을 쏘는 행위가 극한상황이다. 그리고 고이 묻어야만 할 충격을 유발한, 엄습하는 양심가책이 우선은 제식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제식은 끊임없이 되풀이된 삶의, 본질적으로는 확실하게 일치한 내용들로 때로는 웃음 속에서, 때로는 울음 속에서, 때로는 분노와 규탄 속에서, 때로는 절규와 견지 속에서 또 다시 끝없이 체현될 뿐이다.

 

그래서 소설은 추상적이지 않다. 작가에게 추상은 없었다. 그는 그 추상을 사실적 체험이라는 삶의 자세에 종속된 의미체로만 정신적으로 두뇌 속에 내장시켜 파악할 뿐이다. 그리고 마저 말한다. 이것은 단지 몸속에 체화된 역사의 진실일 뿐이라고. 굳이 자서전이라는 문학적 양식을 빌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냉철하게 관찰하는 제3자의 보다 “객관적인” 눈길로서 이 소설을 대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 책이 강요한다는 데서 오히려 후련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만신창이 되도록 찔러서 특이하게 날카롭고 부드러운 마사지를 차라리 안겨준다는 것, 그리고 마음 놓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를 결정하는데 쾌적한 심적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에 읽는자는 안도한다. 그는 사실을 말할 뿐이지 어떠한 의미에서는 결코 사실주의, 즉 리얼리즘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김翁은 “나”를 쓰지 않았다. 그가 “나”를 쓴다고 아무리 강조하여도, 그는 “우리”를 썼을 따름이다. 그만큼 그는 그의 체험 속에서 “우리”일 수 밖에 없는 경험의 축적을 조선반도와 상해, 광주, 태항산, 일본, 연변 등 지리적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으로 지속시킨다. 그래서 김翁이 언급한 “우리”는 “나”의 일부분이고, “나”는 “우리”의 일부분이 된다. 그가 지칭한 “우리”는 꼭 조선독립군 투사들에 국한되어야만 할 지엽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그의 전우들, 친구들, 친족들의 이야기가 많은 지면을 채우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라는, 거의 신격화되어 인간의 모습을 거세당했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진솔한 인간학적 해부와 가치판단도 역시 나온다. 인간이라는 보편자, 무력적 살육까지 마다하지 못한 인간과 인간의 잔혹한 전쟁도 역시 사람이라는 보편자가 발생시킨 사태이다. 그 사태의 냉혹함을 김翁은 오히려 담담하게 쓰고 있다. 사랑하기에도 역부족이었던 순정소년 김翁의 “사랑고백”을 파멸시킨,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말살시킨 자들의 이야기가 “우리”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면서 강한 긴장과 갈등을 부추기는 가운데 그는 인생을 그렇게 외다리로 살았다. 그럼 너무나 진실하고도 추상적인 인간을 우리라고 통칭하여, 보다 이해하기 쉬운 “국제주의”라는 이념적 성향 속에다 함몰시키는 설교적 자세를 김翁은 과연 했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의 자서전이 김翁을 그렇게 “우리”를 허락하지 못하는 소이연을 결국 읽는자로서의 “우리”도 같이 풀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또한 누구인가? 그 우리들이 만들어버린 역사란 것 또한 무엇인가? 그 역사에 내재한 진실이라는 것을 한 인간의 입장에서 무엇으로 진솔하게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2.   민족과 국가, 계급 그리고 혁명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1916년. 나라가 망하고도 여섯해가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태어나면서부터 망국노의 멍에를 메고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부자유도 느끼지를 못하며 10살까지 태평으로 자랐다(13면).

 

화자가 청자에게 이런 스토리를 전달한 시점은 1995년. 그러니까 1926년까지 화자는 “태평으로 자랐다.” 또 다시 말한다면, 1926년부터는,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어느 한 시점을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그런 시점이기는 하지만. 대략 그 무렵부터 김翁이 다른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된다.

 

김학철이라는 인간의 체험이 야기한 제반 사건은 결국 그의 두뇌 속에서 벌어진 사태로서 “다른 생각”들로 유의미하게 되는 과정적인 측면을 반드시 포함하게 된다. “반일감정과 친일감정이 아침저녁으로 갈마들고 섞바뀌는 기이한 시절(14면)”의 인상론적 느낌이 있는가하면, “견학을 마치고 귀교한 뒤 교실에서 처음으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이야기를 들은(22면)” 감동의 숭엄한 시간도 있다. 파업하는 조선노동자들을 마주한 일본선원들이 일제히 뱃고동을 울릴 때 “그러나 그 순간, - 하지만 일본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편을?......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왜 놈들은 악당이어야 하잖는가......”는 딜레마에 빠지기까지 그는 민족이니, 국가니, 계급이니, 혁명이니 하는 보다 강력한 의미체들의 원형을 실체로서가 아니라 경험으로, 추상이 아니라 느낌으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존으로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러한 단어들이 있기 전에 느낄만한 모든 것들을 의식구조 속에 내재화할 기반을 미리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아니, 그러한 느낌이 있는 그 자체의 사태로서 그를 엄습하였다는 쪽이 차라리 더 진실에 가깝겠다.

 

조선민주주의혁명당의 일부 아나키스트 행위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개인주의에 대한 배격,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김일성주의에 대한 배격,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부정, “의사와 간수가 의아스레 지켜보는 가운데 ‘죄수 간호원’ 해군 소위와 굳은 악수로 석별의 정을 나누(297면)”는, 일본우인과의 특별한 사이에 대한 긍정, 적군이 가설한 전화선을 신사군이 오히려 보호함으로써 인근백성의 생명보장을 도모하는 행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긍정(232면), “새끼로 매들고 온 내 다리는 완전히 백골화를 하기는 했으나 무릎마디며 발가락뼈며가 다 온전한데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것은 아마 묻을 때 너무 얕게 묻어서 빗물이 새어들었던 모양이다. 50년 전에 동네 개들이 들어와 쟁탈전을 벌였던 내 그 다리뼈는 지금도 이사하야 형무소 무연묘지에 그대로 묻혀 있을 것이다(291면)”는 태연한 술회는 작가의 냉철한 삶속에서 어우러진 삽화들이었다.

 

긍정과 부정의 맥락이 커다란 갈등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심미적 범주와는 달리, 그는 오히려 담백한 사실로서 많은 것을 담아낸다. 그 어떠한 준거로 끊임없이 향하는 척도라는 것이 인생진행의 일관성 속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방식으로 그는 삶을 말할 뿐이다. 아나키스트는 동족의 범주,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시킨 인물들은 민족과 이데올로기의 동시 범주, 중국 신사군은 혁명적 계급의 범주, 일본우인은 계층의 범주, 떨어진 다리는 실존의 범주에서 각각 해석된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혁명적 삶이라는 자체평가 속에서 더 크게 작가 스스로의 해석으로 귀결된다.

 

수많은 추상의 이미지에 대한 현실적 해석이 김翁의 뇌리 속에서는 특정 단어로 묶여질 그러한 의미체계임이 분명한가?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 자처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그가 표방한 혁명가를 다른 한 의미맥락으로 읽는자에게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구태여 “소외된 자”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전혀 원용하지 않으면서도 그는 이 “소외”라는 언설에 담긴 부정적 색채를 완벽하게 제거한다. 소외된 자는 소외됨을 자체 내에서 느끼고자 한 충동부터 보여주는 그러한 의식을 선행시키는 우발성을 어디까지나 갖고 있으려는 잠재의식이 있다. 김翁의 사고출발 역시 과연 그러한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혁명가의 푸짐한 대접을 아무리 받아도 지나치지 않을 자격에서 원활한 소통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면서 위대한 혁명영수들에 대한 꿈은 파멸되지 말아야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이것이 아니라면 신사군 전우가 백성에 대한 진실한 애정이나 일본우인과의 솔직한 교감은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떨어진 외짝다리를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인간적 슬픔을 초월한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는 까닭은 인간적 동정을 원치 않는다는 자존심의 마지막 노력이라고만 과연 평가될 것인가?

 

김翁의 민족은 그래서 아무래도 남과 북에 살고 있는, 그리고 스스로 몸담고 있던 해외를 전부 포괄적으로 섭렵한다. 그 섭렵이 특정 협소 계층으로 표상되는 의미 범주 내에 소속되기를 철저히 거부하며, 민족 내부의 위계질서적 집단에 대한 의미 자체를 완전히 경멸한다. 김翁의 국가는 인위적으로 땅에 그어진 행정적 영역을 확실하게 극복한다. 현재의 시각에서 바라본 원산이라는 北도, 그리고 南의 서울도, 일본의 감옥도, 후기 생활의 감옥체험이 연속된 연변도, 그리고 북경도 그에게는 살아가는 인간이 엄연히 존재한,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결코 합당할 수 없는 인간무리의 공간태일뿐이다.

 

김翁의 여러 곳에서 여러 인간을 보았다는 그 한 점만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런 극복과 초월의 도도한 경지에서는 김翁과 스탈린이나 모택동이나 김일성, 그리고 박정희는 다 같은 인간학의 범주에서 처리될 뿐이다. 김翁의 계급은 “더 먹고 덜 먹는” 구분에 의해 갈라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갈라놓을 수 없다는 강력한 함성이 그에게 있을 뿐이다. 계급에 대한 재해석이 김翁 스스로 하지 않는 전제라고 할지라도,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개인적 인간과 그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의 수많은 크고 작은 집단-무리들에 대한 기회 균등 보장을 요구하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계급과 계급성은 이러한 기회 균등과 인간 존엄에 귀속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김翁의 혁명은 “목숨을 잘라내는” 행위의 반대편에 있다. “이러한 내가 자란 뒤에 산 사람을 겨냥하고 총을 쏘기에 이르렀으니-그도 기를 써가며 쏘기에 이르렀으니-내 일생은 참으로 들쭉날쭉이랄밖에 없다(408).”는 술회가 김翁을 패러독스로 내모는 곤고함을 해소하고자 유유자적의 은자로 생을 마감한 그를 과연 역사가 선택했다면 또한 정확한가? 따라서 보는 자가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곤혹이 확실하게 “지금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의문의 일부는 여전히 남는다. 그 역사에 내재한 진실이라는 것을 한 인간의 입장에서 무엇으로 진솔하게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3.   생명본위주의에서 비롯된 출발

 

김翁은 권위를 주장하지만 권위주의는 반대한다. 그 권위는 다른 말로 하면 품위라고 할 수 있다. 그 권위주의는 다른 말로는 모든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외면 못할 양심이 그로 하여금 “내가 ‘20세기의 신화’에서 ‘붉디붉은 태양’을 만고의 죄인으로 점찍은 까닭이, 그리고 ‘치욕의 기둥’에다 그를 못박아놓고 사정없이 매질을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401면).”고 설파하도록 강하게 행동하게 하는가하면, 인민재판을 받을 때, “화가 치민 경관이 달려들어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 뒤통수를 내리눌렀다. 물리적 방법으로 숙이게 하려는 것이다. 천삼백쌍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서 진짜 활극이 벌어졌다. 관람료를 받지 못하는 게 원통할 지경이었다. 내가 끝끝내 버티니까 친애하는 ‘카우보이식’은 하릴없이 벗겨들었던 레닌모를 도로 내 머리에 콱 씌워주었다. ...나는... 다시 방정히 썼다(401면)”고 늠름하게 대처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질타이든, 자신에 대한 자중이든 맥락을 정확히 일치한다. 특정된 타인이 권위의 신비적 색채와 강한 장악력을 포함한 인간 외적 모든 부분에 있어서의 총체적 힘(Power) 자체를 외면에 부착시키는 경우라도 에누리 없이 김翁의 비판대상이 된다. 오히려 그러한 막강한 힘을 소유한 자로서의 권위 자체가 가져올 파급적인 부작용에 의해서라도 그 허구성에 대한 수긍이나 타협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그러한 반면에 스스로에게 되돌아와서 존엄은 역시 강한 독자성과 위엄을 보존한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간만이 가능한 규범의 근원적 사태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논의는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간다. “할딱할딱하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것도 참새에게. 그리고 그 양심의 가책은 김翁의 일생을 좌우하는 강력한 힘과 신조가 되었다. 생명본위주의, 이 낱말에 대한 해석이 꼭 하이데거의 유기체적 구상이나 화이트헤드의 존재와 생성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푸코의 말을 빌려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이나 일반 인상론적 사유와 단절된, 쿤의 말대로 불가공약적(不可共約的) 행위를 약속한 전제로 작용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대로 가장 진실하게 김翁의 신조 그 자체로 된다. “금강경”의 원뜻이 “벼락경”이 듯이, 참새를 인위적으로 살상한 그의 행위에 벼락이 쳤던 깊은 인간적 체험이 “나”라는 我執을 끊고 자율적 생명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나”와 “너”, 더 나아가 “나”와 “우리” 사이의 중간 고리를 끊어버리는 사건이 아니라, “나” 자신이 생명을 느끼고 양심하는 인간의 내부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족적, 민족적, 국가적, 계급적, 인간적 논의는 모두 “참새 사살 사건”의 후노트에 지나지 않는다. 김翁의 자서전은 바로 이 사건의 주석이었던 것이다. 역사에 내재한 진실이 한 개인으로 느끼는 진실과 어떻게 합치되는가에 대한 가장 큰 딜레마도 여기에서 출발된 논의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기호학에 의미를 부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 기호는 ‘참새 사살사건’/‘생명본위주의’의 끊임없는 역동성과 갈등 및 처절한 삶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김翁의 역정은 역시 되돌아온다. “‘일본사람들이 선생님은 제게다 맡겨만 준다면 이 상처를 꼭 치료해드릴 수 있는데... ... 정말 속이 탑니다. 제 형이 외과의사거든요.’ 나는 일변 의외롭기도 하고 일변 감동이 되기도 했다. -민족의 핏줄은 이어져 있구나.(236)” 한 보편적 인간이 정처 없이 걸어간 민족독립의 가치와 의미가 다시 민족의 일원에게서 확인되는 순간으로 김翁은 다시 민족을 한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생명본위 사유가 부재하다면, 과연 그런 민족적 동질감에 목이 메이겠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후와 종속, 주종이 명확한 의미체계 내에서의 진한 감동과 의욕일 뿐이다.

 

김翁은 민족주의자가 맞다. 프롤레타리아도 맞다. 독립운동가도 맞다. 국제주의자도 맞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그러한 주의, 이데올로기는 결국 그의 인간학, 생명본위주의로 통합된다. 그는 생명본위주의의 보편적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4.   마무리

 

나이다와 타버의 “번역의 이론과 실재” 중 일부 지침을 빌려 문장을 마무리한다. 그들에 따르면 글은 정보제공적 기능(외연에 관계 됨), 정서표현적 기능(내포에 관계됨), 행동지침적(명력적) 기능의 요인이 중요하다. 독립군 최후의 분대장 김翁의 정보제공적 측면은 자서전에 일목요연하게 나타났으므로 간략하게 설명한다. 말하자면 20세기 조선반도와 조선인 모두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한 사실적인 압축체현이다. 그래서 김翁 한 개인은 개인으로 남지 않고 역사에 그대로 남는다. 정서표현적 측면에서의 절절한 호소는 생명본위주의라는 키워드로 정리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개인, 가족, 민족, 계급, 혁명, 되돌아 와서 보편적 인간이라는 의미로 재정리한다.

 

그리고 행동지침적 측면이 있다. 그 역사에 내재한 진실이라는 것을 한 인간의 입장에서 무엇으로 진솔하게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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