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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교내 합창대회에 참가하려고 어느 학급에서 연습을 하였다.
지휘를 맡은 반장이 몇 차례 지도를 하였으나, 음정도 박자도 자꾸 틀리고 화음이 잘 되지 않았다.
연습하던 학생들도 안 되겠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때 학급 담임선생이 들어오며 이렇게 말했다.
“야, 너희들 노래 참 잘 부르는구나. 1등은 따 놓은 당상이― 다.”
그러면서 선생은 피아노 앞으로 가서 반주를 해주었다.
학생들은 담임선생의 뜻밖의 행동에 잠시 의아해하다가, 반주에 맞춰 합창을 하였다.
학생들은 기분이 좋아서 큰 목소리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반장도 신이 나서 멋지게 지휘를 하였다.
그 뒤 그들은 몇 일간의 연습에 자진해서 모이고 모두들 열심히 연습하여 1등을 하였다.
무대인사 때 달려 나온 담임선생을 둘러싸고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
<신길우의 수필 46>
백화점의 음악방송
백화점에 들어서면 음악이 들려온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도 음악은 들린다.
대개 오전이면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후에는 경쾌한 음악으로 바뀐다. 오전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매매도 적어서 자연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 여유를 가지고 매장을 둘러보게 하려는 뜻이고, 사람들이 많아지는 오후에는 템포가 빠르고 흥겨운 선율로 매장의 분위기를 활기차고 들뜨게 하여 심리적으로 구매를 충동하고 서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백화점 음악은 층별 매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보석이나 침구류 매장에는 재즈음악을 내보내고, 효도나 건강식품 매장에는 트로트 가요를 들려준다. 패스트푸드 지역에는 빠르고 강한 음악을 틀고, 대중식당도 점심식사 때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레스토랑만은 반대로 되도록 느린 음악을 깔아준다. 상품에 따라 알맞은 음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음악방송을 대상으로 한 논문을 보면, 고소득층 사람들은 클래식이나 영화음악을 좋아하고, 저소득층은 대중음악을 좋아하며, 학생과 가정주부들은 클래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매장에 주부들이 많이 몰리면 백화점에서는 귀에 익은 클래식으로 바꿔서 구매의욕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음악은 신앙과도 관련된다고 한다.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들은 비교적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고, 불교와 유교를 믿는 사람들은 정적(靜的)인 음악보다는 대중음악을 선호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음악 템포가 느리면 느릴수록 구매자들의 매장 체류 시간은 늘어나고, 음악이 빨라지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이동시간이 짧아지면서 같은 시간당 총 매출액도 높아진다고 한다. 백화점들이 주말이나 할인판매 기간, 대형행사 때 붐비게 되면 경쾌한 댄스곡을 트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홈쇼핑 방송마다 30~40대 주부들이 귀에 익은 빠르고 경쾌한 팝 음악들을 깔고 빠른 말로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시간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압구정의 한 백화점에서는 정오까지는 클래식이나 경음악을 내보내고, 12시부터는 경쾌한 팝 뮤직을 방송한다. 중장년층 고객이 많아서 오전에는 클래식이나 경음악이, 오후에는 팝 음악이 알맞다는 것이다.
어느 창고매장 특설 코너에는 소리공급업체에서 제공한 시냇물 소리, 파도소리, 다양한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등을 방송하여 손님들을 시원하게 느끼게 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음악을 이용하는 것은 대형 매장만이 아니다.
서울 중심번화가에 있는 한 대형 서점에서는 정오까지는 경쾌한 클래식을 틀어준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에는 클래식 위주로 내보내서 분위기를 고급스럽고 차분한 인상을 갖게 한다. 서점들은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가끔 음악의 제목을 문의하고 음악 복사를 요청 받기도 한다니, 서점도 역시 음악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매출을 올리고자 음악을 최대로 이용하는 상술이지만, 가끔 그런 곳을 들리는 나로서는 어떻든 기분 좋은 일이다.
음악의 힘은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초패왕 항우가 자결하고,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로 희명(希明)이 눈을 떴으며, 요정 싸이렌의 노랫소리에 오디세이 장군이 섬에 갇히기도 하였다.
태종의 5대손인 이주경은 당시 피리의 명수로 팔도에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가 황해도 지방으로 토지세[土租]를 받으러 갔다가 무리에게 잡혀 괴수 임꺽정 앞에 끌려갔다.
임꺽정은 그를 알아보고 깍듯이 모셨다. 그리고서 나서 그의 도당을 달밤에 한데 모아놓고 피리 한 곡조를 청했다. 그의 피리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한 곡조가 끝나기 전에 서로 붙들고 우는 울음마당이 돼 버렸다. 이렇게 실컷 울려준 대가로 그는 안전하게 귀환하게 되었다. 임꺽정은 피리의 감동 카타르시스로 불안이나 공포 근심 걱정, 그리고 향수를 말끔히 씻어내고 사기를 돋우었던 것이다.
6․25사변 때 미국의 희극배우 밥 호프가 위문공연에서 1개 연대를 웃기고 나면, 그 연대는 중화기중대의 전력만큼이나 증진되었다고 한다.
감동을 주면 근심 걱정 불안 공포 스트레스 등이 해소가 된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리면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나 관중이나 다 눈물을 흘리고, 장례식 발인에서 요령잡이의 가락으로 상여가 움직이면 상주나 문상객이나 다 같이 눈물을 흘린다. 음악은 감동을 쉽게 강하게 일으키는 가장 센 예술이다.
사람을 감동(感動)으로 치료한다는 감동치료라는 것이 있는데, 종교감동법과 교육감동법과 예술감동법 세 가지가 있다. 음악은 예술감동법 중에서 최고 최강의 방법이니, 그것을 영업에 이용한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더구나 음악도 듣고 그 분위기까지 즐기는 나 같은 이에게는 그것을 탓할 게 하나도 없다.
눈 오는 날이면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 의 주제가를 틀어주어 매상을 올렸다는 그 커피숍이나, 비오는 날이면 뮤지컬 주제가인 <Singing in the rain>을 방송한다는 과천 서울랜드에 가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