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마음 아프게 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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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마음 아프게 해서야
  • 심춘화
  • 승인 200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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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춘화 칼럼>

  5월 15일은 한국의 스승의 날이다. 그런데 한국의 50%가 넘는 학교가 이 날 휴교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스승의 날”은 스승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날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한심하게 전락하였을까?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한국의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을 한번 읽어봅시다.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에 소홀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 일으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신뢰로써 선생님과 학생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회복함으로서 사제의 윤리를 바로잡고 참된 학품을 일으키며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바로 인식하고 존경하는 기풍을 길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윤리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이 '스승의 날' 을 정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스승의 날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1958년 5월 8일부터 충남 강경여고 RCY(청소년 적십자)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기 시작하면서 스승의 날을 제정하는 의견이 제기된 뒤 자발적인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로 세 차례 정도 날자가 변경되어 오다가, 1965년 4월 제14차 협의회에서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 로 정하기로 다시 결의하였고 기념회수는 1964년 제1회 기념일을 그대로 계승하기로 결정하였다.


  취지로 보나, 유래로 보나,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정말 좋은 뜻에서 비롯되어 온 것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학교가 스승의 날을 피해 휴교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은 그것의 주범이 바로, “촌지”라는 놈 때문이란다. “촌지”가 뭐냐구요? 나도 얼마 전까지 몰랐다. 중국에서는 이런 말 잘 못들어 봤으니까.  이때, 가장 좋은 방법 네이버에 물어라! 치면 나온다. 아래 촌지의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자.


 촌ː지寸志 [명사]

1.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선물이란 뜻으로] ‘자기의 선물’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2. 촌심(寸心).

3. 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는 돈. 주로,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돈을 이름.

박지(薄志).



  첫 번째의 뜻은 얼마나 좋은가. 가슴을 후덥게 한다. 어느 나라든, 어느 나라 민족이든 사람들은 고마움의 마음의 표시로 선물을 한다. 일본사람들도 연말이면 평소에 잘 연락을 못하고 지내던 아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로 엽서를 보낸다. 받아보는 사람으로서는 상대방을 다시 떠올리고 나의 네트워크 속에 그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는 참으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국은 이젠 편지 쓰기는 물론, 엽서장 찾아보기도 어렵다. 편한 이메일이나 문자에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친필 편지나 엽서는 이제 귀중한 보물이 되어버렸으니 이때 희소가치가 대단한 편지나 엽서를 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작은 선물에 고마움의 마음을 몇 자 적어 예쁘게 손수 포장까지 해서 드린다면 안 기뻐할 이 있을까. 편지나 엽서 이외에도 넥타이, 손수건, 책 등 적당한 선물들이 얼마든지 있다. 한 한국의 엄마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아들의 선생님을 찾아가 직접 만든 손수건 한 장을 드렸다고 한다. 한국으로 말하면 너무나도 하찮은 선물이라 많이 걱정했는데, 너무나도 기뻐하는 선생님을 보고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작은 선물이든 큰 선물이든 정성을 담은 선물은 받는 이로 하여금 기쁜 마음이 생기게 할 것이라 믿는다. 선생님들도 모두 다 비싼 선물만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뜻인 것 같다. “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는 돈. 주로,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돈을 이름.” 목적은 정성을 표시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지만 돈을 주니, 이것이 곧 뇌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오늘날 스승의 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주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문제의 해법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자그마한 감사의 선물을 하되, 돈이나 뇌물이 될 만한 선물은 하지 않는 것, 또 선생님들도, 자신의 체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싼 뇌물에 마음이 동요되지 마시고, 아이들의 고마움의 마음을 그냥 받아주면서, 이 아이들에게 내가 더 잘 해줘야지 하는 마음을 가다듬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5월 15일 날 우리도 교수님들을 모시고 “스승의 날 축하행사”가 있었다. 반장님이 잘 준비해서, 제자들 이십여 명이 모여 절도 올리고, 축하의 인사, 감사의 인사를 하고, 또 교수님들도 넥타이 선물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매어주시는 센스까지 발휘하셨다. 선물한 넥타이를 곱게 매신 교수님들을 보면서, 그리고 이런 좋은 선물과 자리를 마련해 주니, 내가 해준 게 뭐있나,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서신다면서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교수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자리는 교수님들과 제자들의 친분을 도모하는 소중한 자리었으며, 또 우리 서로 잘 모르고 지냈던 부분들도 자기소개를 통해 더 가까워지는 자리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온지도 벌써 5년을 넘기고 있고, 박사 과정에 들어온 지도 1년 반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소중한 시간들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는 것 같아 이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으로 지내는 요즘입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이 기간 동안, 교수님들께는 기억에 남는 제자로, 우리 같이 공부하는 동창 분들께는 기억에 남는 선, 후배가 되고 싶습니다.” 이 같이 뜻 깊은 날의 소중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면서, 스승님들과 선배, 후배들과의 인연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입니다.” 이 말은 나의 중국에 있는 한 제자가 해준 말이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스승의 날, 현재 제자와 스승으로 있는 사람들끼리 사제 간의 정을 나누며, 서로 더 잘 하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고, 또 이미 졸업하고 스승님의 곁은 떠난 이들에게는 지난날 스승님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며 서로를 이해해고 웃음지보며 행복해 하는 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중국에서 교사를 하던 시절, 9월 10일(이젠 날자 마저도 가물가물해 지는데) 날이면 아침에 평소처럼 생각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출근하여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흑판과 나를 번갈아 보며 시물시물 웃는 모습, 그래서 흑판을 보면, “선생님, 명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들이 씌어져 있다. 간혹 아이들이 용돈을 조금씩 모아 사진첩이나, 또는 만년필을 선물해줄 때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감동되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 눈물 속에는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정말 혼신을 다해 더 잘 해야지 하는 다짐도 함께 묻어있었다…


  이 해맑은 아이들에게 무슨 뇌물을 바라겠는가. 문제는 학부모들의 생각인 것 같다. 돈을 갖다 주면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더 잘 봐주지 않을까. 천만에! 나는 절대 그래본 적이 없다. 우리 반 아이 70여명, 그 아이들은 내 마음속에서 똑 같았다. 그런데 신경 쓸 시간들 있으면 집에서 아이의 예절교육, 심신교육에 더 신경써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예절바르고, 열심히 하고, 인정 많고...나름대로 아이들은 각자 장점들을 갖고 있다. 그런 점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오늘도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어린 나이에 나의 부덕으로 더 잘 못해준 그 아이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생각뿐이다. 아마 인생 끝까지 이 생각을 갖고 갈 것 같다.


  스승의 날을 취소한다고, 휴교를 한다고, 또 이름을 고치고 날을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된 순 없다고 본다.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교사는 교사의 본분과 도덕을 지키고, 학부모들의 편협한 생각이 바르지 못한 전반 사회의 그릇된 기풍으로 되는 것도 막아야 하고(이는 학교와 교사와 학부모들 지간에 협의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줄 알고,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선생님을 존중하는 행동이 부모님과 어른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는데 얼마나 좋은 교육이 될지, 다들 잘 알 것이다. 학생은 선생님을 존중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풍조가 다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2007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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