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음식문화와 한국음식문화에 습관이 된 나는 남방음식문화가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남경에서 중대형연회에 네 번을 참가했지만 별 느낌 갖지 못했다. 대체로 담백하고 깔끔했다는 인상이다. 아무튼 여행의 필수는 주식(住食)인데 음식은 그래도 배가 고플 때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첫날에 중산능을 다녀오면서 어느 3성급호텔에서 중식을 먹을 때부터 나는 또 한 번 그 점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날 점심, 우리가 식사하던 호텔에 룸이 500개나 된다고 한다. 규모가 얼마 큰가를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게다. 배가 고파 부지런히 밥을 먹고 끝냈는데도 요리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얼마 더 남았냐고 물었더니 여덟 가지 더 있다고 한다. 성질 급한 한국 여행사의 젊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있데요?” 그들은 혀를 내둘렀다.
후에 찬찬히 관찰해 보니 요리 양은 북방보다 많지 않으나 가지 수가 많았다. 마치 일본요리가 올라오듯 세분화되고 올리는 순서도 정해져 있는 듯했다.
먼저 작은 종지나 접시에 밑반찬 여덟 가지가 나왔다. 냉채 유(類)나 소금이나 간장에 절인 반찬이었다. 남경의 특산으로 소금오리구이가 있다. 소금에 절였다가 구웠는지 모르겠지만, 밑반찬에 소금오리구이가 나왔는데 먹었더니 너무 짰다. 이년 전에도 소금오리구이(값, 40위안 안팎)를 하나 사갔었는데 조금 먹고 버렸던 기억이 있다. 잘 습관 되지 않았다. 후에는 끼니마다 조금씩 먹었더니 소금기 속에 오리고기의 특이한 맛이 차츰 알려왔다. 남방은 날씨가 덥기에 절인요리가 발달했을지 모른다.
중국요리는 일반적으로 크게 산동요리(혹은 북경요리), 사천요리, 절강요리, 광동요리 등 4가지로 나뉘는데 흔히 ‘사대중국요리’라 한다. 맛으로 말하면 ‘동쪽은 시고 서쪽은 맵고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다’고 할 수 있다. 지방마다의 오랜 역사와 독특한 조리특색이 자연지리나 기후조건, 특산물, 음식습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형성되어 온 것이다.
중국인들은 절강요리는 수려한 강남의 미녀와 같고, 산동요리는 소박하고 건강한 북방의 남자와 같으며 광동요리는 풍류스럽고 우아한 도련님 같고 사천요리는 내실이 풍부하고 재주 많은 명인과 같다고 표현한다.
황하유역, 북경, 천진, 하남 일대를 대표하는 산동요리는 해산물을 위주로 한 연해지방의 초동요리와 탕류 위주의 내륙요리인 제남요리로 나뉜다. 산동요리의 특징은 선명한 색깔과 담백한 맛이며, 가장 대표적인 요리로는 황하의 잉어로 요리한 `탕수황하잉어`가 있다.
그리고 절강·강소요리는 장강 중하류의 남경, 소주, 항주, 상해 일대의 요리를 말하며 특히 굽고 고는 요리가 유명하다. 대표적 요리로는 항주의 `서호초어`, 진강의 `준치찜`, 남경의 `남경소금오리구이`등이 있다.
사천요리의 계통은 장강 상류 사천성 일대를 지칭하며 중국음식 중에서 가장 독특한 요리라 할 수 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맵고, 시고, 얼얼하며 쓰고, 맵고, 향기롭고, 짠 등의 일곱 가지 맛을 다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마파두부`, `원앙신선로`, `훠궈로`, `공즈지딩`, `탄탄미엔` 등이 있다.
광동요리에는 다리 달린 것은 뭐나 먹는다는 말이 있다. 주강 유역의 강서 일대의 광동요리는 담백하고 맛이 달다. 쥐, 고양이, 코끼리, 개, 뱀 등 요리의 재료가 풍부하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탕수구라오로’, ‘마늘쫑 민물생선요리’, ‘새끼돼지바베큐요리’ 등이 있다. 차를 마시면서 간식을 먹는 얌차라는 음식문화가 있어 대부분 이 지역의 사람들은 얌차를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중국은 고대부터 하늘아래 식(食)을 으뜸으로 여겨온 나라이다. 서경(書經)을 보면, 주나라 무왕에게 기자(箕子)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설명하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나라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사항의 으뜸은 먹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이다.”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은 이것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왕은 백성으로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王以民爲天 民以食爲天)
그만큼 역대로 백성은 굶주림만은 못 참아온 것이다.
고대 왕실의 주방장은 지위가 높았다. 현재도 음식 만드는 주방장은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옛날 재상(宰相)이란 글자의 재(宰)는 집안을 뜻하는 갓머리 밑에 요리용 칼을 의미하는 신(辛)자가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고대국가에서 제사는 중요한 행사이고 이를 주관하는 주방장은 내무대신이나 다름없다. 음식문화와 청치가 서로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에서 개혁개방 후, 첫 번째 문제가 바로 13억 인구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중국이 세계에 손을 내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인류에 공헌했다고 한다. 등소평의 제일 기본공로도 아마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중국의 음식문화에는 중화인의 사상, 도덕관념, 민족심리, 생활방식, 신앙과 예절이 어우러져 있다. 의식주(衣食住) 대신 식의주(食衣住)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쓰일 정도로 중국인들은 식생활 향상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쓴다. 단순히 음식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에 더 신경 쓰고 있다. 이런 특성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주장에서 잘 보여진다. 즉 의약과 음식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라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음식으로 몸을 보신하고 병을 예방하여 치료하고 장수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곰, 자라, 고양이, 쥐, 벌레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는 중국요리는 불로장생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왔다. 동북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 다양한 민족구성은 중국요리가 다채로운 형태와 독특한 맛을 갖게 한 중요한 배경이다.
남경은 양자강 유역의 풍부한 곡물과 긴 해안선을 끼고 있어 해산물 재료가 풍부하여 요리가 다채롭다. 약한 불에 오래 끓이는 조리법을 즐긴다. 요리의 색깔은 대체로 깔끔한 편이다. 생생한 새우살에 새파란 유채의 색조가 살아 숨 쉬게 만든 새우살요리나 싱싱한 오이 당근 등이 들어간 강남팔미냉채(江南八味碟)의 예쁜 색깔, 부드럽고 순한 토마토계란탕 ,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만(?) 자라는 특이한 맛의 계절야채볶음채 등이 위장이 취약한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약간 느끼한 요리라야 동파육(東坡肉 둥퍼루우)이다. 돼지고기를 덩이 채 술, 파, 간강, 설탕 등과 함께 넣고 불에 장시간 끓여 만든,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요리이다. 소동파는 '식저육(食猪肉)'이란 시에서 그 요리법을 언급한 바 있지만, 동파육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그가 절강성 항주태수로 부임했을 때이다. 부임 후 잡초가 우거져 모양조차 사라져 가던 항주의 자랑 서호(西湖)에 대대적 준설공사를 벌여 나루를 만들고 다리를 건설하는 등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였다. 항주 백성들은 감격하여 그가 돼지고기를 즐겨먹는다는 것을 알고 명관의 덕정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많은 돼지고기를 갖다 올렸다. 소동파는 이 돼지고기들을 술과 양념을 넣어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요리하여 서호 복원공사에 동원된 민공들에게 가져다 먹게 하였다. 먹어본 사람들은 다들 그 맛에 탄복하여 그 요리를 동파육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
동파육은 북방이나 호남의 훙쏘우로우(紅燒肉)와 빛깔이 비슷하나 맛이 느끼하지 않고 먹기가 훨씬 편했다.
남경은 곡지이기에 이밥에 어울리는 요리가 발달한 것 또한 특점이다. 전통적인 남경요리는 간장과 설탕을 많이 사용하여 맛이 진하고 달며 음식의 색상이 화려하다. 소고기볶음(肉炒花心), 소쿠리소고기볶음 등의 맛은 북방의 비슷한 요리와 색상 및 맛이 좀 틀렸다 .
나는 남방의 이밥은 북방사람들이 못 먹는 줄 알고있다. 찰기가 없고 불면 밥알이 날아 가버릴 듯하니까. 그런데 남경의 이밥은 북방보다 찰기는 없지만, 그런데로 먹을 만 했다. 삶은 옥수수도 풀기가 전혀 없이 말라보여 손을 안댔다가 하나 집어 먹어보니 나름대로 사근사근한 풀기 맛이 났다.
기실 남경은 북방과 남방의 중추지대에 있어 남, 북방 요리의 결집지대라고 해야 한다. 일제가 남경대학살을 감행한 후 많은 남경사람들이 북방으로 이주를 했다 남경으로 돌아왔고, 또 전국 각지의 백성들이 남경으로 몰려든 것이다. 때문에 남경의 요리문화에는 남북방요리의 짬봉 요소도 감지되었다. 물론 남경은 자기의 전통음식문화를 굳건히 지켜왔고, 또 그것이 남경요리를 진정한 남경요리로 만든 요인의 하나인지 모른다.
남경의 요리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중국요리 중 당당한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세계 어느 지역을 가나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유태인 전당업자, 인도 점쟁이, 중국 요리집이라는 이야기가 생겨났 듯 중국요리가 명요리로 꼽힌 것은 남경요리처럼 자기 전통을 살려온데 있으리라 본다 .
남경에 가면 이제 디엔차이(点菜- 요리 주문하기)하는 요령을 익혀야할 것이다. 요리마다의 특성을 챙기고, 그 속에 깃든 고사(古事)나 중국인의 취향이나 문화의식을 알고 잘 익혀두는 것이 우리 삶에 괭장히 도움 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연회석 요리상에 앉아 몇 가지 요리가 나오기 바쁘게 먹어치우고 배가 불러 나앉게 되는, 그래서 뒤로 이어져 나오는 요리를 멀뚱멀뚱 구경만 해야 하는 난감한 장면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
요리도 엄연히 문화이고, 엄연히 인류 역사의 한 부분이다 .
먹으며, 즐기며, 깨닳으며, 음미하는 멋과 운치를 가져보자.
<이동렬의 장편기행문> 남경, 매화꽃이 손짓하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