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아마 대한민국에서 억울함을 당한 외국인들이 다 모이지 않았나 의심이 들 지경이다. 마치 번호표 뽑아 쥐고 아픈 환자가 병원의 주치 의사를 기다리듯이…
그렇다면 적국에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 그 분은 누구신지? 그 분이 바로 노동부에서 정년퇴직하고 소수의 양심을 내팽개친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인심이 극히 부정적으로 부각되고 수십미터 아래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찾아오려고 비장한 각오를 하고 7년 동안 서울조선족교회에서 몸 던져 사업해 오신 이종만 선생님이시다.
그는 인도적인 견지에서 고향과 가족을 등지고 이 땅에 돈 벌러 떠나온 조선족 교포들의 피해 입은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시고, 일찍 부도나버려 인정이 꽁꽁 얼어붙어 가슴에 화로불을 갖자 주시며 한민족의 공존을 찾아주시려고 헌신해 왔던 것이다. 2000년 5월부터 지금까지 7년간 조선족 교포들이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의 불행과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위해 받아준 돈만 해도 무려 11억 9천만 원, 원 피해자와 상담 접수한 건수는 무려 877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 거액의 돈을 받아주는데 피해자 가족들이 정말로 눈물없이 말할 수 없는 고마운 사연이 너무 많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조선족 교포이자 5년간이나 미뤄왔던 못 받은 임금을 임종만 선생님의 적극적인 노력과 헌신으로 되돌려 받게 되었다. 많은 외국 사람들은 이곳을 외국인을 상대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애로가 있으면 상담할 수 있고 해결책을 주는 그런 곳이며, 국가에서 임금을 받아가며 운영하는 조직기구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 역시 임금체불상담실을 이 땅에 있는 외국인들을 배려하여 나라에서 외국인의 인권보장과 인권침해를 막으려고 세운 조직기구인 줄 알았다.
사실 이들의 임금수당은 매번 접하는 핏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 서러움에 찬 흐느낌, 알아듣기 힘든 두서없는 사투리, 원망…그런 것이 전부였다. 아무 보상과 보답이 없는, 또 누구 하나 주의 하지 않는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치 않은 일을 해 나가는 그들에게도 최대의 보너스는 있었다. 그렇게 보람에 찬 보너스는 바로 매 한건의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피해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안도의 숨소리, 다시 찾은 용기의 웃는 얼굴이 전부이었다.
바로 돈 아닌 이런 보너스를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로 얼룩진 마음에 인간애를 부어주고 삶의 끝자락에 매달려 몸부름 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선물했는지 모른다. 바로 이런 이름없는 천사들로 인해 버림받고 소외됐던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이라 푸대접 때문에 곳곳에서 겪었던 서러움과 억울함으로 지친 몸을 쉬어가고 위로받고 치유해 가는 ‘병원’인 이곳을 찾아 몰려드는지 모른다.
일흔을 넘긴 이종만 선생님은 아직도 청춘의 기백이 넘치는 건장한 체구에 훤칠한 키를 가진 멋진 분이시다. 걱정해 주고 분개하고 근엄해지는, 거듭되는 표정으로 형사 아닌 형사로 그렇게 인내 있게, 차근차근 물어보고 메모하고, 전화를 해 임금 독촉도 하시면서 열심히 사무를 보신다. 소박하고 소탈하신 모습으로 피해자들에게 항상 힘을 주시는 말씀 마디마디가 그렇게도 믿음이 가고 마음에 와 닿는다.
정말로 기대하고 싶은, 형사 아닌 천사이다.
볼품이 없이 구겨지고 밑바닥이 나버린 자존심과 절망으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동포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치유해 주는 명망 높은 이 마음의 병원을 찾아와 힘없이 몸을 던져보는 이국땅에서 온 동포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마음에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마지막 고비로 이 사무실문턱을, 아니 이 ‘병원’문을 넘어서는 사람들은 이종만 선생님과와 상담하고 함께 해결책을 연구하고는, 한 가닥 기대를 품고 가는 모습들이 마치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환자들을 연상케 한다. 이런 천사들이 있음으로 하여 동포들은 헐뜯기고 사기당하고 짓밟히는 사회 어둠속에서도 정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인지? 반면에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저소득층이 힘들게 번 돈마저 떼어먹는 사람들이여! 사장님들이여!…
그대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부모처자를 떠나 그 생계금 때문에 모든 자존심을 구천에 팽겨 치고, 뼈로 피로 번 돈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기대에 찬 눈동자들을!
불치병으로 힘든 생활하면서 눈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이 보내 줄 그 병원비를, 넉넉한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도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키는 민족의 미덕으로 서러움 안고 번 그 돈, 그 돈을 기다리는 동포 자녀들의 눈동자를 생각해 보았는가?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는가?
환상속의 천사. 정의를 가슴에 품은 형사,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주치의사를 방불케 하는 무명 영웅들의 미덕은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야 할 본보기가 아닐까? 아무런 보상도 임금도 없는, 이런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치 않는 일을 해 가는 이종만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따르릉 따르릉…또 벨이 울린다.
어쩐지 벨소리가 119구조대원을 부르는 소리 같기도, 110구급차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 같게 들린다.
여기 서울조선족교회에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를 돕는 노동부 퇴직자 모임”에서 이종만 선생님과 같이 자원봉사하시는 고마운 분들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찬양하고 싶다.
피해자 가족 김옥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