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4회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이다. 1990년 12월18일 유엔 총회는,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정하고, 이주 노동자를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가 모두 이주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규정한 ‘모든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통과시켰다. 이주 노동자에게 무슨 권리가 있느냐고 생뚱맞은 소리를 해 대는 우리와는 달리, 많은 나라가 비준하여 이 협약은 올 7월에 발효되었다. 이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국제기준이 이제서야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은 더욱 경사스러운 날이다.
그리고 또 오늘은 고 자카리아가 죽음의 땅, 코리아를 떠나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국으로 가시는 날이다. 협심증을 앓던 자카리아는 단속 강제추방이 시작되자마자 해고당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끼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는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에, 그의 서러운 넋은 떠나간다.
벌써 일곱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전철에 뛰어들어 생을 접은 스리랑카 노동자 다라카, 목매어 숨진 방글라데시 노동자 비꾸, 고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러시아 노동자 안드레이, 목매어 숨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부르혼, 또 목매어 숨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카미, 길거리에서 동사한 재중국동포 김원섭, 심장병을 앓던 중 일자리를 잃고 심리적 불안과 압박감 때문에 사망한 자카리아. 모두 단속과 강제추방의 벼랑에서 떠밀려 돌아가신 이들이다. 죄가 있다면 단지 열심히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졌다는 것뿐인데, 우리는 매몰차게 그 소망을 짓밟고 죽음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나는 요즘 헛것이 보인다. 흰 두건을 뒤집어쓰고 횃불을 든 인종주의의 추종자들이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니는 광경이. 제발 …. 이것이 헛것이길.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다르게 우리 사회는 이미 인종차별의 두건을 쓰고 광풍 속으로 한 걸음씩 빠져들고 있다. 그간 미등록노동자들은 우리 한국사회를 향해, 합법적인 자격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해 왔다. 생산의 실제 주역인 이주 노동자들을 미등록이라는 사슬로 묶어두고 그 노동력만 착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폭력이다. 만약 그동안은 합법화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한다면, 제도를 만들면서 일부러 장기체류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또 무슨 짓인가.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4년 이상 체류 미등록 노동자들을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한국어도 잘하고 숙련된 기술을 자랑하는 노동자들을 굳이 내쫓자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나날이 노동자들이 죽어나도 끝내 외면하는 데는 분명 미욱스런 이유가 있다. 이 나라 위정자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 땅에서 정주하게 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바로 이주 노동자,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이 한국사회에 오랫동안 체류하고, 정주하고, 그것에 더해 한국인과 섞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인종주의, 민족주의 때문에 4년 이상 노동자들을 합법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은 필요하니 써먹지만 합법화 기회는 주지 않고, 공장에 가둬 일 시키겠다는 그런 무참한 계획을 꾸미는 것이다. 참으로 무섭다.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동그란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사이 세상은 바뀌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나라가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함을 인정하고 국제협약에 비준하여 국제간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강제추방 정책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라. 이제 그만, 죽음의 행진을 막아야 한다.
이란주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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