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울고 웃으면서 세상사를 겪고 있을 때 나는 그 분주스럽고 역겹고 고리타분한 시가지를 떠나 풀 내와 풀벌레들이 있는 늪을 찾아간다. 내가 얼마나 행운스러운 사람인지는 내가 자리한 늪가만이 안다. 모기한테 물리는 그 쾌감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아침이슬에 젖은 바지 가랭이를 불끈 걷어 올리는 그 장거함을 당신은 느껴보았는가. 그리고 해빛이 부서져 내리는 수면우로 솟는 물고기의 우아한 수중 바레를 당신은 감상해보았는가
해마다 늘 이맘때면 찾는 나의 낚시터. 그 자리에서 감수해보는 나의 인생사. 모든 것이 번번이 새롭기만 하다. 나의 일정에 맞게 일을 할라치면 자연히 여기 낚시터가 내 마음을 유혹해 어쩔 수없는 숙명처럼 이곳을 찾는다. 수많은 유혹 앞에 석연히 다가서는 낚시터 땜에 나의 혼신은 늘 분주스럽다. 그래서 밤 꿈이 햇솜처럼 포근한 집을 나선다. 아직도 설쳐진 잠을 청하는 집식구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보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멀리 밝아오는 동녘을 바라보며 그리고 늪 수면위로 피는 안개를 흠상하며 나는 여기가 바로 내 마음의 가든이라고 생각해본다. 흐느적거리는 수초와 물새가 그 속에서 우짖는 갈대숲, 그리고 저 멀리 강기슭까지 뻗어간 논밭들, 그 논밭을 함께하며 그어진 삐뚤삐뚤한 수레길, 거기에다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수탉의 청아한 울음소리까지 첨가하면 완전하게 살아 숨 쉬는 어쩌면 한 폭의 기막힌 농경화 같을 것이다.
비릿한 늪 안개가 페부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 때면 나는 그 속에서 신선이 된다. 신선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인간세상을 벗어나 경지에 이르렀음을 표하는 말이다. 나는 내 심사에 맞는 일에 쓰이는 신경보다 오히려 여기서 이렇게 신선이 되는데 쓰이는 노력이 더 벅찬 일 같다.
나의 친구가 있었다. 부유했던 그는 어느 날 나를 슬며시 끌고 자기 집으로 청했다. 가보니 구들한가운데 낚시대와 낚시, 그리고 낚시줄과 낚시도구들이 가득 수라장이 되었었다. 나는 그와 구들우의 수라장을 번갈아보며 넌지시 물었다.
《이건 뭣 하려고 샀어?》
머리를 썩썩 긁으면서 하는 그의 말이 걸작이었다.
《인생살이 고달파 신선이 되려고 그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참 맞는 듯 싶다. 그렇게 악을 쓰며 생명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허둥대는 사람보다 그의 집 구들에 널려진 낚시도구들이 더 신선해보였다.
모터찌클까지 샀다며 나와 함께 낚시터로 가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그가 여기저기 다니는 떠돌이 장사군인지라 늘 술과 계집을 동무하며 세상을 향수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낚시터를 찾는다니 그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생소해보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그래도 마음의 여유는 있는가보다고 생각했다. 그가 낚시터를 찾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어쩌면 참 다행스런 장거라고까지 보아졌다.
《낚시질하면 건강에 좋다더라. 인제부터 강태공이 될란다.》
일리가 있는 말인가 싶다. 그가 강태공이139살까지 살면서 건강으로 세인들한테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의 함의가 나름대로의 일가견인 것만은 명백하다. 그러나 타계한 후 신선이 되였다는 강태공의 전설처럼 만약 그도 또 다른 세상에서 신선이 되였다면 지금쯤은 어딘가에서 낙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았다. 그곳에도 내가 가진 것 같은 이런 여름의 늪이 있을까. 만약 그한테 주어진 그러한 향락이 느껴질 수만 있다면 난 우편료가 엄청 들어도 그한테 낚시도구들을 부쳐 보내련다.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낚시가방이 생각난다. 건강을 찾겠다고 갖추어놓은 그 낚시도구들, 그것은 마치도 자기의 제상에 올려놓을 제물을 마련해놓은 듯해서 나의 마음은 그 후 몹시 아팠다. 차라리 그대로 도박과 계집에 미쳐있는 편이 오히려 다른 사람한테는 더 마음편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낚시도구를 산 며칠 후 갑자기 몸이 말째여 병원을 다녀왔더니 그만 간암이라는 사형판결을 받고말았던 것이다.
어느 날인가 그는 나한테 홍두께 같은 말을 불쑥 했었다.
《사람이 정말 신선이 될 수 있을까?》
그 말에 나는 그만 어처구니없어 그가 몹시도 가련해보였다. 죽어가는 자신의 삶을 이 세상에도 없는 신선에 기대려고 하다니, 그래 정말 신선이 된다면 그냥 나랑 함께 낚시질도 다니며 즐길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되면 그의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을는지.
그가 가면서 남겨놓은 그 낚시도구들이 지금도 나와 함께 여름의 낚시터를 찾곤 한다. 그가 건강을 찾으려고 갖춰놓은 낚시도구들은 오늘 나의 건강을 위해 쓰이는 도구로 되였다. 친구가 가지지 못한 건강을 나는 그의 몫까지 다 가지려고 이렇게 푸름한 아침의 늪으로 나온다. 건강을 잃고 저세상에서 하나의 혼백으로 남아 외롭게 떠돌아다닐 친구를 위해서라도 나는 늘 내가 건강한 모습이여야 한다고 자신?! 錤? 충고하군 한다.
그의 죽음이 부여한 모든 의미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충고들이였는지를 나는 내 가슴속에서 흐르는 피로 느껴본다. 그의 죽음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의 건강이 없을것만 같고 그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좋은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여유를 생각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꿎을 정도로 이맘때면 이 여름의 늪으로 나오는지도 모른다.
신선이 된다는 것은 건강을 가진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하냥 신선을 꿈꾸며 나는 이렇게 여름의 늪가에 앉아 낚시를 늪가운 데 던진다. 그러면 서서히 펴져가는 물너울을 따라 가슴속에 가득 차있던 모든 억울했고 미웠던 일들, 그리고 가슴 아팠고 괴로웠던 일들이 조용히 풀려져가고 그 대신 이름 할 수 없는 싱그러운 쾌감이 온몸으로 풋풋하게 전율해 온다. 그런 쾌감 뒤에는 나의 모든 친구들과 동사자,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들의 소중한 축복이 있어 내가 하냥 건강한 것이고 그들의 믿음과 참다운 모습이 있어 내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리라. 내가 신선이 된다면서 이 여름의 늪가에서 낚시를 던지는 것도 이 세상에서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신선이 되었음 하는 바램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바램으로 내가 사는 인생을 기도하고 그러한 기도로 인생을 건강하게 산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리라.
초라해도 좋고 하잘것없어도 좋다. 다만 내가 그저 이 여름의 늪에 낚시를 던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행복하겠다.
친구여, 강태공이 되겠다고 했지. 지금 나와 함께 여름의 늪으로 가자. 그곳에 가서 모든 우려를 버리고 낚시를 힘껏 늪에 던져보자.
건강을 찾겠다면서…
신선이 되겠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