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날씨와 관련된 시민들의 습관, 풍습, 의식, 삶의 자세 등을 섬세히 관찰하여 쓴, 중국 운남성 省소재지 성도의 지꿎은 안개에 대한 리얼리즘한 묘사가 흡사 한폭의 풍속도를 보여주듯 하다. 마치 논픽션같기도 수필같기도, 혹은 한 폭의 수채화같기도 하고 장편소설 밑바탕에 하얗게 엉켜 흐르는 어떤 정서 같기도 한 글이 참으로 매혹적이다. 치열한 작가적 정신에 박수를 보내면서, 또 더 좋은 글을 기대해 본다 ----- 편집자>
사천성 성소재지 성도란 곳에 와보니 매일매일 날씨가 흐리터분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霧都-안개의 도시 중경이 이런 줄 알았는데 100보에 50보라 할까 성도도 거기서 그기. 중경보다 단지 안개가 좀 적을 뿐.

금방 와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눈을 뜨면 시침은 아침 9시에 육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워낙 해가 늦게 뜨는데다 그 해라는 것이 뜨는 둥 마는 둥 하니깐 집안은 오전 8~9시가 되어도 희뿌옇다. 그러다가 밖에 비라도 오는 날에는 집안은 온통 까막 나라가 되고 만다. 3월 달 쯤 되어도 아침 6시면 환히 밝는 세상에서 온 나로서는 아침의 이런 희뿌옇거나 까막 나라에서는 아침 기상감각을 잃고 만다. 그래서 결국 할 수 없이 알람시계를 사놓고 강박적인 기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달팠다. 나만이 머저리가 된가 했더니 한번은 농촌으로 놀러 갔다가 아침도 한참 지난 오전에 시도 때도 없이 꼬기요~ 울어대는 닭들을 보고는, 저것들도 나하고 같은 꼬라지(꼴)구나, 하면서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가만히 보니깐 성도는 경도 상 우리 연길보다 한 2시간 해가 늦게 뜨는 것 같다. 사실 성도는 동쪽에 해가 뜬다고 해야 거저 희뿌옇게 흉내만 낼 뿐이다. 그리고 낮에는 중천에 해가 걸렸는지 말았는지, 그리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지 마는지 도저히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동서남북의 방향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집 방향도 남향이고 무어고 거저 막 짓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집안은 낮에도 항상 희끄무레하다. 전등을 켜야 한다. 그런데 전기 값이 아깝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희끄무레한 대로 그대로 산다. 바로 이 희뿌옇고 희끄무레한 자연적 풍토에서 벗어나고자 성도지역의 전통적인 가옥은 기와는 검은 기와를 뒤집어썼으되 벽만은 흰색을 칠해놓고 있다. 검은 지붕에 흰 벽의 전형적인 남방가옥이 그것이다. 우리 연변의 조선족들이 깨끗함을 추구하여 흰 벽을 칠한 것과는 좀 다르다. 성도지역의 현대건축들은 이런 자연적 풍토를 커버하는 면에서 좀 화려한 색상의 겉모양새라도 많이 갖추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직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미인이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보여 줄듯 말듯 성도의 해님은 쉽사리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미인, 아니 그 해님이 더 값진 줄로 안다. 보라, 어쩌다가 그 해님이 얼굴을 내밀면 사람들의 얼굴은 삽시에 밝아지고 일종 축제분위기에 들어간다. 해님을 보지 못해 우울하고 지뿌둥 했던 기분들을 날려버린다. 내가 있는 사천대학교 캠퍼스만 해도 학생들은 옷가지나 이불 같은 것을 말린다, 그리고 해쪼임을 한다 부산을 피운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아침 해 찬란히 일찍 뜨서 조선이라 했다는 조선,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것 같지만 해 잘 뜨는 우리 연길이 부럽고 그립다.
여하튼 성도는 이래저래 해가 적게 뜨는 것만은 확실하다. 해가 적게 뜨니 성도는 바다를 멀리 한 내륙에 있지만 날씨는 습하다. 바로 이 습한 날씨 때문에 성도를 비롯한 남방의 전통적인 집들은 대개 2층 집을 짓는데 1층은 식사칸이나 창고로 쓰고 2층에만 사람이 기거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습한 날씨 때문에 성도 음식에는 花椒가 약국에 감초처럼 꼭 들어간다. 이 얼얼하게 맺게 하는 麻辣맛을 풍기는 花椒가 바로 去濕-습함을 제거한단다. 그리고 플라스 알파로 바로 이 去濕하는 花椒가 성도여인들의 피부를 희고 보드랍게 한단다. 그리고 해가 적게 뜨는 만큼 성도는 춥다. 물론 우리 연길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하늬바람이 부는 그런 추움은 아니다. 이른바 陰冷, 습기가 있는 음산한 추위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라도 구질구질 내리는 날에는 정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찌부둥해진다. 陰雨가 사람 기분을 잡친다. 그런데 巴山夜雨라 중경 쪽이 그런가 했더니 성도의 비라는 놈도 夜行晝伏性을 가졌는지라 밤에 잘 내리는 반면에 낮에 잘 내리지 않아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우뢰나 번개를 잘 동반하지 않는 그 구질구질한 비는 정말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성도 사람들은 음산한 추위에 대단히 못 견디는 것 같다. 3월 달인데도 파카를 입고 다니는 양반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이니 말이다. 내가 좀 두꺼운 와이샤츠 하나에 좀 두꺼운 양복을 하나 달랑 입고 다니니 다 놀라운 눈치다. 성도 사람들은 바로 이 추움을 견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우리처럼 늘얼하게 맵은 고추가 아니고 톡 쏘듯이 매우면서 화끈하게 땀을 나게 하는, 우리가 말하는 남방고추를 기를 쓰고 먹는다. 辣椒去寒이란다. 참 그래서 사천 음식에 안 들어가는 곳이 없는 花椒辣椒,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사천 음식에 열을 올리는, 풀풀 끓여 먹는 찌개류(火锅도 이런 유로 볼 수 있을 듯)가 많은 것도 이런 去濕去寒의 한 방편이겠지.

성도 사람들 말로는 성도 날씨도 1년 사계절이 분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리 변화가 없는 것이 성도 날씨다. 하루 날씨만 보아도 해가 뜨는 둥 마는 둥 지는 둥 마는 둥 거저 그렇고 그렇다. 1년 사계절도 그저 그렇고 그렇겠지. 아니, 1년 사시절 햇빛이 비축하고 비축하여 여름 한철에 집중적으로 내리 쬐이니 여름은 찌물쿠고 찌물쿨 수밖에. 성도사람들 말로는 悶熱 그 자체다. 그러니 적어도 겨울과 여름은 변화가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 그러나 그것도 반짝 한 두 달 뿐이라니 예외로 치자. 그러니 성도 날씨는 변화 없는 것을 특색으로 꼽을 수밖에. 그러니 사람들 세월의 흐름에 둔감하고 세월아 네월아 니 가느냐 마느냐 하고 여유작작하게 사는 줄 안다. 모든 것이 아직 느리고 편안한 줄 안다. 좀 조용한 골목들을 찾아 들어가면 늙은이고 젊은이고 마작판이나 카드판이 한창이다.
성도사람들은 개혁개방 현대화의 빠른 절주를 잘 모르는 듯하다. 아니, 그들은 천성적으로 그런 빠른 절주를 싫어하는 듯하다. 이제 서부대개발이요 하며 들이닥치는 진정한 성도의 개혁개방 바람에 성도 사람들은 자기네를 잘 살게 한다하니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자기네들의 여유작작한 생활이 깨여지는 듯해서 그런지 심드렁해하는 표정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좀 어렵더라도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현재의 자기네 생활이 더 좋다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외지인들한테 항상 자랑 비슷이 하는 얘기가 성도는 悠閑한 도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뜻인지 養老할 도시라고도 한다.
2007.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