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두 번째 행선지는 남경역사박물관- 꽤 넓은 잔디밭에 바야흐로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풀과 옅은 안개, 부드러운 햇살이 어울려진 공간이 나타났다.
몇몇 중국인이 웡 놀이를 하고 있었다.
“웡-이라구요?”
처음 보는 운동기구였다. 길지도 굵지도 않은 두 작대기 끝에 맨 줄 위로 팽이 같은 물건을 띄우고 돌리는데 줄을 좁혔다 늘궜다 올리 쳐들었다 받아 내뤘다, 다리 밑으로 혹은 머리 위로, 여하튼 별의별 동작으로 윙을 돌리는데 너무 신기에 가까웠다. 어쩌면 운동마술이고 마술운동이었다.

“이곳에다 우리 신문사를 앉혔으면…”
서울에서 7~8년 살아온 신화보사 조명권 사장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번복했다.
나의 느낌도 같았다. 가슴이 트이고, 그 너른 땅과 하늘과, 구름과 햇살까지 너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서울이 좋다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특별시 남구로는, 그 비좁은 땅에 빌라들이 오르막내리막을 장식하며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인간이 천혜의 땅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좋은 나라, 좋은 고장, 좋은 부모와 일가친척, 좋은 인맥 속에서 산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과 저 생과 이생, 또는 인간의 오묘한 조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역사박물관 관람은 솔직히 말 타고 꽃구경하듯 했다. 국민당과 공산당 창건시기부터 해방전쟁까지 남경 땅에서 희생된 열사들 사적을 전시한 것이다. 너무나 많이 흘린 피가 지금은 퇴색한 종이장이나 사진으로 남아 그들의 자취를 얘기 해주고 있었다. 역사는 역사를 잊지 말라고 하는데 현실은 왕왕 역사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 많은 자료와 사진을 볼 수도 없고 보고 무엇을 느낄 수 없는, 단지 역사박물관에 갔다 왔다는 인상을 남기기 위해 이렇게 박물관에 들어선 것일까? 어쩌면 나이 먹어갈 수록 인간의 몸뚱이는 스스로 안일을 소망하고 이기적이 되가는지 모른다.

거대한 가지이며 가지에 붙은 침엽은 울창한 숲을 이뤘고, 무성하고도 푸른 기운을 넉넉히 발산하고 있었다. 거송 아래에 별로 크지 않은 양철지붕의 단층집이 보였다.
“무료관람입니다. 모택동사적관 무료관람입니다.…”
누군가가 메가폰을 들고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무료라고? 우리 일행은 사적관에 들어갔다.
귀전에 먼저 문화대혁명 때의 노래가 울려나왔다.
모택동의 수많은 조각상이며 크고 작은 마크진열대이며 현수막의 붉은 글들…이곳은 완연 문화대혁명의 재판이었다. 어려서 모택동시절을 겪어온 나는 감수가 유난했다.
참으로 이상했다.― 마음이 따뜻해 난다. 순수해지는 것 같다. 단순해지고, 어떤 야릇한 종교에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가슴 귀퉁이에 스며들었다.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이 노래를 잊지 않는다. 그 노래, 그 곡에 맞춰 열광에 가깝게 추던 충성무도 절대 잊지 않는다. 모주석은 태양이고 만백성은 해바라기이다. 태양 따라 해바라기가 돈다.…아아, 그때 우리는 왜 그토록 인간이 만든 태양을 숭배했을까? 하느님을 믿는 종교 신도들보다 더 철저하게 무조건적으로 따랐을까?…
-어쩌면 인간의 의식 깊숙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할 종교의식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의 시초, 불가사의한 자연재해와 출생과 삶과 죽음 앞에서 신을 믿기 시작했고, 그래서 祭를 주관하는 무당과 같은 직과 관이 생겨났을 것이요, 그래서 차츰 수많은 종교가 이뤄졌을 것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敬畏로부터 산생된 종교는 신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만들어낸 신은 인간을 지배하여 왔고 인간은 스스로 그런 종속을 원해왔는지 모른다. 필경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모주석은 하늘이나 태양과 같은 존재이고 위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날 불현듯, 그런 신과 가까워 진 것이다!
붉은 판에 노란 글씨로 쓴 모주석의 어록이 그토록 친근할 수가 없었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이 잊지 말고 시시각각 모주석을 생각하자!”는 주련 가운데에는 모택동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사진을 찍으세요.”
키가 작고 얄팍하게 생긴 이십대 중반의 한족처녀가 웃으며 말을 건네 왔다.
그녀의 고향은 소산충이라 한다. 호남성(湖南省) 소산(韶山)-, 얼마나 익숙하고 친숙한 이름인가? 이곳에서 소산의 여인을 만나다니?
나는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 물론 그녀는 흔쾌히 응낙해 주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다시금 소산충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모택동조각상과 사진을 찍을 것을 요청해 왔다. 그리고 그녀는 인차 컴퓨터그래픽으로 흑백사진을 디자인해서 출시해 주었다.
신사군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혁대에 권총까지 차고 조명권사장과 나는 대한뉴스의 김 영복 국장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다. 우연한 충동이었다. 모택동 주석 뒤에 서서 신사군 간부가 되어보는 스릴을 즐긴 것!
나는 슬그머니 웃고 말았다.
32절지 종이만한 흑백사진을 비닐로 포장, 디자인해서 10워안을 받았었다.

우리는 다시 윙을 하고 있는 잔디밭으로 돌아왔다.
역사박물관은 조각난 회색빛을 모아놓은 것 같았고 혁명열사 기념탑은 그 회색빛을 잊지 말라고 인간이 세워놓은 어떤 의식의 주춧돌 같았다. 그리고 모택동사적관은 인간과 인간의 종교를 붉은 색체로 그려놓은 마술궁 같다할까?…
그리고 다시 푸른빛이 돋아나는 잔디…그리고 웡을 즐기는 시민들…
현실에 충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날의 이 장소의 햇빛과 우유같이 부옇고 신선한 공기와 그리고, 웡 소리에 어울려져 있는 것 같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