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렇게 미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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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렇게 미운가요?”
  • 김사무엘
  • 승인 2007.05.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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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OO의 혼인 경위서

나는 2006년 4월 24일, 중국 길림성 연길 시내에 있는 모 다방에서 한국인 정씨의 소개로 남편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올해 스물여덟, 남편보다 열세 살 어리다. 남편은 나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였고, 나도 남편이 마음에 들었다. 다방에 오신 어머니도 남편을 보시더니 흡족해 하였다.

소개인 정씨 아줌마도 우리 어머니에게 딸이 시집을 잘 간다고 하였다. 우리 사이에는 말이 별로 없었고, 또 믿음도 없었지만, 일단 혼인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를 마치자 남편은 연길시장으로 가서 나의 옷과 가방을 사주었다. 또 연길공원으로 가서 우리는 관광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다음 날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남편이 함께 연길에 있는 웨딩드레스 촬영소에서 약혼사진을 찍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 남편은 4월말 경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나는 소개인 정씨 아줌마와 함께 남편을 배웅하였다. 정씨 아줌마는 우리 부모님에게 딸을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낸 것 같으니 너무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2006년 10월 초, 나는 마침내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였다. 시어머님과 남편, 시동생 부부가 함께 공항으로 마중 나왔었다. 우리 부부는 서울시 강동구 OO동주공아파트에서 시어머님과 시누이, 모두 네 명이 한 집에서 살았다.

나는 한국에 시집 올 때 정말 잘 살려고 왔다. 우리 부부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2006년 10월 초 부터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나에게 이유 없이 욕설을 하기 시작하였다. 지어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까지도 싸잡아 욕을 하는 것이었다. 시어머님은 내가 시집을 온 후로 집안에 웃음이 없어졌고 집안을 망친다고 터무니없이 나무람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이다 시피 세탁을 하고 방 청소를 하고 밥도 하며, 남편이 퇴근하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시장으로 가서 나에게 운동화를 사주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의옛 애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결혼을 시켜줄걸 그랬네.”라고 하였다. 나는 못들은 척 하였다. 이미 한국으로 시집왔기에 열심히 살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우리는 천호동웨딩홀에서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11월 20일 저녁,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신혼여행을 00시 00동으로 갔다. 도착하자 남편 친구 부부가 마중을 나왔고, 우리 넷은 함께 음식점에서 식사를마친 후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를 부르던 중 남편이 까닭 없이 상을 뒤집는 바람에 친구 부부는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밖을 나오자 남편은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중국으로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하였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언어예절을 모른다며(반말) 방을 쓸고 닦는 솔 빗자루로 내 머리를 때렸었다. 머리가 터져 인차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나의 멱살을 잡고 남편에게 “넥타이로 묶어놓고 때려라”고 하였다.
또 한 번은, 남편이 불렀는데 내가 미처 듣지를 못하였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대뜸욕설을 퍼부었고, 시누이도 역성을 들었다. 남편도 주먹을 휘두르며 폭행을 하였다. 내 얼굴에서는 대뜸 코피가 터졌었다.

시누이가 이렇게 욕을 해댔다.
"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꼴 보기 싫다. 배상금 내놓고 중국으로 돌아가, 어디서 이런 인간을 데려왔지?”
곁에서 남편은 징그럽게 웃었다.
“넌 중국에서 우리 집으로 팔려왔기에 니가 싫어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참고 살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님과 시누이는 마침내 나를 집에서 쫓아냈다. 나는 갈 곳이 없어 집 근처에 있는 부동산가게로 들어갔다. 마음씨 착한 부동산 아저씨가 나를 00여성 센터로 데려다 주었었다.
며칠 후, 시어머님이 오셔 우리 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얼마 후 나는 임신을 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소개인 정씨 아줌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매정하게 쫓아내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내가 무단가출을 했다고 가출신고를 하였고, 남편은 친구의 핸드폰으로 이혼해줄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왔었다.
내가 OO사장, OO원장의 도움을 받아 이혼을 하려고 집으로 갔더니 시어머니는 목욕을 한다는 핑계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여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였다.

그 후 시어머님이 다시 경찰에 고소를 하여 지난 1월 15일~ 17일 사이 나는 조사를받았고,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왔었다.

나는 더 이상은 남편과 살 수 없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내가 자기를 폭행했다면서 검찰에 고소할 줄이야! 
지난 3월 중순 나는 검찰에 불려가 2회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결국 무혐의 처리가되었었다.
나는 내가 왜 그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모른다. 또 왜서 시초에 그렇게 미운 나를 아내로, 며느리로 받아들였는지는 더구나 모르겠다.  

<인권상담 일지>
▶ 2007. 1. 23 김OO는 소개자 정00와 서울조선족교회 인권센타를 방문, 본인이 억울함을 호소.
▶ 1월 28일 OO여성 센터를 나와 쉼터를 교회숙소로 옮김.
▶ 3월 초 외국인등록증을 신청을 위하여 1차 출입국관리과를 방문.
▶ 3월 23일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음.
▶ 3월 27일 김인숙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혼 소송을 진행.
▶ 3월 말경 여권 재발급 신청, 4월 18일 여권 재발급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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