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옌볜”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이곳은 “연변(延邊)”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조상들이 피땀으로 일군 밭과, 손수 지은 우리 민족의 전통 가옥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학교와 그들이 돌아간 묘소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그들이 죽어서도 기억하고 있을 이름은 “연변”입니다. 당신들이 “옌볜”이라 고쳐 부르면 그들이 모르실 겁니다. 아무리 중국 내에 속해 있는 곳이라도, 우리 민족의 이름 그대로 불러주세요. 아마 이들이 아시면, 통탄하실 일이옵니다. 우리 글, 우리말로 된 이름을 왜아닌 이상한 발음으로 부르냐고요...
연변, 우리의 고장입니다.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정다운 도시들, 그 도시들 이름 역시 우리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우리 민족의 이민사에 행낭을 풀어놓고, 정착했던 첫 고장--룡정(한국어 두음법칙에 따르는 것을 용허한다면, 용정龍井), 이곳을 룽찡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지금도 마르지 않고 흐르는 해란강이 신음하며 웁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선구자 말 달리던 그곳에 꿋꿋이 서있던 일송정이 가슴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배를 타고 건너왔던, 그 설음으로 꽉 찬 가슴을 시원한 물바람으로 씻어버리고 희망을 찾아 나섰던 그 뱃길, 두만강 기슭에 자리 잡은 정다운 도시--도문(圖們), 이곳을 투먼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발돋움한 곳, --연길, 이곳을 “옌지”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고국 행 다녀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한국의 한강이 그리워 부르하통하에 한강변 도로처럼 만들었습니다.
연변에서 한국 간 “량국화”이야기로 알 만한 사람들 다 알건데...네, 그 곳--화룡(和龍)입니다. “허룽”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저 멀리 바라보이는 일본과, 어깨를 걸친 러시아, 힘겹게 그 사이를 뚫고 바다 아래로 뻗어 내려간 반도, 그 삼면을 마주한 넓은 벌--훈춘, 훈춘도 머라고 고쳐 부르실 랍니까!
중국- 그 큰 땅덩어리 한 귀퉁이에, 반도와 이어진 그 꼭대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 200만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 땅을 100년도 넘게 지켜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글과 우리 전통, 그리고 우리 민족의 얼을 지켜내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도 용케 우리말을 지켜내 왔건만, 어찌 당신들이 이제 와서 우리 이름마저 제멋대로 고치려 듭니까! 중국의 다른 지명, 인명을 중국에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한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우리 언어에 꼭 맞게 불러온 우리의 방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협소한 생각에만 근거하여 전부 다 듣도 보도 못한 발음으로 왜 고치려하십니까!
한국의 변덕스런 한자정책 때문에 고스란히 피해를 본 세대들, 그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말까지 바꾸시렵니까?
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저에게 물은 적이 있어요. “베이징은 어딥니까, 북경은 어딥니까? 베이징이 북경입니까?”라고요.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소위 지식들이 있다는 당신들 머리로 짜낸 결과가 결국 이렇게 수많은 국민들을 헛갈리게 하고 있다는 사실, 알기나 하는지요? 될수록 불필요한 혼동은 피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고등학생은 상해를 샹하이로, 칠십세 어른은 샹하이가 머냐? 상해지, 우리 김구어른이 그곳에 임시정부 세웠었잖아? 하실 겁니다.
북경을 베이징으로 부르던지, 상해를 샹하이로 부르던지, 심양을 썬양으로 부르던지, 청도를 칭다우로 부르던지, 대련을 다이렌으로 부르던지....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우리 “연변”만은 제발 “옌볜”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각 항공사 여객기 운항 스케줄에 쓰여져 있는 지명을 보십시오. 한국의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북경을 베이징으로, 연길을-옌지로 부르고 있지만, 중국의 국제항공, 동방항공 등 항공사에서는 여전히 북경으로, 연길로 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행각입니까!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종 논문, 잡지, 인터넷자료들을 보면 중국의 지명은 현재 기존의 한자어와 마구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각 항공사, 정부부처, 학교 교과서 등 모든 지면상에서 더 이상 우리 아름다운 이름을 정확치도 않은 중국어발음으로 잘 못 부르는 오류를 즉각 시정해 주기 바랍니다.
이들을 대표하는 키워드: 조선민족의 얼, 선구자의 노래, 아리랑, 한복, 김치, 순대, 보신탕...어느 하나 다른 것이 있나요? 조조의 아들 조식의 『칠보시』가 떠오르네요.
煮豆燃豆箕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上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서로 들볶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지.
조조가 죽은 뒤 권력을 잡은 조비는 동생 조식의 재능을 시기해오던 차, 계략으로 일곱걸음 걸으면서 매 한걸음 뗄 때마다 한마디 시를 짓게 하였다. 결국 이 시를 듣고 그는 형제끼리 해치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운 나머지 펑펑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