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끄럽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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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끄럽소 !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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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배 醉說 >

그렇다. 까마귀도 제 고향 까마귀라면 더 검어 보인다고…


나는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더 반가워 보이고 더 상냥스레 대하는 것은 타향살이를 해본 분들은 누구도 체험하였을 것이리라 믿는다. 외국에 있을 때면 우리말 소리만 들어도 그 반가움, 그 기쁨은 어디에 비할 수가 있으랴. 마치 오랜 타향살이에 부모처자 만나는 것과 비겨도 그 우열을 가릴 수가 있겠는가 싶다.


한국에서는 우리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니 별로 고향 사투리를 그리는 마음이 다소나마 적겠지만 어쩌다 우리고향 연변사투리를 들을 때면 또 그 무슨 새로운 감정, 새로운 반가움이 넘쳐흐르는데…타향살이를 하여본 분들이라면 누구도 경험하고 남음이 있으리라.


뜻밖에 안산에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 왔다. 휴가인데 뭐 하는 가고…함께 오이도 구경이라도 하지 않겠는가고…나는 그러지 않아도 타향에서 혼자 보내는 휴가가 어찌나 지겹던지 더위가 이렇게 까지 심하지 않다면 니야까 끌려 가락동이라도 가서 다문 몇 만원이라도 벌어 볼가 하였는데…친구의 전화에 얼씨구 좋다 하고 안산행 전철을 잡아탔다.


안산에 도착하니 안산은 말 그대로 외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떻게 되여 안산역부터가 붉은 벽돌로 지었는데…정말로 중국에 많은 도시의 그 벌거벗은 벌건 벽돌의 역사 같았다. 나는 진짜 이런 붉은 벽돌역은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 본다. 거기에 거리가 더럽기는 어찌나 더럽던지…나는 진짜 중국 어느 안쪽 자그마한 시가지인가 착각 할 정도였다. 거리에 사람들은 거짓말 한마디 없이 두 사람 하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면 외국 사람이 틀림이 없는 것 같더라…


외국사람 모인 곳엔 말소리가 요란하고 외국사람 많이 사는 곳은 더럽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는 그런대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먼저 안산사거리에 있는 부페집에 갔는데… 오 ~ 완전 중국 사람천지였다. 식당에서도 의례 중국 사람들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지 못하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듯이 구들에다 수많은 쪽걸상을 대기 하고 중국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었다. 휘둘러보니 칠팔십 프로는 쪽걸상에 앉아 있는데… 분명히 그 얼굴 그 자세는 중국사람이 틀림이 없는 것이 알고도 남음이 있겠더라.


그리고 말이 부페집이지 준비된 고기, 채소는 그 질이 형편없었다. 전부가 중국산이 아닌가 싶더라. 물론 값도 싸지만…


소주 한 병씩 까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 오이도행 버스를 잡았다. 나는 의례 제일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나이가 4,5십 되었을까, 한 아줌마가 오르더니 대뜸 내 앞좌석의 아줌마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어머나 ! 이게 누구야 ! 옥자 아니야 ! 야 이렇게 여기서 너를 만나다니…한국이 작긴 작다야 여기서 너를 만나다니…”

이렇게 인사삼아 한창 너스레를 떨더니 그다음부터 친구들의 이름을 대며 하나하나 안부가 오고가고 하더라.


다음은 그들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놓겠다.

...............

...............


“야, 복자도 왔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 응 가는 가리봉에 있다. 식당에서 홀을 뛰는데 배달이 힘들어서 죽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봉급이 많고 잘 나오니 그대로 참고 있다가 이제 나올 때 진 빚 다 갚으면 옮기겠다더라."


“야, 저기 금자도 나왔다더라야”

“응, 갸도 위장결혼으로 나왔는데… 위장결혼을 약속해 놓고도 이원해 주지 않아서 800 백이나 더 주니 이원해 주더란다. 그래서 가는 천팔백을 내고 나온 셈이됐다.”

“아니 이원해 주지 않으면 무라니야 그대로 돈 벌고 집에 가면 그뿐인데… ”

“아이다. 가는 꼭 한국 애들과 결혼 하겠단다야. 그런데 그 늙다리가 이원해주지 않아 다시 결혼 할 수가 없단다.”

“야, 인호도 나왔단다.”

“가는 얼마주고 나왔다니? ”

“천만 원이지 무슨 지금 그저 다 천만 원이다.”


조금 조용하더니 또 다시 그들의 말들이 이어지더라


“야 ! 정말 너 순자 알지?”

“누군데?”

“그 집체호에 순자 말이다.”

“응~ 알지 않구…가는 글쎄 위장결혼으로 왔는데…그 늙다리가 요즘 거의 죽는단다야…그래서 빨리 죽기만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더라. 죽으면 전세집이라도 차례지겠는데…하고 기다리더라. 호 호 호 ”

“ 전세 얼마짜린데?”

“몰라 쪼꼬만 두간짜리 다가구 주택인데… 이삼천 될까?”

“야, 명철이 있쟀니 가하고 옥희가 한국에 나와서 같이 산다더라. 그런데 집에서는 명철이처하고 옥희 나그네가 같이 살고…ㅋㅋㅋ…”

“ 그런데 너는 무슨 일 하니?”

“뭐, 식모지머 다른 거 할 거 있니 식당은 힘들고 식모는 스트레스 좀 받아도 쉽지 않니…”

“너는 식당에서 일하니?”

“식당에서 홀 뛰지뭐”

“응 얼마 받니?”

“140 이지머…”


그들의 대화는 온통 고향친구들의 문안과 현재를 두고 담론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실지로 우리 조선족들의 한국에서의 현재 생활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았고…또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운 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 두 고향 아줌마들이 입을 다물어 주기를 충심으로 빌었으나 그들 둘은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친구들의 안부와 문안은 계속 되였고…그녀들은 수다스럽고 재미있는 듯 호호 히히 이어졌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돈 팔고 한국에 온 친구 위장결혼 하고 한국에 온 친구, 이름 갈고 한국에 온 친구, 가짜 비자를 돈 주고 사서 한국에 온 친구, 가짜 부모로 속이고 결혼한 딸자식 따라 한국에 온 친구…정말 희한 하였다.


그리나 그녀들 둘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버스에는 저희들 둘뿐인 듯 ㅎㅎ ㅋㅋ 계속 떠들고 있었고…


그러나 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졸지에 조선족이라는 것을 감추고 싶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아무런 스스럼없이 웃고 떠드는 그들의 수치스러운 수다를 듣기 역겨워서 그들에게 눈총을 쏘았다.


나는 조선족으로 태여난 것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어쩌다 글을 쓰면 아버지가 태평양을 건너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넌 겁쟁이여서 우리 조선족들만 유일하게 제 조국 땅에서 불체자 대우를 받는다고 비웃어서 조선족을 조롱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지는 한국의 민족정책, 아니 동포정책을 비웃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모두 한국의 국책을 비웃는 글이지 진심으로 조선족을 비웃거나 조롱 하진 않았다.


때때로 조선족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독설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우리민족을 깨우쳐주려 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조선족으로 태여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고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러나 어제는 나는 조선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웠었다. 막 누가 나도 조선족인 것을 알아 볼까봐 두려워서 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면목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버스에서도 나는 조용히 입을 꾹 다물고 옆에 친구와 한마디 말도 건너지 않았고 어쩌다 옆 친구가 나하고 말을 건네면 내 말에서 이렇소 저렇소 하는 연변 불후의 사투리가 튀어져 나올 것 같고 그러면 버스안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 볼 것 같은 불안감에 온 하루를 보냈다.


말이 시원한 바다구경이지 나는 차라리 바다 물에 빠져 죽고라도 싶은 심정이 였다. 누가 나를 조선족인 것을 알았다면 말이다.


나는 오이도서 내려 저 멀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그래 대한민국 우리 조국이 진정 우리민족을 잘 살게 만들었는가?!

그래 한국서 돈을 벌고 돌아간 우리 조선족들 진정 재미있게 더 잘살고 있는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반대로 중국말 그대로 쟈퍼런망한 가족은 또 그 얼마나 될까?!


조선족이여 ! #$%%^&&* %^#$%^


나는 당신들 럼 부끄러움이 무언지 모르는 조선족이 있어서 부끄럽다.


제발 버스에서만큼은 그런 수다를 떨지 말아다오 !


제발 공공장소에서 만큼은 더욱더 이런 인사와 수다를 떨 때는 우리 불후의 사투리를 쓰지 말아 줍소!!!


난 부끄럽소!

난 정말 부끄럽쓰꾸마!

난 쩐더 창피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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